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는 한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곳에 위치한 큰 섬으로 지금은 비교적 넓은 농지와 석모도와 교동도를 제외하고는 큰 섬을 이루고 있다. 간척을 하기전 강화도는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러져 있었으며, 넓은 갯벌이 섬들 사이를 연결하고 있었다. 강화도에 언제부터 인류가 거주하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넓은 갯벌과 크고 작은 섬들이 있어서 수렵과 채집 생활을 하였던 선사시대 사람들이 살기에 적당한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어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아왔다. 강화도 여러곳에 구석기시대 유물들이 발견되는 것으로 볼 때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아왔던 것으로 보고 있다.
강화도에는 여러 선사시대 유적지들이 있기는 하지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고인돌로 대표되는 청동기시대이다. 한반도 서남해안 교통로와 한강하구에 위치한 지리적 특징으로 비교적 이른 시기에 대규모 마을이 생기고 지배층을 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강화도 북쪽 한강 하구에 위치한 고려산과 별립산 일대에는 150여기의 고인돌이 남아 있으며, 유물들도 출토되고 있다. 강화도의 고인돌군은 화순.고창의 고인돌과 함께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주먹도끼(화도면 동막리 지표수습)
주먹찌르개(양사면 교산리 지표수습), 여러면석기(내가면 오상리 출토)
깬화살촉(구석기시대),
격지석기(구석기시대)
강화의 구석기 문화
현재까지 강화지역에서 본격적인 구석기 발굴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강화 오상리 고인돌군 발굴조사에서 구석기시대 유물인 여러면석기가 출토되었다. 또한 양사면 교산리와 하점면 창후리 등에서 석기가 땅위에서 수습되고 있을뿐 아니라, 구석기시대 토양인 고토양층이 여러지역에서 발견되고 있어 강화지역에 구석기 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출처:강화역사박물관>
강화의 신석기 유적
빗살무늬토기(복제품), 빗살무니토기편
강화의 신석기 문화
강화의 신석기 유적은 1910년 화도면 사기리에서 빗살무늬토기가 발견되면서 알려졌다. 현재는 화도면 동막리와 여차리, 동검도, 석모도, 우도, 주문도 등 간척으로 평야가 생기기 이전의 해안선 주변에서 빗살무늬토기가 수습된다. 특히 우도에서 수습된 토기에는 볍씨 자국이 남아 있어 농사를 짓고 살았던 당대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출처:강화역사박물관>
돌도끼(청동기시대),
무경식화살촉(청동기시대), 뼈화살촉(청동기시대), 석촉(청동기시대)
석검(청동기시대)
홍도(청동기시대), 무문토기옹관(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복제품), 갈판.갈돌,
돌망치,어망추,반달돌칼,간돌토기,돌칼(복제품), 청동무기
선사시대 강화도 지역 주민 생활모습(재현), 갯벌에서의 채집과 어로활동을 생업으로 했을 것으로 보이며, 농경생활도 하고 있다.
강화의 청동기문화
사냥과 채집생활을 벗어나 농경생활이 발달하면서 높은 구릉 주변으로 대규모 마을이 생겨났다. 농경사회에는 마을의 공동노동과 생산물의 분배 등을 조정할 지배자가 등장하였는데, 고인돌은 이 지배자의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강화의 대표적인 청동기 유적은 고려산을 중심으로 한 고인돌이다. 고려산과 별립산 주변으로 150여기의 고인돌이 있다. 당시 지배계층의 무덤으로 생각되는 고인돌이 이처럼 많이 밀집되어 있는 것은 강화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 지배자가 많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출처:강화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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