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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보물)

충남 서산시 운산면 보원사지(사적) 절터에 있는 법인국사탑비(보물)이다. 고려초 승려 법인국사 탄문(坦文, 900∼975)의 행적과 업적을 적은 탑비이다. 높이 4.5 m이 비교적 큰 규모의 비석으로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과 머릿돌을 올렸다. 크고 웅장하게 만들었으나 조형미나 조각수법이 뛰어나거나 독창성을 보이는 것은 아니고 정형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비문은 김정언이 짓고 한윤이 썼다. 글씨는 구양순체로 필력과 짜임새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법인국사는 신라 말과 고려 초에 활약한 유명한 승려로 경기도 광주 출신이다. 북한산 장의사에서 불경 등을 배웠으며, 고려 광종과는 개인적인 인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광종 때 왕사와 국사가 되었으며, 보원사에서 입적하였다. 광종은 ‘법인(法印)’이라 시호와, ‘보승(寶乘)’이라는 탑이름을 내렸다.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보물), 2023년>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보물), 2009년>

비를 받치는 거북받침돌은 거북모양 몸체를 하고 있으나 머리는 용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얼굴은 콧수염이 뒤로 돌아 있으며 눈은 크게 튀어 나와 있다. 조각수법이나 조형미는 화려하지만 정형화된 느낌을 준다.

<거북받침돌>

<옆에서 본 모습>

글씨는 2cm 정도 크기로 구양순 해서체로 썼다. 고려초에는 구양순체 대가가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필력이 좋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비몸에 새겨진 글씨>

비머리 네 귀퉁이에 안쪽을 바라보는 용을 새기고, 앞·뒷면에는 구름무늬를 조각하였다.

<비머리>

<뒤에서 본 모습>


<앞쪽에서 본 모습>


<뒤에서 본 모습>


<오른쪽에서 본 모습>


<옆에서 본 모습>

<보원사지 절터에 나란히 세워져 있는 법인국사탑(보물)과 탑비(보물)>

보원사(普願寺)는 그 내력이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절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이 있으며, 절터에서 6세기 중엽에 제작된 금동불상이 발견된 것으로 볼 때 백제때부터 있었던 사찰로 여겨진다. 통일신라때는 최치원이 언급한 의상대사를 계승한 화엄십찰 중 하나로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었다. 절터에는 오층석탑(보물), 법인국사탑(보물) 등이 있으며, 절터에서 출토된 거대한 철조불상이 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되고 있다.

<서산 보원사지 절터(사적)>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法印國師塔碑), 보물,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법인국사의 탑비이며 978년(고려 경종3)에 경종의 지시로 세워졌다. 비몸 높이 230cm, 폭 115cm, 글자수 5,000여자나 되는 거비이며 국공(國工)을 파견하여 이들이 세우게 했다. 이분은 신라말 ~고려초의 고승으로 법호는 탄문(坦文)이다. 비문의 내용은 탄문의 일대기이며 900년(신라 효공왕4)에 출생하여 15세에 계(戒)를 받고 968년(광종 19)에 왕사, 974년(광종25)에 국사(國師)를 지내다가 이곳 보원사에 와서 975년(광종 26)에 입적하였다. 역대 왕들과 가까웠으며 국가 시행 불사를 도맡아 시행하였고, 특히 광종은 왕권강화 작업 기간 이후 정신적인 지주로서 왕사, 국사로 가까이 있게 했으며 입적하자 매우 슬퍼하였다. 이분은 학승으로 제자가 많아 말년에 보원사에 올 때 선(禪), 교승(敎僧) 천여명이 영접했으며 이곳을 <고산(故山)>이라 하고 여기에 와서 묻혔다. (안내문, 서산시청, 2023년)

<출처>

  1. 안내문, 서산시청, 2023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3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