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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지리산 실상사(사적), 통일신라 구산선문 중 처음 창건된 사찰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에 있는 전통사찰인 실상사(實相寺, 사적)이다. 실상사는 통일신라말 중국 당나라에 유학한 홍척이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처음으로 실상산문(實相山門)을 열면서 창건된 선종계열 사찰이다. 달마대사가 중국에 전한 뒤 우리나라에서는 9세기초 이후 크게 번창하였다. 개인적인 수행에 중점을 두는 선종의 특성은 통일신라말 지방호족세력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다. 제자인 수철대사와 편운대사가 왕실의 후원을 받아 절을 크게 중창하여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초에 크게 번창하였다. 정유재란 때 화재로 사찰이 불에 타 버린후 200여년간 폐사되었다가 숙종대에 중창하였고, 고종때 지역 유림들에 의해 큰 화재로 전각들이 불타버린 후 작은 규모로 다시 중건되었다.

<남원 실상사(사적)>

통일신라말 당나라에 유학한 지증국사 홍척이 실상산문을 처음으로 열었던 유서깊은 사찰이다. 통일신라 말 왕실의 후원을 받아 크게 번창했지만 정유재란 때 불타버린 이후 중건되기는 했지만 여러 차례 화재와 사회적인 여건 등으로 전각들은 원래의 모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들어가는 길

실상사(實相寺)는 지리산 북쪽편 운봉분지에서 흘러내려오는 람천과 달궁계곡에서 흘러내려온 만수천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평지 사찰이다. 실상사 경내에 남아 있는 동.서삼층석탑(보물)은 통일신라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쌍탑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또한 거대한 목탑이 있었던 건물터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었다. 여러차례의 화재로 목조건축물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구한말 중건되기 시작한 불전이나 요사채 또한 다른 사찰에 비해 작은 규모이다. 사찰내에는 삼층석탑외에 석등(보물), 철제여래좌상(보물), 수철화상탑(보물)와 탑비(보물), 증각대사탑(보물)와 탑비(보물) 등 많은 문화재들이 남아 있다. 부속암자인 백장암에는 삼층석탑(국보)와 석등(보물)가 있다.

<실상사 입구>

실상사 앞으로는 람천이 흐르고 마을에서 해탈교라 불리는 다리가 세워져 있다. 다리 양쪽에는 원래 4기의 석장승이 세워져 있었는데 지금은 3기가 남아 있다.

<석장승>

람천을 건너는 다리인 해탈교 양쪽에 세워진 석장승이다. 머리에 벙거지를 쓰고 있으며, 둥근 눈에 뭉툭한 코를 하고 있는 해학적인 모습이다. 다리 앞 마을에 세워진 돌장승은 옹호금사축귀장군(擁護金沙逐鬼將軍)이고, 다리를 건너 길 양쪽에 세워진 것은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과 대장군(大將軍)이다.

<실상사를 굽이쳐 흐르는 람천>

남원시 운봉읍 지리산 자락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람천과 노고단에서 발원하여 달궁계곡을 거쳐 내려온 만수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실상사가 위치하고 있다.

<람천을 건너는 해탈교 다리에서 본 실상사>

<실상사 전경>

실상사는 지리산 일대에 위치하고 있어 산지사찰로 생각하기 쉽지만 전형적인 평지사찰의 모습을 하고 있다. 여러차례 화재로 전각들은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외형상 상당히 큰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실상사 앞 지리산>

멀리 천왕봉 부근 봉우리들이 보인다.

주불전이 있는 중심영역

<천왕문을 들어가는 길>

<실상사 동.서삼층석탑(보물)>

실상사는 주불전인 보광전 앞 마당에는 통일신라 사찰에서 볼 수 있는 2기의 삼층석탑(보물)이 세워져 있다. 탑의 구성이 불국사 삼층석탑과 거의 비슷하며, 2개의 탑 모두 상륜부 장식이 거의 온전하게 남아 있다. 조형미나 조각수법이 빼어난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간결하면서도 경쾌한 느낌을 주는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석탑 중 하나이다.

<실상사 동삼층석탑>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과 머리장식을 올려 놓고 있다. 불국사 삼층석탑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조각수법이나 전체적인 구성에 있어 조형미는 약간 떨어지는 편이나 기단부를 크게 만들어 날렵하면서도 경쾌한 느낌을 준다. 1973년 불국사 삼층석탑을 수리할 때 이 석탑을 모방해서 상륜부를 만들어 올렸다고 한다. 지금도 석탑 상륜부 장식을 설명할 때 기준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두개의 탑은 같은 시기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삼층석탑>

동삼층석탑과 거의 동일한 양식으로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남원 실상사 석등(보물)>

경내에 삼층석탑과 함께 서 있는 석등(보물)이다. 석등은 3단의 받침돌 위에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올려 놓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팔각형을 하고 있다.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등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조각수법이나 조형미가 뛰어난 편이다. 석등이 규모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불을 밝히기 위에 앞에는 돌다리가 놓여져 있다.

<실상사 주불전인 보광전>

비로자나여래를 모시고 있다고 한다. 앞면 3칸 규모의 크지 않은 불잔으로 구한말 화재로 사찰 전각들이 불타버린 이후 중건된 것이라 한다. 원래 불전보다는 규모가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보광전 내부>

비로자나여래를 중심으로 양쪽에는 베트남에서 가져온 종이로 만들었다는 보살입상이 있다. 전통적인 사찰의 불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보광전 앞에서 본 동.서삼층석탑과 석등>

<사찰 뒷편에 위치한 약사전>

삼국시대에 조성된 철조여래좌상(보물)이 모셔져 있다.

남원 실상사 철조여래좌상, 보물
통일신라 말 지방의 여러 선종 사찰에서 쇠를 녹여 많은 불상을 만들었는데, 이 불상은 그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높이는 2.69m이다. 무릎 아래는 복원한 것이며, 깨어진 두 손도 근래에 찾아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하여 붙였다. 두리뭉실한 머리 윤곽, 촘촘한 고수머리, 원만하고 시원스런 얼굴, 넓은 가슴에 갸륨한 허리 등으로 보아 신라시대 불상의 특징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그러면서도 근엄하고 딱딱한 표정을 띈 이 불상은 온유함과 생동감을 보이던 앞 시대의 불상과 달라 신라 말 불상의 변천 양상을 가늠케 한다.  (안내문, 실상사, 2016년)


<남원 실상사 철조여래좌상(보물)>

<명부전>

<경내 한쪽편에 남아 있는 목탑지로 보이는 건물터>

<목탑 심초석>

<건물 기둥을 세웠던 주춧돌>

<칠성각>

<칠성각 내부>

<실상사 요사채>

극락전 영역

실상사 경내 서쪽편 언덕에 극락전 건물을 중심으로 실상사를 창건한 증각대사 홍척과 제자인 수철화상의 승탑과 탑비가 남아 있다.

<극락전 영역>

<극락전>

현재 실상사에 남아 있는 전각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실상사 극락전
이 건물은 극락세계를 주관하는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이다. 원래의 건물은 정유재란 때 불타버려 조선 숙종 때 다시 지었다. 그러나 고종 때 함양과 산청 출신 유생들이 절터를 가로채고자 건물을 불태워 버렸다. 후에 승려들이 힘을 모아 지금의 건물로 복구하였다. 건물 정면에는 정(井)자 문살로 짠 문짝과 빗살로 짠 문짝을 번갈아 달아 다채로움을 더하였다. 둥근 기둥은 위 아래 굵기의 변화가 없고, 천장은 바둑판 모양으로 짜 넣었다.  (안내문, 실상사, 2016년)

<홍척국사탑(보물)>

실상사를 창건한 홍척(洪陟)국사의 사리를 모신 승탑(보물 38호)이다. 탑은 팔각형을 기본으로 목조건축물 형태를 하고 있다. 받침돌은 팔각형 석재를 여러층 쌓아 올렸으며 연꽃모양의 장식을 하고 있다. 탑신 몸돌은 8면으로 되어 있으며, 앞,뒤쪽에 문을 새겼다. 4면에는 탑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부조로 새겨 놓고 있다.

<증각대사탑과 함께 세워져 있는 탑비(보물)>

실상사를 창건한 홍척(洪陟)국사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비몸은 남아 있지 않고,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받침돌은 무열왕릉비처럼 거북 형상을 하고 있다. 조각수법이 섬세한 편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비석받침돌을 고전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반면, 머릿돌은 조각수법이 뛰어난 편으로 앞쪽에 ‘응료탑비(凝蓼塔碑)’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비교적 이른 시기인 9세기 중엽에 만들어 졌다.

<수철화상탑(보물)>

실상사를 크게 일으킨 수철화상(秀澈和尙)의 사리를 모셔놓은 승탑(보물)이다. 아래받침돌에는 구름, 용무늬와 사자가 새겨져 있으며, 윗받침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겨 장식하고 있다. 몸돌은 팔각형으로 모서리에는 기둥을 새겨 놓았다. 각 면에는 사천왕상과 문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목조건축물의 기와지붕을 섬세하게 조각해 놓고 있다. 각부분에 조각해 놓은 무늬들이 오랜 세월에 마모되기는 했지만, 조각수법이 섬세하며 전체적인 규형미도 양호한 편이다. 목조건축물을 모방해서 만든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승탑의 형태를 하고 있다.

<수철화상탑 앞에 세워진 탑비(보물)>

탑비에는 수철화상의 행적과 탑의 조성경위 등을 기록하고 있으나 마모가 심하여 글자를 거의 판독할 수 없다. 탑비는 거북받침돌이 있는 당시의 일반적인 탑비와는 달리 직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탑비가 세워져 있다. 머릿돌에는 구름속에 두마리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가운데 ‘능가보월탑비’라는 승탑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사찰 뒷편>

옛 건물터에 대한 발굴.조사작업이 여러곳 진행되고 있다.

남원 실상사, 사적,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지리산 천왕봉을 마주하고 자리한 이 절은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스님이 처음 세웠다. 신라말기 교학보다 참선을 중시한 선종의 여러 종파가 전국 명산에 절을 세웠는데, 실상사가 그 중 하나이다. 정유재란(1597) 때 모두 불터 숙종 때 건물 36동을 다시 지었으나, 고종 때 화재를 당해 현재의 소규모로 복구하였다. 실상사는 훌륭한 스님들을 많이 배출하여 한국 선불교의 위상을 드높였다. 경내에는 국보인 백장암삼층석탑을 비롯해 보물 등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어, 이 절의 역사적 의의와 품격을 대변해 준다. 천왕봉을 정면으로 병풍처럼 펼쳐진 산자락이 절 앞으로 성큼 다가와 부처의 자비를 보이듯 포근히 감싸안고, 지리산에서 발원한 맑고 투명한 반선계곡 물이 속세의 번뇌를 씻어 주려는 듯 절 옆을 돌아 굽이쳐 흐르고 있다. (안내문, 실상사, 2016년)


<실상사 승탑(보물)>

실상사에서 떨어진 뒷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승탑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통일신라 말 양식을 계승한 고려초기에 조성된 것이라 한다.

<실상사 안쪽 옛 조계암터에 남아 있는 승탑들>

편운화상승탑을 비롯하여 4기의 승탑이 남아 있다.

실상사 편운화상부도
실상사 조계암터에 있는 이 부도는 신라말의 부도로 삼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높이는 182 cm, 탑신의 폭은 57.5 cm이다. 전체적으로 부처님께 오리는 공양용 큰 발우 모양이다. 편운화상은 구산선문 최초의 가람인 실상사를 처음 세운 홍척국사의 제자이며, 성주 안봉사의 창건주임을 알 수 있다. 정개(正開)는 후백제 견훤의 연호이며, 경오(庚午)는 910년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곳에는 편운화상부도 외에도 세기의 탑이 있다.  (안내문, 실상사, 2016년)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