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법흥사 경내에 있는 징효대사탑비(보물)이다. 통일신라말 선종 구산선문 중 한곳인 흥녕사를 크게 발전시킨 징효대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비이다. 거북받침돌에 비몸을 올려놓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은 전형적인 당나라 비석 양식을 하고 있다. 거북받침돌의 머리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발을 사실적으로 섬세하고 조각하고 있다. 반면에 거북등에 새겨진 껍질은 형식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징효대사가 입적한 후 44년이 지난 고려초(944년)에 세워졌다.
흥녕사( 興寧寺)는 영월 사자산 자락에 위치한 법흥사의 옛 이름으로 신라 구산선문 중 사자산파의 중심사찰이었다.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면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는 사찰이기도 하다. 통일신라 말 후삼국 통일전쟁 과정에서 큰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고려초에 다시 중건되었다. 그 뒤 다시 화재로 소실된 후 거의 폐사된 상태였다가 일제강점기 이후 중건되었다.
<영월군 사자산 법흥사에 남아 있는 징효대사탑비(보물)>
통일신라말 선종 구산선문 중 사자산파 중심사찰이었던 흥녕사를 크게 발전시킨 징효대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탑비이다.
<옆에서 본 모습>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얹고 그 위에 머리돌을 올려놓은 전형적인 당나라 비석 양식을 하고 있다.
<거북받침돌>
용의 얼굴을 한 거북형상을 한 거북받침돌. 얼굴이나 발은 생동감있게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나, 등껍질은 형식적으로 간략하게 새겨놓고 있다.
<옆에서 본 모습>
<비몸>
비문은 징효의 행적과 공적을 기리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글은 최언위가 짓고 최윤이 글씨를 썼다. 천년이 넘은 비석이지만 글씨가 잘 보이는 편이다.
<머릿돌>
머릿돌에는 네마리의 용이 마주보는 모습을 새겨 놓고 있으며, 그 위에 보륜과 보주를 올려놓고 있다. 가운데 ‘징효대사’라고 탑비의 명칠을 적어놓고 있다.
<뒤에서 본 모습>
<영월 법흥사 경내에 남아 있는 징효대사 승탑과 탑비>
영월 흥녕사지 징효대사탑비, 보물,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이 비석은 징효대사의 탑비로 944년(혜종 1)에 세운 것이다. 징효대사는 신라말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산문파를 연 철감선사 도윤의 제자로, 흥녕사(법흥사의 옛이름)에서 선종의 법문을 크게 일으켰던 승려이다. 비석의 글은 징효대사라는 시호와 보인이라는 탑명을 내린 것 등을 적고 있다. 이 비석은 신말 고려초에 나타나는 전형적입 탑비로, 비 받침은 거북모양이며, 비몸 받침 위에 비석을 세우고 그 위에 용을 새긴 비 머릿돌을 얹었다. 비 받침의 거북머리는 용머리를 본떴는데 부릅 뜬 눈에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비 머릿돌에는 네 마리 용과 “징효대사”라는 전서체 글씨가 새겨져 있으며, 비 머릿돌 위에는 장식물인 보륜(寶輪), 보주(寶珠)를 얹어 놓았다. 이 비석은 전체적으로 섬세하면서도 웅건한 느낌을 준다. (안내문, 영월군청, 2016년)
<출처>
- 안내문, 영월군청, 2016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6년
- 문화재청,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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