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동구릉(사적)에 있는 경릉(景陵)이다. 조선 24대 헌종과 비 효현왕후, 계비 효정왕후의 능이다. 왕과 왕비들의 능이 나란히 배치된 삼연릉이다. 헌종은 구한말 세도정치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를 보냈던 왕으로 어린 시절에 왕위에 올라 권문세가에 시달렸던 대표적인 왕이다. 후사가 없어 강화도령이라 불렸던 철종이 왕위를 이었다. 효현왕후 사후 선조의 목릉(穆陵)이 있었던 자리에 별도 능역을 조성하지 않고 이곳에 왕릉을 조성한 것으로 보이며, 헌종과 계비 같은 사유로 이곳에 같이 능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구한말 세도정치 시기 왕권이 얼마나 약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동구릉(사적)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1408년에 승하하면서 조성한 건원릉을 중심으로 역대 왕과 왕후의 능 9기가 조성되어 있다. 동구릉에는 한 분만 모신 단릉, 두분을 모신 쌍릉, 한곳에 산줄기를 달리해서 모신 동원이강릉, 두분을 함께 모신 합장릉, 세분을 나란히 모신 삼연릉이 있어 다양한 모습의 왕릉을 볼 수 있다. 동구릉에 왕릉을 조성한 왕으로는 태조를 비롯하여 5대 문종과 왕비, 14대 선조와 왕비, 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18대 현종과 왕비, 21대 영조와 왕비, 추존왕인 문조와 왕비, 24대 헌종과 왕비이다.
동구릉 경릉.
조선 24대 헌종과 두분의 비가 같이 모셔진 삼연릉이다. 이곳은 원래 선조의 목릉이 있었던 자리이다. 구한말 세도정치기에 허약했던 왕실을 권위를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헌종.효현왕후.효정왕후 경릉
경릉은 조선 24대 왕 헌종과 두분의 비가 모셔진 능으로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세개의 봉분이 이어진 삼연릉 형식의 능이다. 헌종(1827~1849)은 1834년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 15년 동안 임금 자리에 있었다. 효현왕후는 1837년(헌종3) 왕비가 되었고 1843년에 돌아가셔서 현 경릉의 첫 주인이 되었으며, 6년 뒤 현종이 돌아가시자 쌍릉 형식으로 능을 조성하였다. 이후 헌종의 두번째 비인 효정왕후가 1903년에 돌아가시자 삼연릉 형식으로 조성하게 되었다. 경릉에는 표석이 하나 있는데, 이는 1908년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이 진종, 헌종, 철종을 황제로 올리면서 제작한 비이다. 따라서 경릉 비석에는 ‘대한’과 ‘황제’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이 글자는 기존의 정릉 표석을 깎아서 다시 새긴 것이다. 표석의 전면과 후면에 새긴 글은 규장각 대재학 김학진이 지었고, 글씨는 당시 명필인 윤용구가 썼다. <출처:문화재청>
<홍살문>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참도>
양쪽에도 박석을 깔아 놓은 것이 특이하다.
<산릉제례를 올리는 공간인 정자각>
<정자각 앞 건물터>
<왕릉 주인을 알려주는 표석이 세워진 비각>
<봉분>
왕과 왕비, 계비의 봉분이 나란히 배치된 삼연릉이다.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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