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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장항리사지 서 오층석탑(국보), 토함산 동쪽 절터에 남아 있는 석탑.

경북 경주시 양북면 장항리 절터에 남아 있는 오층석탑(국보)이다. 절터에는 같은 모양의 오층석탑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탑은 2층 기단위에 5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기단부를 넓고 낮게 만들어 안정감이 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지붕돌은 귀퉁이가 치켜 올려져 경쾌한 느낌을 주고 있다. 1층 몸돌에는 도깨비모양의 쇠고리가 달린 문을 조각하고 양쪽에는 인왕상을 정교하게 새겨졌다. 이는 다른 석탑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이다. 불국사 삼층석탑과 비슷한 양식으로 신라 석탑의 전성기인 8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비례와 세부 조각수법이 뛰어난 통일신라 석탑의 걸작 중 하나이다.

토함산 동남쪽 대종천 상류에 위치한 절터인 장항리사지는 그 내력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 마을 이름을 따라서 장항리사지라고 부른다. 절터에는 2기의 오층석탑이 남아 있는데 서탑만이 온전한 모습을 하고 있고, 동탑은 1층몸돌과 탑신 지붕돌만이 남아 있어서 그 석자재를 그냥 쌓아두고 있다. 절터에서는 금당터에 석조불대좌가 남아 있고 석조불상은 경주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경주 장항리사지 서오층석탑(국보).>

절터에는 동.서 2개의 오층석탑이 세워진 쌍탑식 가람배치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탑은 일제강점기에 파괴된 것을 복원하였으며, 동탑은 계곡에 남아 있던 1층 몸돌과 머리돌들을 모아서 쌓아두고 있다.

<동.서 오층석탑>

탑은 2층 기단위에 5층 탑신을 올려놓은 오층석탑이다. 탑을 구성하는 각 부분의 비례가 안정적이며, 돌을 다듬은 조각수법도 뛰어나다. 경주에서는 흔치 않은 오층석탑 형식을 하고 있다. 통일신라 전성기인 8세기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장항리사지 서오층석탑(국보)>

기단부는 넓게 만들어져 탑신을 안정감있게 받치고 있다. 모서리와 각 면에 기둥모양을 새겨놓았다.

<기단부>

5층으로 된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지붕돌은 처마끝을 살짝 들어올려 경쾌한 느낌을 준다.

<5층으로 된 탑신부>

남쪽편 1층 몸돌에는 부조상이 새겨져 있다. 도깨비모양의 문고리가 달린 문짝과 그 양쪽에 인왕상이 있다.

<남쪽편 1층 몸돌에 새겨진 부조상>

<동쪽편 1층몸돌에 새겨진 문짝과 인왕상.>

<북쪽편 1층 몸돌에 새겨진 문짝과 인왕상>

<서쪽편 1층 몸돌에 새겨진 문짝과 인왕상>

장항리절터는 불국사와 석굴암에서 동해안으로 연결되는 토함산 동쪽 계곡에 자리잡고 있다.

<2기의 오층석탑이 세워져 있는 장항리절터>

절터는 계곡에 축대를 쌓아서 조성한 부지위에 조성되었다. 멀리서 오층석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경주 장항리 사지>

경주 장항리사지 서 오층석탑, 국보, 경주시 양북면 장항리
장항리 절터는 토함산 동쪽의 한 능선이 끝나는 기슭에 위치해 있다. 절의 이름을 정확히 알 수 없어 마을의 이름인 ‘장항리’를 따라서 장항리사지라 부르고 있다. 현재 법당터를 중심으로 동서에 탑 2기가 남아 있다. 동탑은 무너져 계곡에 뒹굴던 1층 몸체돌과 지붕돌 다섯을 모아 세워 놓았다. 서탑은 이중 기단을 가진 높이 9m의 5층석탑인데 역시 파괴되었던 것을 최근에 복원한 것이다. 현재 지붕돌 꼭대기에는 네모난 받침돌만이 남아 있다. 하층기단은 비교적 넓게 만들어져 안정감이 있으며, 1층 몸돌 4면에 도깨비 형태의 쇠고리가 장식된 두짝씩의 문을 조각하고, 그 좌우에는 연꽃모양 대좌 위에 서 있는 인왕상을 정교하게 새기어 희귀한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조각 수법으로 보아 8세기의 걸작품으로 평가된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1년)

<출처>

  1.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5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