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tstory Traveling

Since 2008, Korea & World by younghwan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비(보물)

경기도 여주시 천송동 신륵사에 있는 보제존자 석종비(보물)이다. 고려말을 대표하는 승려로 신륵사에서 입적한 나옹선사 승탑 옆에 세워져 있다. 신륵사에서 입적한 나옹선사 승탑과 영정을 모신 진당을 조성한 내력을 적어 놓았다. 거북받침돌, 몸돌, 용이 조각된 머릿돌로 구성된 당나라 비석 형태의 기존 비석과는 달리 단순한 사각형 받침돌과 몸돌, 지붕모양 머릿돌로 구성된 형태를 하고 있다. 고려말 이후 새로운 비석 형식이다. 비문은 목은 이색이 짓고 당대 유명한 서예가인 한수가 글씨를 썼다.

나옹선사(1320∼1376년)는 고려말을 대표하는 승려로 무학대사의 스승이기도 하다. 나옹(懶翁)은 그의 호이며, 시호는 선각(禪閣)이며 공민왕으로부터 보제존자((普濟尊者)라는 호를 받았다. 중국 원나라 법원에서 인도의 승려 지공의 지도를 받았으며, 전국의 여러 사찰에서 머물면서 불법을 전했다고 한다. 회암사 주지를 지냈으며, 고려말에서 조선초 불교를 정립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승려로 전국의 많은 사찰에 그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의 승탑은 양주 회암사를 비롯하여, 여주 신륵사, 원주 영전사에 세워졌으며, 여주 신륵사에는 그를 모신 조사당이 있다.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비(보물)>

사각형 받침돌 위에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돌을 얹었다.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신륵사 대장각기비와 마찬가지로 글씨를 적은 대리석으로 만듬 몸돌 양쪽에 화강암으로 기둥을 세워놓고 있다.


<비석에 새겨진 글씨(앞면)>

나옹선사 승탑과 진당을 조성한 내력을 적고 있다.  당대 명필의 글씨답게 멀리에서 보기에더 단정하면서도 힘찬 느낌을 준다.


<뒷면>

건립에 참여한 제자와 시주자의 명단 등이 적혀 있다. 대리석으로 만든 몸돌 양쪽에 화강석 기둥을 세워 비석을 지탱하고 있으며, 위에는 지붕모양의 머릿돌을 올려 놓고 있다. 고려말 유행했던 비석의 양식이다.

<받침돌>

거북받침돌을 사용하던 기존 비석과 달리 사각형의 단순한 형태를 하고 있다.

<양주 회암사에 남아 있는 나옹선사의 업적을 적은 왕각선사비(보물)>

거북받침돌에 비몸 윗부분에 용과 구름을 조각한 당나라 비석 양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신륵사 조사당 뒤 언덕에 있는 나옹선사 승탑>

사리를 모신 승탑인 보제존자석종(보물), 그 앞에 불을 밝히는 석등(보물), 나옹선사의 행적과 업적을 적은 석종비(보물)로 구성되어 있다.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비, 보물, 경기도 여주시 천송동
이 비는 고려말의 승려 보제존자 나옹의 묘탑과 영정을 모신 진당을 조성한 내력을 적은 비다. 나옹이 말년에 밀양 영원사로 가던 중 신륵사에서 세상을 떠나자 제자들이 절 북쪽 언덕에 종모양의 부도를 세워 그의 사리를 안치하고 이를 계기로 그의 초상을 모실 진당을 짓는 등 대대적인 중창을 하였다. 비문은 이색과 서예가인 한수가 짓고 썼는데 단정한 필치가 돋보인다. 뒷면에는 건립에 참여한 제자와 시주자의 명단, 중창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이 적혀 있다. 비는 2단의 지대석 위에 연꽃무늬를 새긴 비좌를 얹어 비몸을 세웠으며 비몸 양옆에 기둥을 세운 뒤 그 위에 지붕 모양으로 된 개석을 얹었다. 이러한 형식은 고려 말기에 새로이 유행한 석비형식으로 신륵사 대장각기비(보물)도 같은 형식이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