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보은군 보은읍 삼산리 옛 보은군 관아터에는 군수(현감)가 공식 업무를 보던 건물이 동헌이 남아 있다. 건물이 세워진 처음 세워진 연대는 기록에 없으나 순조 때 크게 고쳐 지었다고 한다. 앞면 7칸, 옆면 3칸의 비교적 큰 규모의 건물이다. 오른쪽 4칸은 대청마루이며, 왼쪽 3칸에는 온돌방을 두고 있다. 대청마루 동쪽 1칸과, 안쪽을 높게 만들어 누마루 형태를 하고 있다. 대청마루 뒷면과 옆면에는 판문을 달아 놓아 필요시 열어놓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조선후기 관아 건물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라 한다.
<보은군 동헌>
충북 보은군 보은읍 옛 관아터에 남아 있는 보은 동헌. 조선후기에 지어진 건물로 앞면 6칸 규모이다.
<대청마루>
건물 동쪽편 4칸은 넓은 대청마루로 되어 있다. 가운데 2칸은 뒷면 1칸을, 동쪽편 1칸은 뒷면 2칸을 누마루처럼 높게 만들었다. 조선후기 관아 건물에서 볼 수 있는 특징 중 하나이다.
<옆에서 본 모습>
건물 앞쪽 1칸은 서쪽끝을 제외하고는 마루로 되어 있다. 통로로 사용하는 공간이다.
<뒤에서 본 모습>
대청마루 옆면과 뒷면에는 판문을 달아놓고 있다. 필요시 판문을 열면 넓고 시원한 분위기를 줄 수 있다. 조선후기 관아 건물에서 볼 수 있는 형태라 한다.
<동헌 뒷마당과 작은 일각협문>
보은군(報恩郡)은 충청도 청주와 경상도 상주를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보은군과 회인현이 합쳐진 오늘날 보은군 중 회인면 주변 지역을 제외한 지역이 옛 보은군이다. 삼국시대 신라가 백제를 견제하기 위해 삼년산성을 쌓았다고 하며 이때부터 삼년산군이라 불렀다고 한다. 고려때는 보령군이라 불렀다가 서해안 보령현과 음이 같아 조선시대에는 보은현으로 이름을 바꿨다. 조선초에는 종6품 현감이 고을 수령인 보은현이었으나 순조때 보은군으로 승격되었다고 한다.
<동헌 건물만 남아 있는 옛 보은군 관아 건물터>
<객사가 있던 자리>
동헌 동쪽에 있는 초등학교가 있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객사가 있었던 자리로 보인다.
<관아터였음을 말해주는 오래된 고목>
<송덕비>
고목 아래에는 보은 현감(군수)을 지낸 인물들을 위해 세워진 송덕비들이 자리잡고 있다. 보은군 관내에 흩어져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보은 동헌, 충북 보은군 보은읍 삼산리
이곳은 조선시대에 보은군의 청사로 쓰던 동헌이다. 보은은 본래 신라의 삼년산군으로, 고려 초기에는 보령군으로 바뀌었고, 조선 태종 16년(1416)에는 보은현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처음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철종 11년(1860)에 다시 고쳐 세웠다. 융희1년(1907)에 항일의병운동을 진압하기 위하여 일본의 헌병대가 사용하다가 경찰서로 사용하면서 구조가 많이 변형되었다. 1983년에 복원하여 오늘의 모습을 갖추었다. 정면 7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집이다. (문화재청, 2016)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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