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시 실상사 수철화상탑 앞에 세워진 탑비(보물)이다. 탑비에는 수철화상의 행적과 탑의 조성경위 등을 기록하고 있으나 마모가 심하여 글자를 거의 판독할 수 없다. 탑비는 거북받침돌이 있는 당시의 일반적인 탑비와는 달리 직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탑비가 세워져 있다. 머릿돌에는 구름속에 두마리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가운데 ‘능가보월탑비’라는 승탑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조각수법이나 조형미가 뛰어난 편은 아니다.
수철(秀澈, 817~893년)은 통일신라말 승려로 구산선문을 대표하는 실상산파를 일으킨 홍척국사의 제자로 후학을 양성하면서 실상사를 크게 일으켰다고 한다. 진성여왕 7년(893)에 입적하였다고 한다. 수철(秀澈)은 그의 시호이다.
<남원 실상사 수철화상탑비(보물)>
. 실상사를 크게 번창시킨 통일신라말 고승 수철화상의 행적과 탑의 조성경위 등을 기록한 탑비이다.
<받침돌>
이 탑비의 받침돌은 당시 보편적으로 사용했던 거북받침돌 대신 후대에 많이 사용되는 직육면체 모양의 받침돌을 사용하고 있다. 받침돌에는 안상이 새겨져 있으며 비몸을 받치는 부분에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비몸>
비몸에는 수철화상의 행적과 탑의 조성경위 등을 기록한 글자가 새겨졌다. 글을 짓고 글씨를 쓴 사람을 알려져 있지 않으며, 글자는 당시 많이 사용된 당나라 구양순체로 쓰여졌다.
<비몸에 새겨진 글자>
글자는 오랜 세월에 닳아서 거의 판독하기가 힘들다.
<머릿돌>
머릿돌에는 구름속에 두마리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모습을 새겨놓고 있는데 조각수법이 뛰어난 편은 아니다. 가운데에 ‘능가보월탑비(楞伽寶月塔碑)’라는 탑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옆에서 본 모습>
<뒤에서 본 모습>
<수철화상의 사리를 모신 승탑(보물)>
지리산 실상사는 통일신라 말 구산선문을 대표하는 큰 사찰이었으나 조선시대 화재로 소실되면서 폐사되었다. 절터에 남아 있는 동.서삼층석탑과 석등이 큰 사찰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증각대사가 창건한 실상사>
남원 실상사 수철화상탑비, 보물,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이 비석은 통일신라 진성여왕 7년(893) 수철스님이 세상을 떠나자 옆에 위치한 부도탑과 함께 세운 것이다. 비석은 높이 2.9m로 비머리에는 구슬을 다루는 용을 조각하였다. 실상사를 처음 세운 홍척(洪陟)스님의 제자인 수철스님은 스승의 뒤를 이어 실상사를 유명사찰로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비에는 수철스님이 태어나 불가에 귀의.득도하여 세상을 교화한 후 열반에 들기까지의 과정과 그를 기려 탑을 세운 경위를 차례로 적어 놓았다. 아쉽게도 현재는 글자가 거의 닳어 없어져 판독이 어렵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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