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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신안실] 신안선의 주인과 선원들의 생활

1. 신안선 발굴,  2. 신안선에 실린 도자기들,  3. 화물주인과 선원들의 생활4. 차,꽃,향과 관련된 기물5. 청자의 고장, 용천요, 6. 청백자의 고장, 경덕진요, 7. 자주요, 길주요 등8. 복건성 가마들

신안해저유물 중에는 운송될 물품의 화물표라 할 수 있는 목간도 발견되었다. 목간에는 물건을 주문한 사람이나 기관의 이름 및 상품명이 적혀 있다. 목간에 적힌 내용에 따르면 신안선은 1323년 4월 하순에서 6월 초순에 걸쳐 화물을 모았으며, 물건을 주문한 곳은 일본의 도호쿠사, 조자쿠암.하코자키궁 등의 절이었다. 이를 통해 신안선은 중국과 일본을 왕래했던 무역선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목간 중에는 사인(手決)을 한 것이 여러 점 있어 배에 실린 무역품들은 체계적으로 관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유물을 실었던 무역선이 침몰한 1232년은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를 중심으로 육상과 해상을 통해서 무역거래가 상당히 활성화되었던 시기로 중국의 도자기들이 해상을 통해서 서구에 거래되었다. 해상실크로드 또는 도자의 길로 불리는 이 해상교역로는 기존의 동남아시아 열대지방에서 생산된 향신로를 인도와 페르시아, 아랍, 비잔틴을 거쳐서 베네치아를 비롯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유럽 각국에 공급하던 무역루트이다. 해상실크로드를 통한 무역으로 베네치아를 비롯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엄청난 부를 축적했으며, 이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중심으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동기가 되었는 교역이라 할 수 있다. 신안선은 이 해상실크로드를 통한 교역의 동단에 해당하는 중국과 일본을 오가던 무역선으로 당시 교역선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목간,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물품에 달려있던 목간이다. 일본에 있는 사찰과 승려들의 이름이 적혀 있어 물품의 주인이 누구임을 알려주고 있다.

신안선의 물품들은 누구의 것일까?
신안선에서 발견된 수많은 유물들은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 해답은 유물에 달려있는 나무로 만든 꼬리표 ‘목간’에서 찾을 수 있다. 목간에는 교토의 도호쿠사(東福寺), 하코자키구(筥崎宮), 조자쿠암(釣寂庵) 등 일본소재의 사원 이름과 승려들의 이름이 남아 있었다. 이것을 종합해 볼 때 신안선의 소유주는 사원과 상인이 공동출자한 교역선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일본의 사원과 승려들은 이 많은 물품들이 왜 필요했을까? 1319년 전후에 교토의 도호쿠사와 하코자키구는 큰 화재를 입었고, 결국 중국으로부터 이들 사원을 재건하기 위한 물품을 구입하게 되었는데, 그 운송을 담당한 선박이 신안선이었던 것이다. 도호쿠사의 재건에는 주지가 앞장섰는데, 그는 말년에 조자쿠암에 거주했다는 기록으로 봤을 때, 세 사원의 관계와 신안선의 소유주가 누군지는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5년)

도호쿠지(東福寺).

교토에 있는 사찰로 헤이안시대 말기 나라의 도다이지에 대적할 만한 사찰로 창건되었다. 신안선은 이 사찰에서 필요한 물품 공급을 위해 중국에서 화물을 싣고 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코자키구(筥崎宮).

후쿠오카 시에 있는 신사(神祀)이다. 창건 이후 해외교류에 중요한 역을 해 왔던 곳이라 한다.

목간
신안해저선에서는 글자가 있는 화물 꼬리표가 360여 점 발견되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꼬리표에 적혀진 내용을 통해, 출항한 연도를 비롯해서 화물 주인과 사원이름, 교역물자의 종류와 수량 등을 알 수 있다. 인양된 목간을 통해 신안선은 ‘지치삼년(至治三年)’인 1323년 중국의 닝보(寧波)를 떠나 하카타(博多)를 향해 출발했으며 도호쿠사(東福寺) 등 사찰에 상품을 운반하려 했던 무역선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5년)

“하코자키”가 쓰여진 목간, 거기목간(筥崎木簡),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동복사(東福寺)”가 쓰여진 목간,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지치삼년(至治三年)”이 쓰여진 목간,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사인(手決)이 적혀 있는 목간, 당시 배에서 화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목간들

‘경원로(慶元路)’가 새겨진 저울추, 원나라

신안선에는 일본인과 중국인, 그리고 고려인이 탑승하였다. 그 중 화물주에 해당하는 도호쿠사 승려들이 배에 같이 탔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된 불교관련 유물에서 안전한 항해를 위해 불교의식을 치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장기, 바둑 등 오락기구들과 선원들이 물자를 관리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문방구, 음식을 조리했던 조리기구 등의 발견되어 당시 선원들이 어떻게 배에서 생활하였는지 추정해 볼 수 있다.

선상생활
신안선에서 발견된 다채로운 조리기구, 칠기, 불구용품, 세토매병 등의 물품을 바탕으로 우리는 당시 선상생활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중국인, 일본인, 고려인으로 이루어진 승선자 중에는 선원, 승려, 상인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여러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고, 예불을 올렸으며, 장기를 두고 주사위 놀이를 하며 여가를 보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5년)

촛대, 靑銅燭臺, 원 13세기 후반 ~ 14세기 전반


금동바라,


경자와 풍탁.

보살상.

항해 중 선박에서 불교행사를 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유물로 화물 주인이 사찰과 관련되어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금속품
신안 해저에서 인양된 금속품은 1,000여 점에 달한다. 금속기의 재료는 황동, 주석, 청동, 동 등으로 확인되었다. 솥, 냄비, 국자, 깔때기와 같은 조리도구와 저울추, 자와 같은 도량기구는 선원이나 상인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며, 상자에 담긴 채 발견된 금속품들은 무역품이었을 것이다. 의례에 사용된 향도구와 불교 의식구인 경자(磬子), 바라, 징, 방울 등도 발견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5년)

청동방울, 靑銅 小鈴,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바라, 靑銅 啫哱囉,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경자, 靑銅 磬子,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거울, 靑銅 鏡,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거울, 靑銅 鏡,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향로, 靑銅 鬲形 香爐,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애염명왕거울(靑銅愛染明王鏡)

국화.참새무늬 사각거울

등잔, 金屬製 燈盞,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등잔, 金屬製 燈盞,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칼고등이

나막신,

일본인들이 애용하는 나막신의 유래가 꽤 오래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저울추, 저울접시.

무역거래를 위해 필요했던 문방구를 비롯하여 무게나 길이 등을 재기 위한 도구들이 출토되고 있는데, 당시 무역거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유물들이다.

저울추, 靑銅錘, 원 13세기 후반 ~ 14세기 전반

자, 

도장

벼루

벼루, 石製 硯,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붓걸이.

주사위

바둑알과 뚜껑이 있는 항아리

바둑알, 棋石, 원 13세기 후반 ~ 14세기 전반

장기말.

신안선의 사람들은 무엇을 먹었을까?
오랜시간 항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탑승자들의 식생활이 중요하였다. 중국 선원들은 국수를 삶아 먹거나 냄비에 고기를 볶아서 먹었으며 과일로 매실, 호도, 개암, 여지, 복숭아 등을 먹었다. 육류를 좋아하는 중국인은 음식물의 부패를 막기 위해 후추를 많이 사용하였고, 생선류를 좋아하는 일본인은 생강을 향로로 사용하였다. 일본인들은 일본제 칠기와 매병에 음식과 술을 담아 먹었으며, 중국제 흑유찻잔으로 차를 마셨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5년)

신안선 탑승객이 이용한 식용 과일과 향신료, 원나라, 1. 여지씨, 2. 초과종자, 3. 종자, 4. 복숭아씨, 5. 후추, 6. 양강

주칠발,

수레바퀴무늬 주칠발


모란무늬 매병,

흑유잔

술잔(작), 靑銅 爵,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잔과 접시, 靑銅 盞.盤,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화훼무늬 잔, 銀製 花卉紋 盞,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잔, 銀盞,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잔, 金屬製 盞,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두 귀 달린 병, 靑銅 管耳甁,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마늘모양 병, 靑銅 䔉形口 甁,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등잔(상부), 靑銅製 燈盞,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두 귀 달린 병, 靑銅 投壺(管耳甁),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웍, 靑銅 鑊,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프라이팬, 靑銅 鑊,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국수국자

깔때기

숟가락

젓가락, 木製 箸, 원 13세기 후반 ~ 14세기 전반

신안선에서는 상당히 많은 양의 동전이 발견되었다. 1세기 신(新)나라때 만든 것부터 원나라 동전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중국 동전들이다. 특히, 원나라 동전인 지대통보(至大通寶)와 대원통보(大元通寶)는 신안선이 14세기 전반에 침몰하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동전들은 일본에서 화폐로 사용하거나 불상 등을 만들기 위해 수입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불상이나 공양구 등을 만들기 위해 주석덩어리와 황동판 등도 비슷한 용도로 수입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전과 금속정
신안해저선에 실린 상품 중 가장 많은 무게를 차지했던 것은 동전이다. 총 28톤이며, 개수로는 8백만 개에 이른다. 인양된 동전 중 시기적으로 가장 이른 것은 14년 신(新)나라(8~23년)에서 발행된 ‘화천(貨泉)’이며, 가장 늦은 것은 1310년에 제작된 원의 ‘지대통보(至大通寶)’, ‘대원통보(大元通寶)’이다. 이 동전들은 녹여서 청동 대불(大佛)이나 금속공예품을 만들었다고 하며, 화폐로 유통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밖에 주물 재료인 금속정(金屬錠)도 340여 점이나 발견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5년)

주석정 (朱錫鋌)과 금속판, 원대,

주석정(朱錫鋌)은 원형, 타원형 여러가지가 있다. 가운데는 끈 등으로 매기 위해 대부분 타원형의 구멍이 뚫려 있다. 재료는 주석제가 대부분이며 그밖에 철제 백동제도 있다. 금속제품의 원료로서 주석과 백동은 값나가는 중요 교역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주석덩이, 朱錫 錠,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동전, 銅錢,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동전.

신안선에서는 중국에서 당시까지 사용한 거의 모든 동전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일본에서 화폐로 유통시키기 위해 수입하였다고 한다.

동전꾸러미


원형 석제품, 圓形 石製品,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신안선에서는 계피, 산수유 등 약재로 쓰이는 것들이 발견되었다. 또한 목간에 있는 진피(귤껍질), 감초 등의 기록이 있어 각종 향료 및 약재가 실려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인도, 동남아가 주산지로 알려진 많은 자단목이 배 밑바닥부분에 실려 있었다. 자단목은 단단하고 잘 썩지 않아 건축재, 불상, 도장, 장신구 등의 조각용 많이 쓰인 재료이다.

자단목과 향신료
1,000여 점이 발견된 자단목은 인도, 동남아시아, 중국남부가 산지로 향목, 불상, 고급 공예품을 만들 때 사용되었다. 신안해저선에서 발견된 자단목으로 만든 가구 잔편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자단복과 함께 후추, 계피, 정향 등 다양한 향신료, 열매, 씨도 발견되었다. 후주, 정향 등은 인도 남부 해안 지대를 비롯하여 중국 남부 광둥(廣東), 광시(廣西), 윈난(雲南) 지역이 주요 산지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5년)


신안선에서 발견된 각종 약재. 1. 빈랑, 2. 매실씨, 3. 산수유씨, 4. 약밤, 5. 가래, 6. 사군자씨, 7. 파두, 8. 개암, 9. 은행, 10. 계피

후추, 胡椒,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정향이 담긴 단지, 黑釉 小壺.丁香,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계피, 桂皮,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향목, 香木,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자단목 소반 잔편, 紫檀木 小盤 殘片,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자단목, 紫檀木, 원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