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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 동구릉 혜릉(惠陵, 사적), 조선 20대 경종의 원비 단의왕후의 능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동구릉(사적)에 있는 혜릉(惠陵)이다. 조선 20대 경종의 첫번째 비인 단의왕후의 능이 모셔진 단릉이다. 조선후기 당쟁이 극심했던 숙종대에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과 함께 세자빈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내다 경종이 즉위하기 전에 죽었다. 세자빈 시절에 인품이 좋게 평가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세자빈 신분으로 죽었기 때문에 세자빈 무덤으로 조성되었다가 경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왕후로 추존되었다. 사후에 추존되는 경우 원래 석물을 유지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경종은 혜릉으로 격을 높이면서 난간석, 무석인, 석양, 석호, 석마 등 석물을 추가하여 왕릉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구리 동구릉 혜릉>

구리 동구릉에 위치한 조선 20대 경종의 원비 단의왕후의 혜릉이다. 단의왕후가 세자빈 시절에 죽었기때문에 세자빈 무덤으로 조성되었으나, 경종 즉위 후 단의왕후로 추존되었으며, 봉분에 석물을 추가하여 왕릉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혜릉 들어가는 길>

혜릉은 동구릉 서쪽 능선 현종의 숭릉과 헌종의 경릉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참도>

<산릉제례를 올리는 공간인 정자각>

경사진 지형을 고려하여 월대 아래쪽에 축대를 쌓아 단을 높인 후 그 안쪽에 월대와 건물을 올렸다. 정자각은 숙종의 명릉과 마찬가지로 정전 양쪽에 익랑을 두지 않고 있다.

<정자각 월대>

앞쪽에 단을 쌓아 지대를 높인 반면 월대는 다른 정자각에 비해 낮게 조성했다.

<수복방 건물터>

<정자각 뒷편 표석이 세워진 비각>

표석은 영조가 조성했다.

동구릉(사적)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1408년에 승하하면서 조성한 건원릉을 중심으로 역대 왕과 왕후의 능 9기가 조성되어 있다. 동구릉에는 한 분만 모신 단릉, 두분을 모신 쌍릉, 한곳에 산줄기를 달리해서 모신 동원이강릉, 두분을 함께 모신 합장릉, 세분을 나란히 모신 삼연릉이 있어 다양한 모습의 왕릉을 볼 수 있다. 동구릉에 왕릉을 조성한 왕으로는 태조를 비롯하여 5대 문종과 왕비, 14대 선조와 왕비, 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18대 현종과 왕비, 21대 영조와 왕비, 추존왕인 문조와 왕비, 24대 헌종과 왕비이다.

<동구릉 재실>

구리 동구릉 혜릉, 사적, 경기 구리시 인창동
단의왕후(1686~1718)는 조선 20대 왕인 경종의 첫번째 비로서, 1686년(숙종 12)에 탄생하여 1696년 경종이 세자였을 당시에 세자빈이 되었다가 경종이 왕위에 오르기 2년 전인 1718년(숙종 44)에 돌아가셨다. 단의왕후는 비록 살아서 왕후로 책봉되지는 못하였지만 1720년 경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왕후로 추봉되었다. 그리고 1722년(경종2)에 세자빈묘로 소박하게 조성되었던 무덤을 능의 격에 맞추어 석물을 추가로 제작하였다. 경종은 기존의 단의빈 묘를 단의왕후 혜릉으로 높이면서 능에 난간석, 무석인, 석양, 석호, 석마 등 석물을 추가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혜릉의 표석은 훗날 영조대에 이르러 세우게 되었다. 영조는 1746년(영조 22) 인근에 있는 현종 숭릉 표석을 본보기로 삼아 혜릉 표석을 제작하였다. 표석 앞면의 글씨는 당시 명필인 판충주부사 유척가가 쓰고, 뒷면의 글씨는 여선군 이학이 썼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