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tstory Traveling

Since 2008, Korea & World by younghwan

담양향교, 담양도호부 관아에서 운영했던 중등교육기관

조선시대 담양도호부에서 관아에서 운영하던 공립 중등교육기관인 담양향교이다. 이곳에 향교가 세워진 것은 조선이 건국되던 시기인 1938년(태조7)이라고 한다. 현재의 향교 건물들은 대체로 숙종대에 다시 지어진것을 여러차례 고쳐지으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담양군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대나무숲 죽녹원 서쪽편에 언덕에 자리잡고 있지만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곳이다. 건물은 외삼문, 명륜당, 내삼문, 대성전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전학후묘의 형식을 하고 있다. 제법 큰 고을이었던 담양도호부의 위상에 걸맞게 대성전에 동.서무를 제대로 갖추고 있으며, 강당 건물도 꽤 큰 편이다. 강당 대청마루에서 문을 열면 주변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담양향교>

대나무숲으로 유명한 죽녹원 옆 영산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으며 경사진 지형에 외삼문, 명륜당, 내삼문, 대성전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다른 지역 향교에 비해서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담양향교 외삼문>

<강학공간의 중심 건물인 명륜당>

경사진 지형에 지어진 건물로 누각 형태를 하고 있다. 건물은 앞면 7칸의 큰 건물로 앞에서 보면 2층 건물처럼 보이지만, 안쪽에서 보면 단층이다. 현재의 건물들은 향교의 교육기능이 약화된 조선후기에 지은 것이다.  판물을 열면 넓은 대청마루에서 영산강과 담양읍치 경치를 감상하기 좋다. 제사 준비나 회의를 하기 위해 지은 것이지만 관아에서 세운 누각처럼 손님 접대를 하기 좋은 공간이다.

<강학공간으로 들어가는 길>

<마당 안쪽에서 본 명륜당>

<유생들이 머물던 기숙사인 동재>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건물 규모는 다른 향교에 비해 비교적 큰 편이다.

<맞은 편 서재>

<제향공간 계단과 내삼문>

경사진 언덕에 정원을 잘 꾸며놓고 있다.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이 위패를 모신 대성전>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건물 앞에 제사 준비를 하는 툇간을 별도로 두고 있지 않다. 내부 또한 마루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출입문으로 판문이 아닌 문살이 있는 문을 두고 있다. 대성전 앞 마당에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는 동.서무를 제대로 갖추고 있다.

<선현들의 위패를 모신 동무>

<맞은 편 서무>

<관리인이 사는 고직사>

조선시대 담양군은 영산강 본류 주변과 그 북쪽의 지역을 읍치로 하였다. 북쪽과 동쪽으로는 노령산맥으로 둘러싸여 있고 남쪽으로는 무등산이 있어, 영산강이 흐르는 남서쪽 방향으로 틔여 있다. 영산강 주변으로 비교적 넓은 농토를 보유하고 있으며, 수량도 풍부한 편으로 양반들이 선호했던 세거지가 많이 있다. 고을 규모가 크지 않지만 조선 태조 때 승려로 국사를 지낸 조구의 고향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되었고 태종대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도호부가 되었다고 한다.

<대성전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내삼문과 담양읍치>

<고직사 담장>

<향교 앞 비석>

<비석들>

담양향교, 전남 담양군 향교리
향교는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지방에 설립하나 공립교육기관이다. 이 향교는 광방천이 내려다 보이는 산아래 위치하고 있다. 청건 연대는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담양향교지에 의하면 조선 태조 7년(1398)에 세워졌다고 전한다. 그후 정조18년(1794) 부사 이헌유가 다시 세웠고, 순조7년(1807)에 부사 안정헌이 고쳐지었으며, 순조때에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북으로 된 장방형의 대지에 위치하고 있는데 경사가 심한 관계로 지형으로 5단으로 정리하여 외삼문, 명륜당, 내삼문, 대성전 순으로 배치하였다. <출처: 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