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보은군 속리산 법주사에 남아 있는 석조이다. 법주사 승려들의 식수를 담아두던 돌그릇이라고 한다. 통일신라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존하는 가장 큰 석조 중 하나이다. 사각형 모양으로, 아무런 조각을 하지 않은 간결한 형태를 하고 있다. 석조는 식수를 담아두는 곳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사찰입구에 놓여져 사찰을 찾은 신도들이 손을 씻으면서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는 서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카톨릭 성당이나 이슬람사원 입구에서 비슷한 기능을 하는 분수나 석조가 놓여 있다.
<법주사 석조>
사찰을 찾는 신도들이 손을 씻고 목을 축이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법주사 석조는 사찰 경내 구석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개울 건너편으로 길이 있어 구석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통일신라 때는 사찰을 들어오는 입구였던 것으로 보인다.
<물이 나오는 작은 구멍>
<석조 내부>
<2008년 모습>
보은 법주사 석조,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석조는 높이 1.3m, 길이 4.46m, 너비 2.42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며 쌀 80가마를 채울 수 있는 부피를 지니고 있다. 바닥부터 윗부분에 이르기까지 수직의 벽을 이루고 있으며, 안팎의 벽체에는 아무런 무늬 장식이 없이 단조로운 형태이나 윗면의 가장자리는 모를 깎아서 부드러운 느낌을 내고 있다. 벽체의 두께도 다르게 하여 긴쪽은 23cm, 짧은쪽은 34cm 두께를 조정하여 수리적인 비례와 균형을 잃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아랫부분에 11cm의 구멍이 있어 실제로 물을 담아두는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모통이부분 일부의 손상 흔적을 제외하고는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 작품이다. <출처: 문화재청>
법주사(法住寺)는 삼국시대 진흥왕 때 (553년)에 창건되었다고 하며 혜공왕 때(776년) 승려 진표가 크게 중창함으로써 미륵신앙의 중심 사찰이 되었다. 오늘날 금동미륵대불이 있는 곳에는 오랫동안 금동대불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대웅전에서는 옛 금당인 장륙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통일신라까지 신앙의 중심이었던 목탑도 유일하게 남아 있다.
<속리산 법주사(사적)>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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