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갑인자, 조선 대표활자, 2. 실록자와 정리자, 3. 한글활자, 4. 목활자, 5. 활자장.
실록자(實錄字)는 임진왜란 이후 실록청에서 소실된 역대 실록을 인쇄하기 위해 만든 목활자를 말하는데 이후 역대 국왕의 실록을 편찬을 위해 목활자를 만들어 사용했다. 숙종 때 “현종실록”을 편찬하기 위해서 민간에서 사용하던 3만여자를 빌리고 새로 4만여자를 더 주조하여 사용했는데 이를 현종실록자라고 한다. 이후 역대국왕의 실록편찬과 “열성어제” 등 각종 서적 편찬에 많이 사용되었다. 현재 전하는 실록자는 19세기에 주조한 것이 많은데 이는 당시에 대대적인 실록자 활자 주조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이를 헌종실록자라고도 부른다.
실록자(實錄字), 실록간행을 위해 활자를 만들다.
1677년(숙종3) 『현종실록』을 간행할 때 낙동계(洛東契, 한성 동부 지역 유력가들의 모임)에서 만든 금속활자 3만여 자를 사용하고 4만여 자를 추가로 주조했습니다. 이 활자는 실록 간행을 목적으로 만든 최초의 금속활자로 ‘실록자’라 부르며, 이후 이 활자로 모든 실록을 간행했습니다. 실록을 간행할 때마다 필요한 글자를 만들었기 때문에 실록자의 글자체는 동일하지 않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실록자에는 낙동계에서 만든 활자와 이후 추가로 만든 활자들이 섞여 있는데, 상당수는 19세기초에 주조한 활자로 추정됩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실록 간행에 사용한 활자, 實錄字, 조선 17~19세기
실록 간행에 사용한 활자, 實錄字, 조선 17~19세기
낙동계자로 간행한 『당송팔대가문초』, 唐宋八大家文鈔, 조선 1673년(현종14) 추정
명나라 문인 모곤(1512~1601)이 당나라와 송나라 문장가 8인의 글을 모아 편찬한 책으로 낙동계에서 만든 활자로 간행했습니다. 문인들이 만든 최초의 금속활자인 낙동계자(洛東契字)는 현종실록 간행을 위해 궁중으로 보내져 현종실록자와 함께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낙동계자로 간행된 책은 이 책을 비롯해 현재 3종만 알려져 있습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현종실록자와 낙동계자로 간행한 『감란록』, 戡亂錄, 조선 1729년(영조5)
1728년(영조4)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고 그 전모를 기록한 책입니다. 영조가 쓴 서문에 이 사건의 원인을 붕당에서 찾고, 이러한 변란의 재발을 막기 위하여 이 책을 편찬한다고 명시했습니다. 낙동계에서 만든 활자와 현종실록 간행 때 만든 활자, 이후 실록 등을 간행할 때 수시로 만든 활자들을 섞어 사용해서 인쇄했습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19세기에 새로 주조한 실록자로 간행한 『열성어제』, 列聖御製, 조선 1836년(현종2)
조선 왕들의 시문을 모음 『열성어제』는 처음에는 목판으로 간행되었으나 영조 「어제」부터 실록자로 간행되었습니다. 1836년에 간행한 이 순조의 「어제」에는 새로운 활자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19세기 초반에 실록자를 다량 새로 주조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정리자(整理字)는 정조때 『원행을묘정리의궤』를 편찬하기 위해 만든 동활자로 대자 16만자, 소자 14만자이다. 활자의 글자본은 『강희자전』을 참조하였으며, 정조는 정리자를 만들기 위해 중국의 목활자를 들여오기도 했다. 정리자는 글자체 형태와 함께 인쇄방식 등을 고려하여 개량한 것으로 이전에 비해 좀더 효율적인 인쇄가 가능했다. 이후 철종 때 주자소 화재로 보관되어 있던 정리자가 불에 타자 이듬해에 다시 주조하였다. 정리자는 정조때 편찬된 많은 서적 등을 간행하면서 문예부흥을 이끌었으며, 대한제국 때 관보를 인쇄하는데 사용하기도 하였다.
정조, 치밀하게 계획하여 활자를 개량하다.
1796년(정조20)에 완성된 정리자는 정조가 계획한 활자개량의 결과물이자, 정조를 상징하는 활자입니다. 이 활자로 제일 먼저 『원행을묘정리의궤』를 간행했습니다. 정리자는 강희자전(康熙字典)의 글자체를 모방했으며, 정조는 정리자 제작에 참고하기 위해 중국에서 목활자를 들여오기도 했습니다. 1857년(철종8) 주자소 화재로 정리자가 불에 타자 다음 해 다시 만들어 현재 두 시기의 활자가 모두 남아 있습니다. 정리자로는 의궤, 정조의 명으로 편찬한 책 등을 간행 했으며, 『관보』 등 근대 인쇄물도 간행했습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정조가 만든 정리자와 철종 때 다시만든 정리자, 초주정리자.재주정리자,
정조가 만든 정리자와 철종 때 다시만든 정리자, 초주정리자.재주정리자, 조선 18~19세기.
활자만을 볼 때에서 그 크기가 일정하고 여백을 많이 두어 선명하게 인쇄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식 한자 활자
『화성성역의궤』 한 면을 재현한 식자판
『화성성역의궤』 권2 정조가 화성을 행차하여 지은 글들을 모은 「어제」의 첫번째 면을 당시 활자로 재현했습니다. 장안문루(長安門樓)에서 총리대신과 주고받은 시, 팔달문룬(八達門樓)와 동장대(東將臺)에서 좌의정과 주고받은 시 등이 실려 있습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정리자로 간행한 『화성성역의궤』 , 조선 1801년(순조1)
정조가 정리자로 처음 간행한 『원행을묘정리의궤』는 최초의 활자본 의궤입니다. 화성 건설 기록인 『화성성역의궤』 역시 정리자로 간행했습니다. 화성은 정조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의지를 상징하는 곳이어서, 두 의궤를 정리자로 간행하여 자신의 뜻을 널리 전하고자 했습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정리자의 글자본이 된 생생자의 목록, 生生字譜, 조선 18세기 말
생생자의 글자별 수를 기록한 목록으로 다른 자보들과 달리 활자로 인쇄했습니다. 정조는 청나라 『강희자전』의 글자체를 본뜨고 사고전서(四庫全書)를 간행한 목활자 제작 방식을 참고하여 목활자인 생생자를 제작하고, 이어 금속활자인 정리자를 만들었습니다. 두 활자의 글자체는 『강희자전』의 글자체보다 가로로 더 퍼진 모양입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정조가 중국에서 들여온 활자, 중국 청 18세기
1790년(정조 14)과 1791년 중국에서 들여온 목활자로 조선 목활자와 서체 및 형태가 다릅니다. 정리자를 만들 때 참고하기 위해 들여온 활자로 추정됩니다. 청나라 황제 강희제의 이름 ‘玄燁’의 ‘玄’과 건륭제의 이름 ‘弘歷’의 ‘弘’의 마지막 획을 생략했습니다. 13세기에 위그루 문자로 만든 목활자 다음으로 오래된 중국 목활자입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정리자로 간행한 『관보』, 대한제국 1895년.
정리자가 구한말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관보』는 1894년(고종31) 6월21일부터 발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정부 공고기관지입니다. 발행 초기에는 한문만 사용하다가 국한문혼용으로 바꿨습니다. 1895년 5월31일까지 정리자로 인쇄했고 이후에 근대 납활자로 바꿔 인쇄했습니다. 정리자는 가독성이 높은 글자체로 『관보』를 비롯해 「한청조약문」 등 근대 인쇄물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5.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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