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회암사지에 있는 나옹선사탑과 석등이다. 무학대사탑, 지공선사탑과는 달리 탑비는 옆쪽 언덕에 세워져 있다. 명성에 비해서 승탑은 단촐하면서도 소박한 느낌을 주고 있다. 팔각형을 기본으로 목조건축물을 모방한 전형적인 승탑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몸돌과 받침돌에 조각을 새겨놓지 않는 등 단순한 형태를 하고 있다. 석등은 4각형을 기본으로 장식이 없는 단순한 형태를 하고 있다. 고려초기 승탑과 석등에 비해서 조형미가 많이 떨어진다. 당시 전국적으로 승탑을 만들 수 있는 조각가들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나옹선사(1320∼1376년)는 고려말을 대표하는 승려로 무학대사의 스승이기도 하다. 나옹(懶翁)은 그의 호이며, 시호는 선각(禪閣)이며 공민왕으로부터 보제존자((普濟尊者)라는 호를 받았다. 중국 원나라 법원에서 인도의 승려 지공의 지도를 받았으며, 전국의 여러 사찰에서 머물면서 불법을 전했다고 한다. 회암사 주지를 지냈으며, 고려말에서 조선초 불교를 정립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승려로 전국의 많은 사찰에 그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의 승탑은 양주 회암사를 비롯하여, 여주 신륵사, 원주 영전사에 세워졌으며, 여주 신륵사에는 그를 모신 조사당이 있다.
<양주 회암사지에 있는 나옹선사탑과 석등>
나옹은 고려말을 대표하는 승려로 회암사를 크게 중창하였다. 그의 사리는 여주 신륵사, 원주 영전사에도 세워졌다.
<승탑>
승탑은 팔각형을 기본으로 받침돌, 탑신, 머리장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받침돌과 탑신 몸돌에 부조를 새겨 놓지 않는 등 장식성을 배체하고 있다. 조갃수법이나 전체적인 조형미가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석등>
회암사지 다른 승탑의 석등과 마찬가지로 4각형을 기본으로 한 단순한 형태이다.
<옆쪽 언덕에 세워져 있는 탑비>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올려놓은 전형적인 탑비의 형태를 하고 있다. 최근 화재로 비석 일부가 훼손되어 복제품이 놓여 있다. 탑비는 선각왕사비라 부른다.
<여주 신륵사에 있는 나옹선사 사리를 모신 석종형부도(보물)>
회암사지 승탑과는 달리 석종모양을 하고 있다. 앞쪽에 석등(보물호)가 있으며, 옆쪽에 탑비(보물)가 세워져 있다. 신륵사는 나옹선사가 마지막으로 머물면서 입적한 곳이다.
<영전사지 보제존자탑>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는 보제존자탑. 원주 영전사지에 있던 나옹선사의 승탑이다.
양주 회암사지 나옹선사 부도와 석등
회암사 경내의 지공선사 부도 아래쪽에 있는 나옹선사의 부도와 석등이다. 나옹선사는 고려 후기의 승려로 본명은 혜근이다. 오대산 상두암에 머물렀고, 공민왕에게 설법을 하였다. 회암사의 주지가 된 후 절을 중창하였고, 우왕 2년(1376)에 입적하였다.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시는 곳으로, 이 부도는 나옹선사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 8각을 기본형으로, 기단(基壇) 위에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3단을 이루는 기단의 가운데받침돌은 배가 불룩한 북모양을 하고 있다. 둥근 탑신의 몸돌은 아무런 조각없이 간결하다. 지붕돌은 경사가 완만하며, 네 귀퉁이에서 살짝 치켜 올려갔다. 지붕돌 위로는 하나의 돌로 조각한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석등은 4각을 기본형으로, 3단의 받침 위로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을 올린 후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화사석은 앞 ·뒷면에 창을 내었다. 지붕돌은 낙수면의 경사가 느리고, 처마는 느린 곡선을 그리다 네 귀퉁이에서 위로 치켜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받침 위로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 장식),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있다. (문화재청, 2016년)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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