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감산사 절터에 있었던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이다. 통일신라 성덕왕 때(719년)에 김지성이 부모의 명복을 위해 조성한 불상이다. 머리에 보관을 쓰고, 목에는 2줄의 화려한 목걸이가 새겨져 있는 등 화려한 장신구로 장식한 미륵보살의 형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 신체의 비례는 인체의 비례와 비슷하게 사실적이며, 각 비례에서 주는 전체적인 조형미도 뛰어난 편이다. 광배 뒷면에 불상을 조성한 내력에 대해서 기록해 놓고 있다.
감산사(甘山寺)는 불국사와 신라 원성왕릉(괘릉)에서 멀지 않은 마을 뒷편에 남아 있는 옛 절터이다. 통일신라 성덕왕 때(719년)에 김지성이 부모의 명복을 위해 창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현재 절터에는 석조비로자불상을 모신 대적광전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불전들이 들어서 있으며, 뒷편에 통일신라 때 조성된 삼층석탑과 주변 공터만이 옛절터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일제강점기 이곳에서 출토된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석조아미타여래입상(국보)은 현재 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다. 불상에 적힌 기록 외 감산사 내력에 대해서는 전해지지 않는다.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
감산사터에서 출토된 불상으로 조각수법이나 표현이 섬세하며 상당히 뛰어나다.
<얼굴 부분>
보관을 비롯하여 화려한 장신구들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불상이 올려진 연화대좌>
<왼쪽에서 본 모습>
<불상이 있었던 경주 감산사 절터>
대적광전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전각들이 다시 지어져 사찰로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이 불상은 1915년 경주의 감산사터에서 옮겨온 것으로 광배 뒷면에는 이 불상을 만든 사람, 만든 목적 등이 자세하게 새겨져 있다. 명문에 따르면, 이 불상들은 집사부시랑 김지성이 부모의 은혜와 임금의 은덕에 보답하고자 성덕왕 18년(719년)에 만들기 시작한 아미타불이다. 불상을 만들던 도중 김지성이 성덕왕 19년(720년)에 죽자 김지성의 명복을 비는 내용도 아미타불 광배 뒷면에 함께 새겨졌다. 미륵보살은 온화한 표정과 허리를 약간 비튼 자세를 보이며, 아미타불은 엄숙한 표정으로 곧게 선 자세를 하고 있다. 통일신라 8세기 전반 석조 조각의 수준을 잘 보여주는 빼어난 작품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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