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부여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석조사리감(국보)이다. 사비기 백제 왕릉이 있는 능산리 절터 목탑터에서 출토되었다.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사리장치로 높이 74 cm, 가로 50 cm의 불상을 모시는 감실과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감실 양쪽에 예서체 글자 10자씩 새겨져 있다. 글자의 내용은 창왕(위덕왕) 때인 567년에 조성되었으며, 공주가 사리를 공양했다는 내용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리장치 중 하나이자 금석문 자료로서 능산리사지 창건 내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부여 능산리사지(사적)는 백제 왕릉인 능산리고분군과 백제 나성 사이에서 확인된 사비기 백제의 대표적인 절터이다. 성왕의 아들이 위덕왕이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해 원찰로서 창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절터에서는 백제 금동대향로(국보)를 비롯하여 중국에서 수입한 청자류, 문서에 해당하는 목간들, 다양한 형태의 기와 등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국보)>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사리장치로 불상을 모시는 감실형태를 하고 있다. 능산리사지 절터 목탑 심초석 부근에서 발견된 것으로 초기 사리장치의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오른쪽에 새겨진 글자>
사리감 양쪽에는 중국 남북조시대에 유행한 예서체 형태로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오른쪽에는 창왕(위덕왕) 13년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어 조성연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왼쪽에 새겨진 글자>
왼쪽에는 공주가 사리를 봉안했음을 추정할 수 있게 해 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백제 창왕명석조 사리감
목탑지 심초석 위에서 발견된 사리감은 아래가 편평하고 위가 둥근 아치형으로 무덤의 입구를 연상시킨다. 앞면에는 ‘백제 창왕 13년 정해년(567년)에 누이인 형공주가 사리를 공양하였다’고 한자로 적혀 있다. 창왕 즉 위덕왕은 성왕의 아들로 백제의 왕릉이 있는 능산리에 절을 세워 아버지의 넋을 기리고, 불교를 통해 성왕이 이루지 못한 백제 중흥의 꿈을 실현코자 하였다. 이 사리감은 위덕왕의 이러한 간절한 염원을 생생히 전해주고 있다. (부여박물관, 2012년)
<석조사리감이 출토된 능산리사지(사적) 목탑터>
사리감에 적힌 글자의 내용으로 볼 때 위덕왕이 아버지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이 사찰을 창건했음을 알 수 있다.
<백제문화단지에 재현해 놓은 목탑>
건물터의 규모나 정림사지 오층석탑 등을 고려하여 5층 목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여 재현해 놓았다. 황룡사지 구층목탑에 비해 그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삼국시대 이후 세워진 전형적인 목탑의 형태나 규모일 것으로 생각된다.
<사리감이 있었던 목탑 심초석>
<출처>
- 국립부여박물관
- 문화재청
- 두산백과
- 위키백과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답글 남기기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