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왕대리 세종 영릉(사적) 능역에 있는 재실이다. 이곳에 영릉을 조성할 때 지어진 재실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현재의 재실은 1970년대 세종대왕 영릉 성역화 사업 때 다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산릉제례 때 제관이 머무는 공간이자 능참봉이 집무를 보는 공간인 재방과 능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머무는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안향청과 제기고는 별도로 두고 있지 않다.
재실은 원래 무덤이나 사당옆에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지은 집을 말하며 삼국시대 시조묘나 신궁제도에서 그 기능이 유래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유학이 사회전반을 지배하던 조선시대에는 왕릉을 조성하는 산릉제도에서 그 기능이 정립되었다고 하며, 일반 사대부에서 제사를 준비하기 위한 공간으로 많은 재실들이 건축되었다. 재실은 평상시 영(종5품) 또는 참봉(종9품) 등이 능역의 관리를 위해 근무하는 곳이며, 제례시에는 제관들이 머무르면서 제례를 준비하는 공간이다.
<세종대왕 영릉 능역 입구에 있는 재실>
최근에 새로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정형화된 구한말 재실 건물 형태를 하고 있다.
<재실 행량채>
솟을대문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방과 마루로 되어 있다. 일반적인 왕릉 재실과는 달리 삼문형식을 하고 있다.
<산릉제례 때 제관이 머무는 공간인 재방>
앞면 6칸의 건물이다. 누마루가 설치되어 있는 등 구한말 건축양식이 반영되어 있다. 솟을대문에서 재방까지는 어도가 연결되어 있다.
<재방 툇마루>
<재방 한쪽편에 있는 누마루>
영릉(세종.소헌왕후릉) 재실터
이 곳은 발굴조사 결과 여러동의 건물터와 각종 유물이 출토되어 영릉(세종.소헌왕후릉)과 관련된 재실터로 확인되었다. 즉 상.하.남.북으로 중복된 기단 석렬과 이들 주변으로 축조된 담장터, 암거시설, 폐기장 등과 함께 백자를 비롯한 기와, 전돌, 토기, 철기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소조상, 와당, 인각와, 묵서명 백자, 청화백자 등이 발견되었는데 이와 같이 왕릉 앞에서 대규모 건물터와 많은 유물이 출토된 점을 감안하여 이곳을 영릉의 재실터로 추정하고 있다. 1778년 유의양이 지은 춘관통고에도 홍살문으로부터 동남쪽 250보의 위치에 전사청 등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왕릉의 재실은 산릉제례를 위해 ‘임금이 내려준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안향청’, ‘제례음식을 만들고 제례를 총괄하는 전사청’, ‘제례용 그릇과 옷을 보관하는 제기고’, ‘능지기의 거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릉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의 합장릉으로 1446년 왕후의 승하와 함께 헌릉 서쪽에 모셨다가 1469년에 이곳으로 옮겼다. <출처:문화재청>
<영릉 재실 건물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터>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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