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중국.일본과 교류를 하면서 일본에 문물을 전해준 것으로 알려주 있으며 수준높은 문자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문자로 된 기록을 많이 남겨 놓고 있다. 무령왕릉의 묘지석과 부소산성에서 발굴된 사택지적비를 비롯하여 다양한 유적지에서 발굴된 목간, 기와 등 건축자재에 그 흔적들이 찾아볼 수 있다.
사택지적비
사택지적비
부여 부소산성에서 발견된 비석으로 백제 의자왕 14년(654)에 만들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글자는 화강암의 한 면을 다듬고 네모 모양으로 세로로 14자씩 있다. 비문은 중국 육조시대의 사륙병려체로 그 내용은 사택지적이 금당을 세우고 탑을 쌓은 동기 등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의 비문 양식 및 글씨체 등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출처:중앙박물관>
목간, 삼국시대(백제) 6~7세기, 충남 부여 능산리 절터, 목간, 삼국시대(백제) 6~7세기, 충남 부여 지역, 복제,
목간, 삼국시대(백제) 6~7세기, 충남 부여 능산리 절터, 약 관련 업무를 담당한 약아에게 식료를 지급한 기록이다. 날짜별로 지급한 식미량 등이 기재되어 있다. 목간, 삼국시대(백제) 6~7세기, 충남 부여 지역, 복제, ‘숙세宿世’, 충남 부여 능산리 절터, ‘좌관대식기佐官貸食記’, 충남 부여 쌍북리, ‘삼월三月’, 충남 부여 능산리 절터. 재활용이 쉬웠던 목간은 삼국시대 당시 실무 기록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목간에 적힌 내용
청자벼루, 삼국시대(백제) 7세기, 충남 부여 지역, 벼루, 삼국시대(백제) 7세기, 충남 부여 쌍북리,
중국에서 수입된 백자, 청자 벼루를 본떠 만든 것이다.
백제의 문자
문자는 인류가 축적해 온 지식과 정보를 후대에 전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금석문.목간.토기.기와 등에 새겨져 부족한 문헌사료를 보완해 준다. 백제의 금석문은 칠지도.무령왕릉 묘지석.창왕명석조사리감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당시의 역사적인 사실이나 유적의 성격 등을 알려주는 자료가 된다. 목간은 가늘고 긴 나무판에 글씨를 쓴 것으로 종이가 보급되기 이전에 종이를 대신하였다. 먹으로 쓴 묵서 목간이 일반적이나 칼로 새긴 것도 있다. 이러한 목간은 간단한 문서기록이나 꼬리표, 낙서나 연습용 등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풍납토성에서 문자가 새겨진 토기와 벽돌이 출토되어 한성기에도 한자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삼국시대 건축을 대표하는 유물이자 회화의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는 부여 외리 절터에서 출토된 여덟 종류의 무늬벽돌이다. 보물 343호로 지정된 이 네모모양의 벽돌은 크기가 일정하고, 네 귀의 측면에 홈이 파여 있어서 서로 연결하여 고정시킬 수 있다. 벽돌에 새겨진 무늬들은 회화성이매우 뛰어나 당시의 예술과 건축, 종교와 사상적인 측면까지 살펴 볼 수 있다. 산수문전.산수봉황문전,연대귀문전.반용문전.와운문전.연화문전의 8매로 이루어진 벽돌에 새겨진 그림은 사비기 백제인을 사로잡았던 도교적인 풍경이 잘 그려져 있으며,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도깨비 그림 또한 벽돌에 새겨져 있다.
무늬벽돌, 보물,
부여 외리에서 출토된 여덟 종류의 무늬벽돌이다. 네모모양의 벽돌은 크기가 일정하고, 네 귀의 측면에서 홈이 파여 있어서 서로 연결하여 고정시킬 수 있다. 회화성이 뛰어난 백제의 무늬벽돌은 당시의 예술과 건축, 종교와 사상적인 측면까지 살펴 볼 수 있어 가치가 크다. <출처:중앙박물관>
연꽃구름무늬벽돌, 연꽃무늬벽돌,
연꽃구름무늬벽돌, 와운문전이라고 불리는 이벽돌은 연꽃무늬의 작은 원심을 만들고, 이를 중심으로 8개의 와운문이 원을 이루고 있다. 연꽃무늬벽돌, 연화문전이라 불리는 이벽돌은 구슬을 이은 타원형에 연봉무늬가 있고, 원 중심의 씨방이 크며 이를 중심으로 10개의 꽃잎이 있다. 꽃잎마다 덩굴무늬를 새겨놓았다.
봉황무늬벽돌, 용무늬벽돌,
봉황무늬벽돌, 봉황문전이라고 불리며, 원안에 우아한 자태의 봉황 한마리를 배치한 모습이다. 용무늬벽돌, 반용문전이라고 불리며, 구슬을 꿰어서 이은 타원형의 띠안에 S자 모양의 용이 새겨져 있다.
연꽃 짐승얼굴무늬 벽돌, 산수봉황무늬벽돌,
연꽃 짐승얼굴무늬 벽돌, 연대귀문전이라고 불리며, 연꽃모양으로 만든 대좌위에 도깨비가 서있다. 치우천왕에서 독아비, 도깨비로 변천한 그림 중 삼국시대인들이 생각한 도깨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산수봉황무늬벽돌, 산수봉황문전이라고 불리며, 구름과 봉황이 있는 벽돌로 상단에 삼산형 봉우리가 솟아있고, 하단에는 산수풍경을 새겼다.
산수 짐승얼굴무늬 벽돌, 산수무늬벽돌,
산수 짐승얼굴무늬 벽돌, 산수귀문전이라고 불리며, 하단부에 산수의 배경을, 상단부에 물결무늬의 구름위에 둥근 바위를 딛고 서 있는 도깨비 무늬가 그려져 있다. 산수무늬벽돌, 상단에 상서로운 구름이 떠가며, 중단에는 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 있고, 하단에는 물이 있다. 전체적으로 규칙적인 배열이며, 좌우가 대칭을 이루는 균형잡힌 구도로,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백제시대 산수화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게 해 주는 유물로 고구려 고분벽화와 함께 회화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유물이다.
백제의 기와
백제의 기와는 웅진기와 사비기를 거치면서 연꽃무늬를 주로 하는 백제 특유의 양식이 확립된다. 웅진기에는 전통적으로 전해오던 기술의 바탕위에 새로이 남조 양의 기와 제작기술을 받아들여 이전과는 다른 기와를 제작하였다. 사비로 도읍을 옮긴 이후에는 도성 안팎에 많은 사찰이 세워짐에 따라 기와제작도 활발해졌으며 양식도 다양해졌다. 백제의 기와 제작기술은 신라와 왜에도 전해졌는데, 왜에 파견된 와박사는 아스카 기와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출처:중앙박물관>
1. 풀꽃무늬수막새, 삼국시대(백제) 4~5세기, 서울 풍남토성, 2. 동전무늬 수막새, 삼국시대(백제) 4~5세기, 서울 석촌동 무덤, 3. 연꽃무늬 수막새, 삼국시대(백제) 6~7세기, 충남 공주 서혈사터
4. 연꽃무늬 수막새, 삼국시대(백제) 6세기, 충남 공주 공산성, 5.연꽃무늬수막새, 삼국시대(백제) 6~7세기, 전북 익산 제석사터, 6.연꽃무늬 서까래 막새, 삼국시대(백제) 6~7세기, 충남 부여 정림사터
7. 연꽃무늬 수막새, 삼국시대(백제) 6~7세기 충남 부여 능산리 절터, 8. 연꽃무늬 수막새, 삼국시대(백제) 6~7세기, 충남 부여 능산리 절터, 9. 동전무늬 수막새, 삼국시대(백제) 4~5세기, 서울 풍납토성
10. 연꽃무늬 수막새, 삼국시대(백제) 7세기, 충남 부여 부소산성, 11. 연꽃무늬 수막새, 삼국시대(백제) 7세기, 전북 익산 미륵사터, 12. 바람개비무늬 수막새, 삼국시대(백제) 7세기, 충남 부여 부소산성, 13. 연꽃무늬 수막새, 삼국시대(백제) 6~7세기, 충남 부여 관북리
백제의 영역 중 수도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영산강 유역은 옛 마한의 근거지이자, 한.중.일 해상교통로에서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으며, 넒은 평야를 끼고 있어서 오랫동안 강력한 지방세력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마한의 근거지였던것으로 추정되는 나주 반남면 일대 자미산성 주변으로는 신촌리, 덕산리, 대안리에 상당히 규모가 크고 많은 수의 고분이 존재하고 있으며, 영산강 이북에는 나주 복암리를 비롯하여 여러지역에 지방유력세력의 근거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산강 유역의 고분들은 마한시대의 것들도 있지만, 상당수는 백제시대 지방 유력자들의 그 고분이다. 이들 고분은 흙을 높게 쌓고 그 안에 커다란 독널을 매장한 거대한 고분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금동관, 금동신발 등 화려한 꾸미개들이 부장품으로 묻었다.
백제의 무덤, 돌무지무덤, 돌덧널무덤, 돌방무덤
백제의 무덤
돌무지무덤, 돌을 쌓아 만든 무덤으로 주로 한강 유역에서 확인된다. 서울 석촌동 무덤이 대표적이며 백제 초기 지배층의 무덤으로 파악된다. 돌덧널무덤, 긴 네모모양의 구덩이를 판 후 깬 돌을 쌓아 네 벽을 만들고 그 위에 몇 개의 뚜껑돌을 덮은 무덤이다. 천장을 좁히기 위해 벽 위에 굄돌을 얹거나 벽면을 경사지게 쌓은 것이 많이 확인된다. 돌방무덤, 네모 모양의 돌방 한쪽에 출입시설을 만든 무덤으로 추가 매장이 가능한 구조이다. 사비기에는 평평한 천장이 유행하는데, 부여 능산리고분과 같이 벽면에 사신도가 그려진 무덤도 등장한다. 벽돌무덤, 벽돌을 쌓아 만든 긴 네모 모양의 터널식 널방무덤으로 중국 남조로부터 받아들인 무덤 형식이다. 공주 송산리 6호 무덤과 무령왕릉이 대표적이며 웅진기에만 한정적으로 나타난다. <출처:중앙박물관>
영산강 유역 고분에서 주로 확인되고 있는 독널무덤
1.전남 영암 만술, 2.전북 고창 신월리, 3.전남 나주 복암리
4. 전남 나주 복암리, 5.전남 영암 내동리, 6.전남 영암 내동리, 7.전남 나주 복암리
8.전남 영암 만수리, 9.전북 고창 신월리, 10.전남 무안 맥포리
독널, 삼국시대
독널무덤은 세계 각지에서 널리 사용되었으며, 우리나라와 중국.일본 등에서도 선사시대부터 나타나고 있다. 영산강 유역에서 4~5세기 무렵 흙을 높게 쌓고 그 안에 커다란 독널을 매장한 거대한 고분이 유행하였다. 독널무덤에서는 금동관, 금동신, 목걸이 및 고리자루칼 등이 출토되는 경우도 있어 이 지역을 지배하던 실력자의 무덤으로 여겨진다. <출처:중앙박물관>
영산강 유역 지방세력의 무덤인 나주 복암리 고분군
신, 금동, 삼국시대(백제) 6세기, 전남 나주 복암리 무덤
목걸이, 옥, 삼국시대(백제) 4~6세기,
영산강 유역 독무덤, 영산강유역의 독무덤에서 출토되는 꾸미개는 주로 옥과 유리구슬인데 이는 『삼국지』 위서에 마한 사람들이 구슬을 귀중히 여겼다는 기록과 일치한다.
장식항아리, 삼국시대(백제) 5세기, 전북 고창 봉덕리 1호 무덤
단지, 삼국시대(백제) 5세기, 전남 무안 사창리 무덤, 병, 삼국시대(백제) 6~7세기, 전남 나주 복암리 무덤
뚜껑접시, 삼국시대(백제) 6세기, 전남 나주 복암리 무덤, 구멍단지, 삼국시대(백제) 7세기, 전남 나주 복암리 무덤,
몸통 중앙에 구멍이 뚫려있는 그릇이다. 주로 제사와 같은 의례에서 구멍에 대롱을 꽂아 돌려가며 내용물을 마시는데 쓰였다.
고리자루칼, 금동.은, 삼국시대(백제) 6~7세기, 전남 나주 복암리 무덤
백제의 지방세력
영산강 유역에서는 비옥한 평야와 강을 끼고 바다에 인접한 지리적인 여건을 바탕으로 강력한 세력이 존재하였다. 이들은 백제가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해 감에 따라 점차 백제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된다. 4~5세기 무렵에는 흙을 높게 쌓고 그 안에 커다란 독널을 매장한 거대한 고분이 유행하였다. 독널의 내부에는 금동관, 금동신발, 고리자루칼 등 화려한 꾸미개가 부장된다. 5세기 후반이 되면 깬 돌을 쌓아 만든 돌방무덤으로 바뀌고, 나중에는 판돌을 세워 짜 맞추는 백제식의 돌방무덤으로 변화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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