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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서오릉 경릉(敬陵, 사적), 추존왕 덕종과 소혜왕후의 능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 서오릉(사적)에 있는 경릉(敬陵)이다. 추존왕 덕종(德宗)과 소혜왕후의 능이다. 왕릉의 조성을 간소하게 한 세조의 유지를 받들어 광릉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양쪽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조성한 동원이강릉 형식을 하고 있으며, 봉분에는 병풍석을 두르고 있지 않다. 경릉은 덕종이 세자의 신분으로 죽었기때문에 문석인만 두는 등 세자의 격식에 맞게 조성되었으며, 덕종으로 추존된 이후에도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였다. 후대 추존왕 능에도 이런 원칙이 적용되었다. 반면에 소혜왕후는 대왕대비의 신분으로 승하했기때문에 문석인과 무석인을 갖추는 등 왕릉의 격식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

덕종은 세조의 장남으로 태어나 세조 즉위 직위 세자로 책방되었지만 20살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서오릉은 젊은 나이에 요절한 아들을 위하여 세조가 마련한 능역이다. 아들 성종이 조선 9대 성종에 즉위하면서 추존왕이 되었다. 소혜왕후는 세조가 왕위에 오른 계유정난부터 성종, 연산군대까지 살았던 인물로 조선왕조 왕실 이야기를 묘사한 사극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다.

<고양 서오릉 경릉>

세조의 장남인 덕종(추존)과 소혜왕후 한씨의 능인 경릉이다. 세조대에 20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세자를 안장하기 위해 터를 잡은 곳으로 성종대에 덕종으로 추존되면서 왕릉으로 격상되었다. 왕릉에서는 상석으로 여겨지는 오른쪽에 왕의 능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나 덕종은 세자의 신분으로 죽었고, 소혜왕후는 대왕대비의 신분으로 죽었기 때문에 상석인 오른쪽에 소혜황후의 능이 자리잡고 있다.

<홍살문>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연결되는 참도>

거친 박석을 사용해서 만든 전형적인 참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산릉제례를 올리는 공간인 정자각>

잘 다듬은 화강석을 4단으로 쌓아 월대를 조성하고 그 위에 ‘丁’형 건물을 올려 놓고 있다. 정형화된 조선왕릉 정자각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정자각 내부>

<정자각에서 본 참도>

정자각 툇간이라 할 수 있는 배위청에서 본 참도와 홍살문이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능역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능역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쉬는 공간인 수복방>

<표석이 세워진 비각>


<경릉 표석>

<추존왕 덕종의 능>

세자의 묘로 조성되었기때문에 난간석이나 마주석 등이 없고 석양과 석호도 1쌍만 설치되어 있다.  덕종은 조선에서 처음 왕으로 추존된 인물이다. 왕으로 추존된 이후에서 석물 등은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였다. 경릉의 사례는 후대 추존왕의 경우에도 적용되었다.

<소혜왕후의 능>

반면에 소혜왕후는 대왕대비의 신분으로 죽었기 때문에 왕릉의 격식에 따라 석물 등이 조성되었다.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에 소재한 서오릉은 예종의 창릉과 숙종의 명릉을 비롯하여 많은 조선왕실을 능원이 조성된 곳으로 태조의 능이 있는 동구릉 다음으로 많은 능원이 있는 곳이다. 서오릉은 1457년(세조3)에 의경세자가 20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자 세조가 풍수지리설에 따라 길지로 추천된 이 곳에 안장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곳은 세조가 터를 잡은 곳으로 그의 맏아들인 덕종(추존)과 왕비, 세조의 뒤를 이은 예종과 왕비의 능이 근처에 자리잡고 있다. 창릉은 서오릉에서 왕릉으로는 처음 조성되었다. 서오릉의 원찰로 부근에 수국사가 있다.

<서오릉 경릉 주변 숲>

<서오릉 재실>

고양 서오릉 경릉
경릉은 덕종(추존)과 왕비 소혜왕후(추존) 한씨의 능이다. 덕종은 조선 제7대 임금인 세조의 맏아들로 태어나 세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세자가 되었으나, 20세의 나이로 돌아가셨고(1457) 뒤에 그의 아들 성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덕종으로 추존하였다. 소혜왕후 한씨는 서원부원군 환학의 딸로 세조 즉위년에 세자빈이 되어 월산대군과 성종 형제를 낳았으며, 성종이 왕위에오른 뒤 왕비로 추존하면서 소혜왕후라 부르게 되었다. 연산군 10년(1504)에 68세로 돌아가셨다. 특히 불경에 조예가 깊었으며, 부녀자의 예의범절에 관하여 쓴 내훈이라는 저술을 남겼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