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미륵사지 서탑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국보)이다. 2009년 석탑 해체.수리 과정에서 심주 중앙 사리공에서 출토되었다. 사리호는 금동제 외호, 금제 내호, 유리병으로 구성되어 있다. 리를 보관하는 사리호, 금제사리봉영기, 청동합과 내부공양품, 진단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외호는 부여 왕흥사지에서 출토된 사리호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금제 내호는 뚜껑과 항아리가 붙은 일체형이다. 사리병은 가장 오래된 유리병이지만 파손된 상태로 발견되었다.
사리봉영기에는 미륵사지 석탑 창건 내력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무왕의 왕후가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귀족이었던 사택(沙澤)씨 출신이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사리공에서는 사리호 외에 다양한 사리공양구가 출토되었으며, 심주 아래에는 나쁜 기운을 제압하는 의미를 갖는 진단구가 출토되었다. 아직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백제의 뛰어난 금속공예 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걸작 중 하나이다.
<미륵사지 석탑 해체.수리 과정에서 출토된 사리를 보관했던 용기>
<금동제 사리 외호>
<금동제 사리 외호에서 출토된 유리구슬>
<금제 사리 내호.>
<금동제 사리 내호 출토품>
금제 사리봉영기는 2009년 발견된 것으로 미륵사지 석탑 창건 내력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무왕의 왕후가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귀족이었던 사택(沙澤)씨 출신이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금제 사리봉영기, 639년, 익산 미륵사지>
사리봉영기는 금판의 앞뒷면에 도자(刀子)를 이용하여 음각하고, 각 획을 따라 주사(朱唦)를 입혀 글자가 더욱 선명하게 보이도록 했습니다. 전체 193자로 앞쪽에는 99자, 뒤쪽에는 94자를 새겼습니다. 좌평(佐平) 사택덕적(沙澤德積)의 딸인 백제 왕후가 재물을 희사하여 가람을 창건하고 기해년(639)에 사리를 봉안하여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미륵사의 창건 목적과 시주(施主), 석탑의 건립 연대 등을 정확히 밝힌 것입니다. 미륵사 서탑 창건의 주체가 『삼국유사』에 나오는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귀족의 딸임이 밝혀져 서동왕자와 선화공주 설화의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삼원식(三院式)인 미륵사의 창건에 선화공주를 포함한 서로 다른 발원자가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11.29~)
<3.금제족집게>
<4. 금귀걸이와 금덩이>
<5.금판>
사리공에서는 모두 18개의 금판이 확인되었는데 그 가운데 3개의 금판에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 중 하나에는 “중부의 덕솔 지애가 금 1량을 시주하였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사리봉영기와 달리 아마도 사리를 봉안할 당시 급하게 쓴 글씨로 추정됩니다. 글자의 내용은 백제의 행적구역(中部)와 관등(德率, 16품의 관등 중4품), 도량형 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1량의 무게는 13.2 g입니다.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11.29~)
<사리공 바닥에 깔았던 유리판>
사리공 바닥의 너비에 정확히 맞도록 처음부터 주문 제작된 특수 유리판으로 추정된다.
<유리구슬>
<3. 소조 나발, 4. 은제 손톱장식>
<5. 은제 관 꾸미개>
<6. 은덩어리, 7. 은제 허리띠 꾸미개>
<8. 도자(복제품)>
진단구
미륵사지 석탑 사리용기가 안치된 심주로 가는 통로의 바닥석 아래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사찰 건물의 기단 등에 나쁜 기운이 근접하지 못하도록 진압하기 위하여 기단 하부 축조시에 각종 물건을 공양하는 진단구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소조 나발과 은제 손톱장식은 중국 남조 장간사 탑 사리 공양 중에 탑 아래에 매납했다는 불조발(佛爪髮), 즉 부처의 손톱과 머리카락 봉안 의례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11.29~)
<1. 청동합>
<2. ‘상부달솔목근’ 글자를 새긴 청동합>
<3. 금구슬, 4. 금판, 5. 금못, 6. 곱은옥, 7. 호박구슬, 8. 마노구슬, 9. 유리구슬, 10. 진주구슬>
미륵사지 사리구
미륵사지 석탑의 해체 복원 작업 도중 탑의 심초석 사리공에서 사리호를 포함한 사리장엄구가 출토되었습니다.사리호는 외호와 내호, 사리병의 삼중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연꽃무늬와 넝쿨무늬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금동제 외호는 왕흥사의 은제 사리병과 닮아 백제 사리기의 전통을 잇고 있습니다. 금제 내호는 외호와 유사하지만 크가가 작고, 뚜껑과 항아리가 붙은 일체형입니다. 내호 안에 있던 사리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유리로로 만든 사리기이지만, 발견 당시 뚜껑을 제외하고는 형태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되어 있었습니다. 사리공 안에서는 구슬, 장신구, 청동합과 같은 다양한 사리공양구가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11.29~)
<익산 미륵사지(사적)>
『삼국유사』에 따르면 백제 무왕때 이곳에 있던 연못을 메우고 미륵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당시 신라 황룡사에 버금가는 최대 규모의 사찰로 3탑, 3금당식의 독특한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앞쪽에 목탑을 중심으로 그 양쪽에 석탑이 세워져 있고, 뒷편에도 3개의 금당터가 남아 있다. 금당 뒷편에는 강당이 있고, 그 뒷편으론 3개의 승방이 자리하고 있다.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 조선시대까지 조금씩 축소되어오다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
- 안내문,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특별전, 2016년
-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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