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군 화엄사 강당 건물인 보제루(普劑樓)이다. 화엄사 경내 입구에 누각형식으로 세워졌다. 단청을 하지 않았으며, 목조구조물에 색칠도 하지 않아 절제되면서도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주고 있다. 건물은 앞면 7칸·옆면 4칸 규모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대웅전 쪽 창문은 7칸 모두 큰 두짝의 빗살문을 달고 그 반대쪽 5칸은 널판지문을 달았으며 좌우 양칸은 문을 생략하였다. 대웅전과 각황전이 있는 마당 보다 한단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1층 기둥을 낮게 하여 각황전과 대웅전이 있는 중심영역의 경관을 막지 않도록 하고 있다.
강당은 사찰에서 불법을 강론하는 등 승려나 신도들의 집회를 목적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전통적인 평지사찰의 가람배치에서 강당은 금당 뒷편에 위치한다. 산지 사찰의 경우 누각과 출입문의 기능을 겸하면서 대웅전 앞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오늘날 강당은 사찰을 찾은 신도들이 잠시 쉬는 공간으로 많이 활용하고 있다
<화엄사 강당 건물인 보제루>
사찰 입구 경사진 지형에 세워진 2층 누각 형식의 건물이다. 앞면 7칸 규모로 상당히 큰 규모의 강당건물이다. 대웅전과 각황전의 웅장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1층 기둥을 낮게 만들었다. 강당 옆 계단을 통해서 사찰을 출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현판, 공포와 처마>
겹처마에 익공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단청을 하지 않아 고풍스러우면서도 절제된 모습을 보여준다.
<누각 판문>
사찰 앞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널판지문을 달아 놓았다. 누각의 기능을 겸하고 있다.
<여름철 창문이 열려 있는 모습>
<각황전 마당에서 본 모습>
<2008년 여름>
문을 열어두어 화엄사를 찾은 신도들이나 관광객들이 마루에 앉아 웅장한 화엄사 경내를 올려다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화엄사는 삼국시대(544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삼국통일 후 의상대사 이곳을 화엄10찰로 삼으면서 크게 중건했다. 이때 장육전을 짓고 화엄경을 돌에 새긴 석경을 둘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화엄상 승려들이 참전하면서 사찰의 크게 파괴되었는데 인조대에 벽암대사가 크게 중수하였다. 주불전인 각황전과 대웅전을 비롯하여 불전들과 석탑, 석등 등 많은 문화재들이 남아 있다.
<강당 앞에서 보이는 화엄사 대웅전>
축대를 쌓아 강당이 있는 곳보다 1단 높은 곳에 불전들이 배치되어 있다. 화엄종이나 선종계열 사찰들이 산중에 사찰을 조성하면서 일반화된 가람배치이다.
구례 화엄사 보제루, 1636년,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화엄사 보제루에도 특별함이 숨어 있다. 승려나 신도들의 집회용인 2층 누각 건물로 대개는 그 밑을 지나 대웅전으로 들어서게 되지만, 화엄사 보제루는 1층의 기둥 높이를 낮게 만들어 옆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각황전, 대웅전, 대석단 등이 장엄하게 펼쳐지는 중심 영역의 경관을 강조하기 위한 배려로 보인다. 장식을 배제하고 단청도 하지 않아 절제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답글 남기기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