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고궁박물관 마당에 세워져 있는 북관대첩비(복제품)이다. 임진왜란 때 북평사 정문부가 의병을 일으켜 함경도 길주, 백탑교 등지에서 가토 가요마사가 이끄는 왜병들을 격파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진 승전비이다. 비석은 1709년 북평사 최창대를 비롯하여 길주지역민들이 당시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북관대첩비는 러.일 전쟁 때 길주에 주둔했던 일군이 비석을 뽑아 일본으로 보내버렸다. 그 후 일본 황실에서 보관하다 야스쿠니 신사로 옮겨졌다. 2005년 일본으로부터 비석을 반환받았다가 2006년에 북한의 원소재로 인도되었다. 이곳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복제비를 만들어 세워놓고 있다.
<북관대첩비(복제품)>
경복궁 내 고궁박물관 마당에 세워져 있는 북관대첩비(복제품). 일본으로부터 반환받은 비석은 원래 위치인 북한으로 보내졌다.
<비석에 새겨진 글씨>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 때 북평사 정문부(1565~1624)선생이 의병을 일으켜 함경도 길주, 백탑교 등지에서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왜병들을 격파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진 승전비이다. 그러나 정문부 선생의 업적을 모함한 무리에 의하여 혁혁한 전공은 가리워지고 오히려 선생은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돌아가셨다. 그후 선생이 돌아가신지 43년 후에야 모든 것이 밝혀지고 선생이 돌아가신지 85년 뒤인 1709년에는 그곳에 부임했던 함경도 북평사 최창대가 글을 짓고 이명필이 글을 써서 함경북도 길주군 임명에 고을 주민의 뜻을 모아 마침내 북관대첩비를 건립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약 200년 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이 지역에 주둔한 일본군 이케다 마사스케 소장이 이 비석을 뽑아 일본으로 보내버렸다. 그 후 이 비석은 일본 황실에서 보관하다 야스쿠니신사로 옮겨졌다. 이러한 사실을 도쿄에서 활동하던 최서면 선생이 1978년에 옛 기록을 검토하다가 1909년 당시 일본 유학생이었던 조소앙 선생이 기록한 글을 읽고 처음 알게 되었으며 이 비석 또한 야스쿠니신사에 있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그 후 한국 정부와 민간단체들이 수차례 비의 반환에 노력을 기울여 2005년 10월 20일에 비를 반환받게 되었다. 이 비석은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에 관한 귀중한 역사적 자료인 동시에 남북 간의 잃어버린 역사상을 회복하고 한.일간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하는 증가가 될것으로 기대된다. 일본으로부터 반환된 북관대첩비는 남북 협의에 따라 2006년 3월 1일 북한에 인도되어 원소재인 함경북도 김책시에 복원되었으며, 이 비석은 원래의 비를 그대로 복원하여 2006년 4월 25일에 세운 복제비이다. <출처: 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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