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시 금성동 송산리고분군이 있는 송산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정지산 유적(사적)이다. 웅진기 백제의 제사시설로 알려져 있는 유적으로 왕성이었던 공산성 서쪽편 금강이 내려다 보이는 나즈막한 구릉에 자리잡고 있다. 정지산 유적을 실제로 찾아가 보면 눈으로 볼 수 있는 건물터나 시설물 등은 없고 백제시대 제사시설이 있었다는 표지석만 홀로 서 있다. 이곳을 찾으면 실제 볼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당시 백제인들이 이 곳에 제사시설을 설치한 이유나 그들이 느꼈을 분위기 등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곳이다.
<공주 정지산 유적(사적)>
금강이 내려다 보이는 나즈막한 언덕 위에 있는 웅진기 백제의 제사시설이 있던 곳이다. 지금은 이곳이 유적지임을 안내해 주는 표지판만 볼 수 있다.
<유적지 아래 금강>
<동쪽 공산성>
동쪽편으로 멀지 않은 곳에 웅진기 백제 왕성이었던 공산성이 보인다. 왕릉에 모시기전에 빈전을 왕성 서쪽에 마련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남쪽 송산(宋山)>
뒷편으로는 웅진기 백제의 왕릉이었던 송산리고분군이 있는 송산(宋山)과 능선으로 연결되고 있다.
<송산리고분군>
<정지산 유적 발굴 당시 사진(출처:공주박물관)>
여러 건물터들이 발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웅진기 백제시대 벽돌 등이 출토되었다.
<웅진기 백제시대 벽돌>
무령왕릉에 출토된 묘지석에는 무령왕과 왕비가 사망한 후 약 16~27개월 동안 빈장(殯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왕릉을 남서쪽에, 장례지를 서쪽이라 하였는데 이곳이 장례지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정지산 유적은 송산리고분군이 위치한 능선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발굴조사 결과 웅진기 백제의 제사 유적이었음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로는 제기로 사용된 그릇이나 건물에 사용된 벽돌 등이 있으며, 공주박물관 무령왕릉실에 전시되어 있다.
<무령왕비 묘지석(국보)>
이곳에 빈전을 설치하고 삼년상을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제사시설이었음을 알 수 있다.
병오년(526) 11월 백제국왕태비가 천명대로 살다 돌아가셨다. 서쪽의 땅에서 (빈전을 설치하여) 삼년상을 지내고 기유년(529) 2월 12일에 대묘(大墓)로 옮기어 장사지내며 기록하기를 다음과 같이 한다. <출처:공주박물관>
<그릇받침>
이곳에서 출토된 그릇받침과 그릇들에서 제사시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릇들>
<공산성 앞에서 본 정지산유적>
송산리고분군과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금강변 평탄한 구릉에 유적지가 조성되어 있다.
<유적지를 올라가는 길>
<정지산 유적 아래 터널>
공주 정지산유적, 사적, 충남 공주시 금성동
공주시 금성동 산 1번지에 자리하고 있는 송산의 북쪽 끝에 해당되는 곳으로 동쪽으로는 공산성이 마주하고 있고 북쪽으로는 금강이 휘돌아가고 있다. 능선 정상부를 평평하게 조성한 다음 기와 건물과 대벽건물이라는 특수한 형태의 건물을 세우고 그 외곽을 다시 목책과 도랑으로 에워싸 주변지역과 구별하였다. 이러한 특수 건물들은 일반적인 주거지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제사와 관련된 시설물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이 유적에서는 기대나 삼족토기 등 제기로 보이는 각종 토기가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지석에 의하면 왕과 왕비는 27개월간 빈전에 모셔져 있다가 현재의 왕릉에 안장된 것을 알 수 있는데, 방위로 볼 때 왕비의 빈전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국립공주박물관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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