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tstory Traveling

Since 2008, Korea & World by younghwan

공주 수촌리 고분군(사적), 한성백제기 지방세력 위상을 보여주는 유적

공주시 의당면 수촌리에 위치한 수촌리 고분군(사적)이다. 공주에 위치하고 있지만 웅진기 백제 고분은 아니고 한성 백제기 웅진지역 지방세력의 무덤들이다. 공주에서 금강을 지나서 차령고개를 넘어 천안으로 연결되는 23번국도변에 위치하고 있다. 공주 수촌리 지역은 웅진백제기와는 달리 금강 이북의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이는 공주의 유력한 세력들이 한성 백제와는 우호적인 관계였음을 추정할 수 있게 한다.

<공주 수촌리 고분군(사적)>

한성기 백제 때 지방세력의 무덤인 공주 수촌리 고분군(사적)이다. 이곳은 공주시 도심에서 천안방향으로 약 10 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초기 철기시대부터 한성백제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무덤들이 확인되고 있다.

<언덕에서 내려다 본 공주 수촌리 지역>

주변에 비교적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고, 고속도로를 비롯하여 차령고개를 넘어가는 주요 교통로가 연결되어 있다. 무덤들은 마을이 있는 수촌초등학교 뒷편에 2지역 고분군이, 안쪽으로 들어가면 1지역 고분군이 있다. 최근 발굴 조사를 통해 목곽묘, 앞트기식돌방무덤, 굴식 돌방무덤 등 다양한 형태의 무덤이 확인되었다. 초기 철기시대 유물과 한성백제기 중앙에서 지방세력에 내려 보내준 위세품들이 다수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로는 초기 철기시대 청동기와 토기를 비롯하여 금동관과 금동신발, 금제장신구, 환두대도 등 화려한 백제의 유물과 중국에서 수입된 흑유도기, 흑유 닭머리모양 주전자 등이 있다. 유물들은 한성백제기 중앙에서 지방의 유력세력에게 내려보내준 위세품으로 여겨진다. 이는 한성 백제시대의 중앙과 지방의 상호관련성과 백제가 한성에서 철수하여 웅진으로 무난하게 도읍을 옮겨올 수 있었던 정치적인 배경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남쪽편 공주 방향>

금강 주변 공주의 여러 산들과 넓은 들판이 보인다.

<수촌리 마을 도로에서 본 무덤들>

낮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2지역 고분들>

수촌초등학교 뒷 동산에 자리잡고 있다. 신라나 가야의 고분과는 달리 봉분을 크게 만들지 않고 있다. 무덤형태 또한 널무덤, 돌덧널무덤, 굴식돌방무덤과 같은 당시에 성행했던 다양한 형태의 무덤들이 사용되었다.

<무덤들>

<1구역 고분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좀더 많은 무덤들이 모여 있는 1구역 고분들을 볼 수 있다.

공주 수촌리 유적
공주 수촌리 백제 고분군은 공주시에서 북쪽으로 10km 떨어진 작은 구릉의 서쪽 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철기시대의 무덤부터 한성백제시기의 널무덤, 돌덧널무덤, 굴식돌방무덤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무덤이 확인되었다. 무덤 안에서 당시 공주지역 최고 세력가들이 사용하였던 금동관모와 금동신발, 귀걸이, 각종 말갖춤과 무기류, 토기류 등 화려한 백제 유물과 중국제 도자기들이 대량으로 출토되었다. 수촌리 유적은 한성백제의 중앙정부가 지방을 간접적으로 통치하고 있던 모습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유적으로 4~5세기 충남지역의 지방 세력이 백제와의 관계를 강화하며 점차 백제의 중앙귀족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출처:공주박물관>

<금동관모>

백제의 금동관모는 지방 유력세력 무덤에서 주로 출토된다. 금은장신구나 중국 도자기 등과 함께 출토되고 있다. 중앙에서 지방세력에게 보내준 것으로 추정되며 백제가 마한 지역을 통합해나가는 한성백제기 유적에서 주로 출토된다.

금동관모
금동관모는 신분을 상징하는 꾸미개로 우월한 지위를 가진 사람의 무덤에서 주로 출토된다. 형태는 둥근 고깔 모양으로 모자의 뒷부분에 대롱모양의 장식을 달거나, 앞 또는 뒷부분에 화려한 장식을 세우기도 하였다. 이러한 형태의 금동관모는 공주 수촌리, 서산 부장리, 천안 용원리, 익산 입점리, 나주 신촌리, 고흥 길두리 등 백제의 영역뿐만 아니라 가야와 일본지역에서도 발견되고 있어 주목된다. 금동관모는 금동신발.중국 도자기 등의 고급물품과 함께 부장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것들은 백제가 마한의 세력을 통합해가는 시기의 유적에서 주로 확인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금동신발>

<금동제 허리띠꾸미개>

짐승얼굴모양이 주조되어 있는 허리띠꾸미개로 관복에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성백제기 백제의 관복문화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수촌리 금동제허리띠꾸미개는 표면에 귀신 혹은 짐승얼굴문양이 주조로 표현된 매우 정교한 공예품으로 한성백제 중앙에서 제작해 지방 유력자에게 하사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나 주변국에서는 이보다 이른 시기의 귀면 허리띠꾸미개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5세기 전반 무렵에는 중국과 구별되는 백제적인 금속제 허리띠가 제작되었고, 이로서 이 시기부터는 백제적인 관복문화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출처:공주박물관>


<구슬목걸이를 비롯한 각종 장신구들>

<구슬목걸이>

<장신구>

<쇠투겁창과 화살촉>

<재갈>

<흑유닭모양 단지>

중국에서 수입된 도자기이다. 중국 남조에서 성행한 도교사상이 백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흑유닭모양 단지는 반구호의 어깨 부분에 닭머리 모양의 주구와 손잡이를 붙인 형태로 천계형주전자라고도 한다. 옛 중국 설화에 도인들이 단약을 먹고 신선이 될 때 닭과 새 모이를 쪼아 먹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닭모양 단지는 신선사상이 풍미하던 중국 서진(西晉)부터 남조때까지 많이 사용되다가 그 이후에는 점차 줄어든다. 동진때까지는 몸통이 둥근 모양이 중심을 이루다가 남조에 들어서면 목이 길어지는 등 실용적인 모양으로 변해간다. <출처:공주박물관>

<입큰항아리>

중국에서 수입된 것으로 보인다.

<입큰단지와 그릇받침>

<뚜껑 있는 완>

<굽다리접시와 손잡이 잔>

<세발토기>

공주 수촌리 고분군, 사적, 충남 공주시 의당면 수촌리
공주시 의당면 수촌리에 자리하고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이다. 발굴조사를 통해 목곽묘 2기, 앞트기식 돌방무덤 1기, 굴식 돌방무덤 2기 등이 확인되었다. 목곽묘는 지하로 땅을 파고 자갈을 깐 다음, 그 위에 목곽을 안치하였다. 목곽 안에는 다시 240cm, 너비 80cm 크기의 목관이 높여져 있었다. 목관 안에서는 금동관모, 금동신발, 금제 귀걸이, 환두대고, 중국제 자기 등이 출토되었는데, 피장자는 머리를 서남쪽으로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굴식 돌방무덤은 역시 지하로 땅을 파고 정사각형에 가까운 직사각형 형태의 묘실을 만들었는데, 남벽의 한가운데에 출입시설인 연도가 달려있었다. 묘실의 바닥은 자갈을 깔았으며, 특히 4호분에는 관대가 남아 있었다. 금동관모, 금동신발, 환두대도, 중국제 자기를 비롯하여 금제 귀걸이, 백제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수촌리고분군은 4세기말에서 5세기 전반 경에 조성된 것으로, 당시 백제의 중앙세력과 지방세력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국립공주박물관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