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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서오릉 명릉(明陵, 사적), 조선 19대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인원왕후의 능

경기도 고양시 신도동 서오릉(사적)에 명릉(明陵)이다. 조선 19대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민씨, 계비 인원왕후 김씨의 능이다. 명릉은 조선 왕릉 중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숙종과 계비인 인현왕후의 능이 나란히 배치된 쌍릉 형태를 하고 있으며, 제2계비인 인원왕후 김씨의 능이 왼쪽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정자각을 같이 쓰고 있어서 이를 포함하여 명릉이라 한다.

<고양 서오릉 명릉(사적)>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사적) 입구에 위치한 조선 19대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인원왕후의 능인 명릉. 숙종은 원비 인경왕후의 익릉을 이곳에 조성하면서 자신도 그 옆에 묻힐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숙종 사후 집권세력이었던 노론에서 경종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계비 인현왕후와 함께 쌍릉으로 조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영조때 제2계비 인원왕후의 능을 이곳에 조성하면서 특이한 형태의 왕릉이 되었다.

 

<홍살문>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참도>

<산릉제례를 올리는 정자각>

<정자각 내부>

<정자각 앞 건물터>

<정자각 뒷편 표석이 세워진 비각>

<정자각 뒷편 명릉 봉분>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의 능이 쌍릉 형식으로 앞쪽에 있고 그 뒷편에 제2계비인 인원왕후의 능이 자리잡고 있다. 정자각을 같이 사용하고 있어 쌍릉이면서도 동원이강릉의 형식을 하고 있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 반영된 능의 배치이다. 선조의 목릉이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

봉분이 나란히 배치된 쌍릉의 형식을 하고 있다. 봉분 주위에 난간을 두르고 둘레석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혼유석을 받치는 북모양의 고석을 4개 사용하고 있는 등 조선후기 왕릉 양식을 사용하고 있다.

<봉분 앞 혼유석>


<장명등>

<문석인, 무석인, 석마와 망주석>

<석양과 석호>

<봉분에서 내려다 보이는 정자각>

숙종은 조선시대 사극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왕으로 재위기간 46년 동안 4명의 왕비를 두었으나, 이곳에는 인현왕후 민씨와 제2계비 인원왕후 김씨의 능이 같이 조성되어 있고, 원비인 인경왕후 김씨의 능인 익릉은 약간 떨어진 서오릉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경종의 어머니인 장희빈의 묘인 대빈묘는 원래 경기도 광주시 오포면에 있던 것을 최근에 옮겼다. 숙종때는 노론.소론.남인.북인 간의 당쟁이 심했던 시기로 숙종이 죽고, 경종이 즉위할 때는 노론이 집권하던 시기이다.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에게 연산군때의 일을 상기시키며, 그리 사이가 좋다고 볼 수 없었던 인현왕후와 숙종을 쌍릉형태로 능을 조성하여 왕을 압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왼쪽 언덕에 위치한 인원왕후의 능>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에 소재한 서오릉은 예종의 창릉과 숙종의 명릉을 비롯하여 많은 조선왕실을 능원이 조성된 곳으로 태조의 능이 있는 동구릉 다음으로 많은 능원이 있는 곳이다. 서오릉은 1457년(세조3)에 의경세자가 20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자 세조가 풍수지리설에 따라 길지로 추천된 이 곳에 안장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곳은 세조가 터를 잡은 곳으로 그의 맏아들인 덕종(추존)과 왕비, 세조의 뒤를 이은 예종과 왕비의 능이 근처에 자리잡고 있다. 창릉은 서오릉에서 왕릉으로는 처음 조성되었다. 서오릉의 원찰로 부근에 수국사가 있다.

<서오릉 명릉 들어가는 숲길>

<서오릉 입구 재실>

서오릉 명릉, 사적, 경기도 고양시 신도동
명릉은 조선 19대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민씨, 그리고 제2계비 인원왕후 김씨의 능이다. 숙종과 인현왕후는 나란히 자리한 쌍분으로 쓰고, 인원왕후의 능은 옆에 따로 있어 같은 언덕에 배치되었다. 숙종은 왕비를 세번 맞아 들였는데, 원비인 인경왕후 김씨의 능인 익릉은 서오릉 안에 따로 있다. 숙종은 18대 현종의 아들로 태어나 현종 9년(1667)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674년에 왕위에 올라 재위 46년간 많은 업적을 남겼다. 예의에 관한 선비들 간의 논쟁과 장희빈을 중심으로 한때 인현왕후 민씨를 몰아낸 사건을 겪었으나, 상평통보를 주조하고 백두산에 정계비를 세웠다. 재위 46년(1720)에 60세로 돌아가셨다. 인현왕후 민씨(1667~1701)는 여양부원군 민유중의 딸로 숙종 7년(1681)에 숙종의 계비가 되었다. 숙종 15년(1689) 왕자 윤(뒤의 경종)의 세자 책봉 문제로 장희빈이 모함하여 폐위당하였다. 후에 장희빈이 몰락하면서 복위된 뒤 35세로 돌아가셨다. 인원왕후 김씨는 경원부원군 김주신의 딸로 숙종 28년(1702)에 왕비가 되었고, 영조 33년(1757)에 71세로 돌아가셨다. <출처: 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