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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김선기 가옥, 장산리마을에 남아 있는 한옥

전남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마을에 남아 있는 고택인 김선기 가옥이다. 이 가옥은 조선시대 양반들이 선호했던 집터의 입지 조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조선 중기 선조 36(1603)에 처음 지어졌으며, 그 이후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쳤지만 비교적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안채는 조선후기 한옥과는 달리 ‘H’자처럼 보인 ‘ㄷ’자형을 하고 있는데, 앞면 5칸, 옆면 3칸 규모로 양쪽 날개에 방과 부엌을 달아 내었다. 조선중기 주택에서 볼 수 있는 특징들이 잘 남아 있다. 반면에 사랑채는 앞면 4칸, 옆면 2칸으로 누마루형태의 건물로 조선후기 건축양식이 반영되었다. 조선후기 한옥들은 마당을 넓게 하면서 건물을 칸수가 많은데 비해서 이 집은 마당이 넓지 않으면서도 짜임새있게 건물배치를 하였으며,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규모에 비해 웅장해 보인다.

<담양 김선기 가옥>

나즈막한 동산을 등지고 들판을 내려다 보고 있는 전형적인 양반가옥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문간채를 두지 않고 단순한 사주문 형태의 대문을 두고 있다.

<사랑채>

들판과 마을 풍경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정자처럼 지었다. 앞면 4칸 규모로 가운데 넓은 대청마루를,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대청마루>

‘망인당’이라는 적힌 현판이 걸려있다. 가운데 문을 달아서 안밖을 구분해 놓은 것이 특이하다.

<온돌방>

온돌방에는 ‘대산재’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툇마루>

경사진 지형에 둥근 목재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려 놓아 2층 누각처럼 보인다. 난간이 있는 툇마루를 두고, 목재를 깍아 자연스럽게 만든 계단을 두었다.

<사랑채 앞 마당>

<안채>

안채는 앞면 5칸 건물로 양쪽에 날개채를 달아 ‘H’자 형태를 하고 있다. 조선중기 이전에 지은 한옥에서 볼 수 있는 건물형태이다. ‘ㅁ’자형으로 폐쇄적인 구조를 하고 있는 한양이나 경북지방 한옥과는 달리 개방적인 구조이다.

<사당>

담장이나 출입문이 남아 있지 않으며, 앞쪽에 반칸정도 툇간을 두고 있는 전통 사당의 형식을 잘 갖추고 있다.

장산리마을은 옛 담양과 창평의 경계가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뒷쪽으로는 나즈막한 동산이 있고, 앞으로는 작은 하천과 비교적 풍족한 들판이 있다. 관아가 있던 창평현 읍치와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양반들의 세거지이다. 마을에는 조선중기에 지어졌다고 하는 김선기 가옥과 선조대 문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상황를 기록으로 남긴 미암일기를 쓴 유희춘을 모신 사당이 있다.

<장산리마을>

장산리마을은 뒷편에 나즈막한 동산이, 앞쪽으로 들판과 작은 개천이 흐르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지금 기준으로는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수리시설이 개선되기 전까지는 산과 가까운 높은 고지대에 위치한 논이 가뭄에 피해가 적기 때문에 경제적 가치가 높은 논이었고, 대부분 양반들의 소유였다고 한다. 이 마을은 전형적인 양반들이 선호했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마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한옥이 ‘김선기 가옥’이다.

담양 김선기 가옥,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
이 가옥은 마을의 맨 위에 위치한 전통가옥으로 안채는 현 소유자의 16대조인 김송명에 의해 건립되어지고, 14대조인 만덕 김대기에 의해 현재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그 뒤 순조25년(1825) 5대조 김현대가 고쳐지었으며, 1990년 보수한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가옥의 구성을 보면 안채와 사랑채, 사당 등 3동이 있다. 안채는 좌로부터 부엌, 골방, 큰방, 대청, 작은방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사랑채는 당호를 망인당이라 하고 있다. <출처:담양군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