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지리산 피아골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연곡사(鷰谷寺)이다. 이 사찰은 국보급 문화재인 동부도 (국보), 북부도(국보), 서부도(보물)와 동부도탑비(보물), 현각대사탑비(보물), 삼층석탑(보물) 등 화려한 승탑문화가 남아 있다 이는 통일신라말 불교의 큰 흐름이었던 선종불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 구산선문이었던 남원 실상사, 장흥 보림사, 곡성 태안사가 지리산을 중심으로 호남지방에 자리잡고 있다.
<구례 지리산 연곡사>
일주문을 들어서면 뒷편에 대웅전을 비롯하여 불전과 요사채들이 들어서 있고, 앞쪽은 넓은 마당을 이루고 있다. 연곡사는 통일신라 말 선종계열 사찰로 크게 번창했는데, 지리산에서 수행하고자 하는 많은 승려들이 머물 수 있도록 요사채 건물들이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들어가는 길
연곡사는 삼국시대 연기조사가 처음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통일신라 말 선종사찰로 크게 번창하였다. 임진왜란 때 승병으로 참전하면서 왜군에 의해 사찰이 불타버렸으며, 이후 소요대사 태능을 중심으로 중창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고광순의 중심으로 의병활동 때문에, 한국전쟁에서는 빨치산 활동으로 건물들이 불타버렸다. 한국전쟁 이후 거의 폐사되었던 것으로 1960년대 이후 대웅전을 비롯하고 크고 작은 불전들과 요사채가 들어서면서 사찰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최근까지 사찰 건물들이 복구되기는 했지만 원래의 규모에 비해서는 많이 축소된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연곡사가 자리잡고 있는 피아골>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여러 골짜기들 중에서 비교적 잘 알려진 곳으로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이 활동했던 지역으로 유명하다. 연곡사도 한국전쟁 때 불타버려 상당기간 동안 거의 폐사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일주문>
<일주문 안쪽 넓은 정원에 있는 연못>
<경내 바깥에 위치하고 있는 삼층석탑>
선종사찰로서 자리잡은 통일신라 말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정형화된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선종 계열 사찰이기는 하지만 삼층석탑의 위치로 볼 때 현재의 건물 배치는 원래의 규모에 비해 크게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강당 건물인 삼홍루>
사찰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는 삼홍루는 앞면 5칸 규모의 2층 누각 건물로 최근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강당 앞에서 본 일주문과 주변 풍경>
지금은 넓은 마당과 정원으로 되어 있지만 원래는 여러동의 요사채 건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곡사 경내>
연곡사는 선종계열 사찰로 크게 번창하기는 했지만, 인근 화엄사의 영향을 받아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아 계단식으로 터를 조성한 후 건물을 세웠다. 임진왜란을 비롯하여 여러차례 전란으로 불에 타 버려 내력있는 목조건축물은 남아 있지 않다.
<연곡사 주불전이 대적광전>
한국전쟁으로 불타버렸던 것을 60년대에 작은 규모로 중건했던 것을 최근에 연곡사의 규모에 걸맞게 큰 건물로 새로 지었다.
<대적광전 왼쪽편 관음전>
<명부전>
<삼성각>
<대웅전에서 내려다 본 마당>
<요사채>
불전들이 있는 곳보다 아래쪽에는 요사채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ㄱ’형으로 담장이 있는 살림집 형태를 하고 있는 무설전이다.
<맞은 편에 위치한 소요당>
<범종각>
<동승탑과 탑비>
주불전인 대웅전 뒷편에 연곡사를 대표하는 동승탑과 탑비가 세워져 있다.
<구례 연곡사 동 승탑(국보)>
전남 구례군 토지면 연곡사에 위치한 동 승탑(국보)이다. 목조건축물을 모방해서 만든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승탑이다. 도선국사의 승탑이라고는 전하나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지붕들은 당시 목조건축물의 형태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기와, 서까래 등을 새밀하게 새겨 놓고 있다. 머리장식으로는 봉황과 연꽃무늬를 새겨놓았다.
<동 승탑 옆에 있는 탑비(보물)>
글이 새겨진 비몸은 없어지고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웅장한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조각수법이 떨어지 머릿돌에 용무늬를 생략하는 등 형식적이며 간략해진 고려시대 탑비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비몸이 없고 탑의 이름을 적어 놓는 머릿돌 가운데 글씨가 남아 있지 않아 탑과 탑비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동승탑에서 내려다 본 연곡사>
<북승탑>
동승탑에서 조금더 걸어오르면 북승탑이 나타난다.
<구례 연곡사 북승탑(국보)>
고려초기에 세워진 승탑으로 승탑의 크기, 구성요소, 조각수법 등에 있어서 동 승탑과 거의 비슷하다. 승탑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아래쪽에 있는 현각선사의 승탑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동 승탑을 모방해서 만들기는 조각수법이나 조형미가 뛰어난 걸작으로 고려초기 승탑을 대표할 수 있는 유물 중 하나이다.
<대웅전 서쪽>
연곡사 대웅전 서쪽편에는 고려초 연각사를 크게 중흥시킨 현각선사 탑비와 조선중기 연곡사를 크게 중창한 소요대사 승탑이 세워져 있다.
<현각선사탑비(보물)>
전남 구례군 토지면 연곡사 경내에 있는 현각선사탑비(보물)이다. 이 탑비는 고려초 활동했던 현각선사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글이 적힌 비몸은 없어지고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거북받침돌은 용의 머리와 거북모양의 몸체로 되어 있다. 머릿돌은 여러마리의 용이 다투고 있는 모습을 조각하였는데 조각수법이 세밀하고 힘이 넘친다.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보물)>
전남 구례군 토지면 연곡사에 있는 소요대사탑(보물)이다. 연곡사 경내 서쪽에 위치하고 있어 서부도(西浮屠)라고도 불린다. 석종형 승탑이 많이 만들어졌던 조선 중기에 조성된 승탑이지만 통일신라 승탑인 동 승탑의 형식을 계승하고 있다. 동 승탑이나 북 승탑에 비해 조각수법 등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동시대 승탑에 비해서 조형미가 양호한 편이다.
<고광순을 기리는 비석>
소요대사탑 아래에는 구한말 이지역 의병을 이끌었던 고광순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때 일본군에 의해 연곡사가 불타 버렸다고 한다.
구례 지리산 연곡사(鷰谷寺), 전남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연곡사는 백제 성왕22년(544)에 인도의 고승인 연기조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연기조사가 처음 절의 터를 잡을 적에 이곳에 큰 연못이 있어 물이 소용돌이치며 제비들이 노는 것을 보고 연곡사라 이름하였다 한다.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선종사찰로 번성하였고 도선국사, 현각선사 등 많은 고승대덕이 배출되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연곡사 스님들이 승병활동을 했던 보복으로 왜군에 의해 완전 전소되었으나 임란 이후 소요태능스님이 중창불사를 하여 400여 스님들과 더불어 이곳에 총림을 개설하고 선풍을 일으켰다. 1907년 연곡사가 항일의병의 근거지라는 이유로 다시 일본군에 의해 완전 전소되었고, 1950년 한국전쟁으로 또 다시 전소되는 수난을 겪었다. 현재 국보로 지정된 동승탑(국보 53호), 북승탑(국보 54호)과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보물 151호), 현각선사탑비(보물 152호), 동승탑비(보물 153호), 소요대사탑(보물 154호) 등의 석조물만이 유적으로 남아 전해오고 있으며 1980년대 이후 중흥불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안내문, 연곡사, 2016년)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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