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에서 출토된 3점의 청동거울(국보)로 청동신수경, 의자손수대경, 수대경이다. 왕쪽에서 청동신수경과 의자손수대경이, 왕비쪽에서 수대경이 출토되었다. 청동신수경은 ‘방격규구신수경(方格規矩神獸鏡)’이라는 중국 후한의 거울을 모방하여 만든 것이다. 의자손수대경(宜子孫獸帶鏡)은 중국 한대의 수대경을 본떠 만든 것이다. 꼭지를 중심으로 9개의 돌기가 있고, 안에는 크고 작은 원과 7개의 돌기가 솟아있다. 수대경(獸帶鏡) 역시 한나라 때 동물 문양을 새겨 넣은 수대경을 본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의자손수대경과 수대경>
중국 한나라 수대경을 모방한 작품으로 제작수법이 떨어지는 편이다.
거울 중앙의 꼭지를 중심으로 9개의 작은 돌기가 있다. 안쪽에는 크고 작은 원이 있고 그 사이에 7개의 둥근 돌기와 네 명의 신선, 세마리의 상서로운 동물무늬가 사는 선으로 새겨져 있다. <출처:공주박물관>
<의자손수대경>
손잡이를 중심으로 9개의 돌기가 놓여 있고 그 사이에 ‘宜’, ‘子’, ‘孫’ 글자가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다. 바깥쪽에는 동물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내부에는 글이 새겨져 있으나 선명하지 못하다. 한나라 수대경을 모방해서 만들었다. 무령왕 주위에서 발견되었다.
<수대경>
한나라 수대경을 만든 것으로 무늬가 선명하지 못하는 등 한나라 것에 비해 제작수준이 떨어지는 편이다.
<방격규구신수경>
후한의 거울을 모방해서 만든 것으로 사냥하는 인물과 4마리의 짐승을 표현하고 있다. 다른 두점에 비해서 무늬가 섬세하며 주조상태도 좋은 편이다. 무령왕 쪽에서 발견되었다.
방격규구신수문경(方格規矩神獸文鏡)은 중앙의 꼭지를 중심으로 4각의 구획이 있고 각각의 모서리에 4마리의 짐승과 이들을 사냥하는 신선을 표현한 뒤 바깥쪽에 두 줄의 원을 만들었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출처:공부박물관>
청동거울은 일상적인 생활용품이라기보다는 지배층의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제작수법이 한나라의 거울에 비해 정교하지는 못하지만 제작연대가 확실하며, 백제의 특색이 반영되어 있는 유물이다. 웅진기 백제때 중국의 도교.신선사상이 널러 퍼졌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비슷한 형태의 유물이 일본에서도 출토되었다고 한다.
<거울의 앞면(복제품)>
처음 만들었을 당시의 청동거울은 황금색을 띄지만, 시간이 흘러 녹이 슬면 녹색으로 변하며 광택을 잃게 된다.
<무령왕릉 발굴당시 모습을 재현해 놓은 모형전시관>
왕쪽에 2점, 왕비쪽에 1점이 발견되었다.
청동거울
무령왕릉의 청동거울은 널방안에서 발견되었는데 왕쪽에서는 방격규구신수문경(방격과 의자손수대경(宜子孫獸帶鏡)이, 왕비쪽에서는 수문경(獸文鏡)이 나왔다. 이러한 형태의 거울은 경주 황남대총이나 무령왕릉 등 일부 유적에서만 발굴되고 있으며 특권적 권위를 지닌 왕이나 그에 버금가는 신분의 사람들만 소유하고 있었던 위세품이었다. 또 같은 틀에서 만들어져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거울들이 우리나라와 일본의 고분에서 함께 발굴되는 것으로 보아 청동거울이 국가간의 교류를 통해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공주박물관>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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