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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선병국 가옥,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대저택

충북 보은군 장안면 개안리에 있는 선병국가옥이다. 일제강점기인 1909년부터 지어진 개량한옥으로 충북 지역을 대표하는 대저택 중 한곳이다. 속리산에서 흘러 내려온 삼가천이 서원계곡을 지나 평지와 만나는 곳에 이 가옥이 위치하고 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삼가천이 흐르는 방향이 바뀌면서 섬과 같은 지형을 하고 있는 곳이다. 경북 상주에서 충북 청주지역으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이자 보은읍에서 법주사가 있는 속리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하고 있어 여행하는 손님들이 많이 찾았을 것으로 보인다.

<보은 선병국 가옥>

<들어가는 길>

속리산에서 흘러내러온 삼가천이 집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 마을에서 다리를 건너 후문 방향으로 들어간다.

<후문>

사주대문을 하고 있는 저택 후문. 오른쪽 골목길을 따라 가면 정문과 연결된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대저택으로 사랑채, 안채, 사당을 중심으로 대문채, 행랑채 등 많은 부속건물을 두고 있다. 전통 한옥에 비해 마당을 넓게 쓰고 있으며, 건물 또한 대체로 전통한옥에 비해 공간이 넓은 편이다. 사랑채와 안채 모두 ‘工’자형 공간 배치를 하고 있으며, 행랑채는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ㄷ’자로 배치되고 두 공간을 분리해 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시멘트나 벽돌을 비롯하여 전통 한옥에서는 법규때문에 사용하지 않았던 석재 기단 등을 사용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기술이나 생활환경 등에 따라 한옥이 구조나 형태가 바뀌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마당>

후문으로 들어서면 담장이 있는 큰길이 있는 마당이 보인다. 오른쪽은 사당 담장이고 왼쪽에는 장독대가 있다.

<뒷마당>

뒷마당에 있는 상당히 넓은 장독대와 초가지붕을 하고 있는 창고. 전통한옥 대저택에 비해서도 장독대의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안채 출입문으로 들어가는 길>

전통한옥과 달리 내부에 담장을 쌓아 공간을 분리하고 있다.

<안채 출입문>

작은 협문이며 사당과 뒷마당으로 연결되는 출입문이다. 앞쪽에 큰 출입문이 있다.

<안채>

서쪽 방향으로 ‘工’자 모양의 건물배치를 하고 있다. 전통한옥에 비해 앞마당이 상당히 넓은 편이다. ‘ㄷ’자모양의 긴 행랑채가 앞쪽을 막고 있다.

<안채 앞 행랑채>

<사당 입구>

<사당>

사당은 궁궐 건물처럼 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3칸 규모의 건물을 올려 놓고 있다.

<사당 앞 제수각>

사당 앞 마당 한쪽에는 제사를 준비하는 제수각이 있으며, 두 건물을 복도각으로 연결하고 있다. 이는 조선시대 사당 건축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이다.

사당
사당채는 다시 안마당에 축을 직각으로 꺾어서 행랑채의 북쪽에 사랑채와 축을 나란히 해서 배치되었다. 3칸의 솟을 삼문을 전면으로 하고 뒤로 3칸의 사당채가 놓였다. 사당 마당 서쪽은 3칸의 제수채로 구성되는데 제수채에서 사당채까지 ‘아르(r)’자로 꺾여진 복도채가 연결된다. 전면 삼문을 가운데로 하여 담장이 둘러졌다.  (안내문, 보은군청, 2016년)

<사랑채 전경>

<출입문>

<사랑채>

전통 한옥에서는 보기 힘든 ‘工’자형 구조를 하고 있다. 가운데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익랑을 배치하고 있다. 궁궐 건물처럼 잘 다듬은 대리석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려 놓고 있다. 전통 한옥에 비해서 공간을 넓게 쓰고 있으며, 앞마당 또한 상당히 넓다.

<옆에서 본 모습>

<사랑채 앞 마당에 심어져 있는 오래된 소나무>

사랑채
사랑채는 안채 동남쪽에 안채와 직각 축으로 남동쪽 방향에 있다.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2고주 5량가로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평면 구성은 동쪽의 1칸이 부엌이고, 사랑방이 2칸, 사랑방 서쪽으로 1칸의 대청과 작은 사랑방이 이어진다. 부엌 위쪽에는 다락을 설치하였으며, 부엌 앞 퇴에는 골방을 두어 사랑방 앞 툇마루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높은 자연석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을 놓고, 그 위에 방형의 기둥을 세웠다. 사랑방과 작은 사랑방 앞쪽 아래 부분에는 머름을 설치하고 쌍분합문을 설치하였으며, 대청에는 사분합문을 설치하였다. 가구 형식은 2고주 5량가이며,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안내문, 보은군청, 2016년)

<솟을대문>

<대문 앞 넓은 공간에 있는 비각>

이 저택 주인이었던 선처흠 효열각이라고 한다. 선처흠과 부인 경주 김씨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1892년에 명정되었고, 1928년에 세워졌다.

<비각 안에 걸려 있는 현판>

<비각 옆에 세워져 있는 기념비>

<저택 옆 관선정>

선처흠의 손자인 선정훈이 건립한 서숙으로 1950년대 초까지 전국 각지 수백명의 젊은이들에게 개인 재산으로 음식과 잠자리를 무료로 제공하고 영남에서 홍치유라는 좋은 선생을 모셔다가 가르쳤다. 이곳에서 수학한 이들이 1960년대와 70년대 이후 우리나라 한문학의 주류를 이루게 된다.

<관선정 앞 장독대>

보은 선병국가옥, 충북 보은군 장안면 개안리
1909년부터 1921년에 걸쳐 건축되었으며 사랑채, 안채, 사당을 기본으로 대문채, 행랑채, 화장실 등 부속건물과 텃밭, 장독대, 정원을 두루 갖춘 대규모가옥으로 과거에는 행랑채, 과객실, 방앗간채까지 있었다. 사랑채는 앞.뒤 모두 툇마루를 설치하여 더욱 넓은 공간을 활용하게 하였다. 가운데 넓은 대청을 중심으로 양 옆에 큰사랑방을 비롯한 골방.약방.마루 등을 시설하였다. 工자형 평면의 안채는 사랑채의 왼쪽에 자리하였는데 가운데의 대청이 중심이 된다. 대청은 앞.뒤 툇마루를 통하여 어떤 방으로도 갈 수 있다. 부엌은 아주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고 위에는 다락이 마련 되었다. 대체로 사랑채와 비슷한 구조를 하였으나, 사랑채가 전체적으로 원기둥을 사용한 반면 안채는 앞쪽마 원기둥이고 나머지는 네모기둥을 사용하였다. 안채를 넓게 둘러싸서 안마당 공간을 만들고 있는 ㄷ자형 행랑채는 대문간.문간방.구들.광으로 만들었다. 사당채는 행랑채의 북쪽에 사랑채와 축을 나란히 해서 배치되었다. 남쪽에 부엌을 두고 있는 제수채와 사당을 연결하는 복도채는 20세기에 들어와서 나타난 시설물로 비바람이 칠 때도 의례를 거행하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선병국가옥은 工자형의 특이한 구조로 시멘트, 벽돌 등 새로운 건축 자재가 사용되고, 한옥의 규모를 크게 하는 등 구한말 변화하는 한옥의 양식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인근에는 이와 유사한 형태인 선병묵고가와 선병우고가가 있다. (안내문, 보은군청, 2016년)

<출처>

  1. 안내문, 보은군청, 2016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6년
  3. 문화재청,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