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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박물관 선사고대문화실] 선사시대 충남지역

국립공주박물관 2층은 “충청남도 선사고대문화실”이라는 이름으로 충청남도 지역에서 출토된 선사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유물들을 연대순으로 전시하고 있다. 충청남도는 금강 본류와 크고 작은 지천 주변에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정착해 살아왔다. 공주 석장리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알려진 구석기시대 주거유적지이도 하다. 또 태안반도와 서해안 일대는 중요한 연안 해상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었기때문에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중국, 일본과 문화교류가 활발했으며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문화가 발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구석기.신석기시대에는 공주 석장리를 비롯하여 대전 둔산동 등 금강 중류지역에 충남지역의 주요 유적지들이 분포하고 있다. 반면에 청동기시대에는 한.중.일 해상교역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는 천안, 아산, 당진 등 서해안가 가까운 지역에 크게 부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충청, 경기, 호남지역에는 50여개의 소국들이 마한이 성립되었으며 그 중 천안지역이 마한연맹체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공주 석장리 유적(사적)>

금강변에 위치한 선사시대 유적지인 공주 석장리 유적지이다. 구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 오랜기간 동안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1960년대 미국인 대학원생이 처음으로 발견한 이래 우리나라 고고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유적지이다.

몸돌과 격지(공주 석장리), 찍개(대전 둔산동), 찌르개(대전 대정동), 슴베찌르개(대전 용산동, 공주 석장리), 구석기시대.

금강유역을 중심으로 비교적 넓은 지역에서 구석기시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구석기시대의 뗀석기
충남지역의 구석기시대 유적은 주로 금강 중류의 대전.공주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이 가운데 공주 석장리유적은 1964년 발굴조사에서 남한에서는 처음으로 확인된 구석기시대 유적으로, 한국 구석기시대 연구의 시발점이 되었다. 구석기시대는 사냥과 채집에 따라 이동생활을 시작하였고, 처음에는 찍개와 긁개, 여러면석기 등 단순한 뗀석기를 사용하다가 차츰 돌 재질이 다양해지고, 만드는 기술도 발달되면서 돌날이나 슴베찌르개 등 정교한 도구가 만들어졌다. 금강유역에서 출토되는 뗀석기 가운데 슴베찌르개는 한반도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다른 지역에 비해 출토 량이 월등히 많아 우리나라 뗀석기문화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공주박물관>

빗살무늬토기, 아산 성내리,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 서산 대죽리, 신석기시대

가락바퀴, 아산 성내리.서산 대죽리, 신석기시대

가락바퀴는 솜이나 털 등의 섬유를 꼬아 실을 뽑아내는 방적기구이다. 신석기시대부터 사용되었으며, 시대와 장소에 따라 재료나 형태가 다양하다. 가운데에 뚤려 있는 구멍에 축이 될 막대를 끼워 고정시킨 뒤, 손으로 섬유를 잡고 가락바퀴를 돌리면 섬유가 꼬이면서 실이 만들어 진다. 이렇게 만든 실로 가죽을 꿰매어 입거나 간단한 형태의 옷감을 만들어 옷을 지어 입은 것으로 보인다. <출처:공주박물관>

돌보습, 공주 장원리, 신석기시대

신석기시대의 토기와 석기
신석기시대(8,000~1,500BCE)가 되면 고기잡이.사냥.채집.농사.가축 기르기 등 다양한 생산 활동에 따라 한 곳에 정착해 살면서 토기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충남지역에는 신석기시대의 일반적인 모양인 뾰족바닥의 빗살무늬토기와 땅을 갈 때 사용하는 돌보습, 실을 뽑아내는 가락바퀴, 열매나 곡식을 가공하기 위한 갈돌과 갈판이 주로 출토되었다. 충남지역은 큰 하천과 하천으로 흘러드는 지류가 많고, 구르이 발달하여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였기떄문에 해안 지역뿐만 아니라 내륙에서도 신석기시대 유적이 확인되고 있다. 충남지역에서 조사된 집터는 후기에 해당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일부 전.중기유적도 있다. 집터는 가운데에 화덕이 설치된 움집이며, 빗살무늬토기는 바닥에 무늬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출처:공주박물관>

충남지역의 청동기시대 토기.

청동기시대에는 민무늬토기를 비롯하여 기술발전을 보여준 검은간토기, 붉은간토기 등이 만들어졌다. 이 시기에는 지역적인 특색을 보여주는 토기들이 만들어졌는데, 송국리형 토기는 충남지역을 대표하는 토기이다.

겹아가리토기, 대전 용산동, 청동기시대

구멍무늬토기, 천안 백석동, 청동기시대

바리, 부여 송국리. 아산 와우리, 청동기시대

붉은간토기, 공주 장선리, 청동기시대

굽단지, 천안 백석동.천안 운전리, 청동기시대

붉은간토기, 대전 신대동, 청동기시대

덧띠토기, 대전 궁동.금산 수당리, 초기 철기시대

덧띠토기, 청양 분향리.아산 권곡동, 초기 철기시대

검은간토기, 금산 수당리, 청동기시대

청동기시대의 토기
청동기 시대에는 납작바닥에 적갈색이나 황갈색을 띠는 민무늬토기가 나타나 지역이나 시기에 따라 모양과 크기 등이 다르게 만들어졌다. 충남지역에서는 빠른 시기의 집터에서 입부분에 간단한 선이나 구멍 등의 무늬가 있는 토기와 겹입토기가 출토되며, 늦은 시기의 원형집터나 돌널무덤에서는 송국리식 토기가 출토되고 있다. 또한 고운 흙으로 빚어 겉면을 흑연 등의 광물질이나 산화철을 발라 문질러 광택을 낸 검은간토기나 붉은간토기도 있다. 붉은간토기는 둥근 바닥에 짧은 목의 단지와 굽다리가 달린 토기가 많다. 그리고 검은간토기와 함께 주로 돌널무덤에서 출토되는 덧띠토기는 입부분에 둥근 띠가 덧붙어 있다. 한편 굽다리가 달린 독특한 모양의 토기는 고운 흙으로 빚었으며, 겉면이 비교적 매끄러운 것이 특징이다. <출처:공주박물관>

청동기시대의 간석기.

청동기시대에는 제작기술의 발전으로 일상생활 등에는 다양한 석기들이 만들어졌다. 충남지역은 한.중.일 해상교역로의 거점으로 초기 성읍국가들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천안, 당진, 대전, 공주 등 다양한 지역에서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돌칼, 1.3,부여송국리, 2.아산 시전리, 4~6.천안 백석동, 청동기시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생활도구로 농사에 사용되었던 돌칼이다. 초기에는 반달모양돌칼이 주로 사용되었다가 점차 세모형태로 바뀌었다.

돌살촉, 공주 화월리, 서천 한산면, 청동기시대

돌검, 공주 남산리, 대전 추동리, 청양 신흥리, 금산 음대리, 대전 신대동, 청동기시대.

전국적으로 고루 출토되는 형태로 지배층의 권위를 나타내는 유물이다. 청동검을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바퀴날 도끼, 천안 백석동, 청동기시대.

돌검과 함께 지배층의 권위를 나타내는 유물이다.

숫돌, 대전 대정동, 청동기시대

갈돌과 갈판, 공주 장원리, 대전 관평동, 청동기시대

홈자귀, 공주 신영리. 당진 자개리, 청동기시대

홈자귀는 머리 부분에 홈이 파인 도끼로 각종 도구나 집 등의 시설물을 만들 때 필요한 나무가공용 도구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나타나는 독특한 석기로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출토되고 있다. 날은 한 쪽에만 있으며, 반대쪽에는 ‘ㄱ’자 모양으로 굽은 나무자루에 끈으로 견고하게 묶을 수 있도록 오목한 홈이 패여 있다. 청동기시대에는 농경을 중심으로 하는 정착생활로 마을의 규모가 커지고, 각종 시설물의 건설이 널어나면서 홈자귀와 같은 나무 가공용 도구가 발달하게 되었다. <출처:공주박물관>

돌도끼(천안 용곡동, 공주 장선리, 아산 명암리), 돌끌(아산 명암리), 청동기시대

청동기시대의 간석기
청동기시대에는 이전 시기보다 석기의 제작기술이 크게 발달되며, 종류는 보다 다양해지고 기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본격적인 쌀농사가 시작되면서 수확을 위한 돌칼이 새롭게 만들어지기 시작하는데, 반달모양에서 점차 세모꼴로 변한다. 또한 예리하고 날렵하게 가공되어 살상력이 높아진 화살촉.간돌감.창.달모양 도끼 등은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며, 특히 간돌검과 달모양 도끼는 권위를 상징하는 도구였다. 한편 마을이 번성하면서 집을 짓는데 필요한 공구류가 다량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목재를 얻기 위해 삼림 벌채가 늘어나면서 돌도끼의 사용이 크게 증가하였다. 또한 목재를 가공하기 위한 홈자귀.대팻날.돌끌 등은 청동기시대에 새로이 만들어진 석기들이다. 이외에 도구이 날을 갈기 위한 숫돌, 실을 뽑아내는 가락바퀴, 곡식이나 열매를 가공하기 위한 갈판과 갈돌도 만들어졌다. <출처:공주박물관>

청동검을 비롯한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들.

지배층의 권위를 나타내는 유물들이 대부분이다.

청동검, 대전 비례동.서산 탑곡리, 청동기시대

대롱옥, 아산 갈매리, 공주 남산리, 공주 화월리, 청동기시대

쇠투겁창, 검, 칼자루끝장, 공주 수촌리유적 출토 청동기, 초기 철기시대

청동방울, 당진 우두리, 초기 철기시대.

충청남도의 선사시대
한반도 중서부에 위치한 충청남도는 낮은 구릉지대가 많고 금강과 같은 큰 하천과 그 지류 주위에 작은 평야가 발달하여 사람들이 정착하여 살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구석기시대에는 주로 금강 중류 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뗀석기를 사용하는 구석기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하였고, 신석기시대에는 해안가와 내륙지역까지 영역을 확장하였다. 청동기시대에는 신석기시대부터 제작하기 시작한 토기의 사용과 농경이 크게 발전하였고 더욱 큰 집을 짓고 대규모의 부락을 이루며 살았다. 기원전 3세기부터 중국에서 철기 제작기술이 전래되어 다양한 철제 도구들과 정교한 청동기를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사회.경제.기술의 발전을 바탕으로 충남 지역을 중심으로 한반도 남서부 지역에는 기원 전후부터 마한으로 불리는 50여개의 소국들이 성립되었다. <출처:공주박물관>

<출처>
1. 국립공주박물관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