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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금동대향로(국보), 능산리사지에 출토된 도교 신선사상이 표현된 향로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백제 금동대향로(국보)이다. 사비기 백제 왕릉들이 있는 능산리고분군(사적)와 부여 나성(사적) 사이에 있는 능산리사지(사적)에서 출토된 것으로 삼국시대 백제를 대표하는 화려한 유물이다. 높이 61.8 cm, 무게 11.8 kg의 대형 향로로 중국 한나라대에 크게 유행한 박산향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향로는 용이 머리를 들어 입으로 향로를 물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받침, 사실감 있게 묘사된 연잎으로 장식하고있는 향로 몸통, 중국 전설에 나오는 신선들이 살고 있다는 박산을 묘사한 몸체 뚜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뚜껑의 정상부에는 한마리의 봉황이 장식되어 있다. 향로에는 구멍이 뚫려 있는데 향로에서 피워 올린 연기가 박산 주위에서 안개처럼 퍼져나가는 모습을 연출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박산형태의 뚜껑에는 12명의 인물과 42마리의 동물, 바위, 나무 등이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중국의 영향을 받은 박산향로의 일종이지만 그 제작수법이나 예술성이 매우 뛰어난 유물이다.

박산향로는 한무제 이후부터 출토되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는 신선사상, 음양오행설 등이 동중서에 의해서 반영되는 시기이다. 한대 왕실에서는 청동으로 만든 박산향로를 제사 등의 분향에 사용하거나 무덤에 부장하기도 했다. 이후에 불교에서도 박산향로가 수용되면서 남조를 통해서 백제에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불교에서 향로는 불단을 장식하는 기물로 불단 아래에 놓여 졌다. 향로의 형태는 백제금동향로와 유사하며 받침대로 용이 장식되고, 뚜껑에는 박산의 모습이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다. 뚜겅에는 다양한 동물, 신선, 수렵하는 모습 등이 새겨져 있는데 한무제대에 유목문화를 받아들인 내용인 것으로 보인다.


<백제 금동대향로(국보), 6~7세기>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1990년대에 출토되었다. 사실상 불교국가였던 사비기 백제에서 만든 것으로 도교적인 사상과 이상향이 잘 표현되어 있다. 제작기술이나 표현에 있어서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옆에서 본 모습>

향로의 구성은 신선이 사는 박산을 표현한 뚜껑과 봉황모양 장식, 용모양을 하고 있는 받침, 연꽃잎을 형상화한 몸체로 이루어져 있다.

<봉황장식>

향로 뚜껑 위에는 날개를 활짝 펴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봉황이 장식되어 있다. 향로에는 많은 조각상 들 중 가장 생동감있게 표현되어 있다.

<향로 뚜껑>

향로 뚜껑에는 74개의 봉우리를 배경으로 12명의 인물과 42마리의 동물, 나무와 바위 등이 매우 상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정상부 봉황주위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5명의 악사가 배치되어 있는데, 그 중 소를 부른 악사를 볼 수 있다. 그 아래에는 말을 타고 수렵을 하는 고구려 고분의 수렵도와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한무제대에 북방유목민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 외에 많은 인물과 동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봉황장식 아래에 소를 불고 있는 모습>

백제금동대향로에는 다섯명의 악사가 소, 피리, 완함, 거문고, 북 등의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전체 구성상 악사들은 천상의 봉황 아래 위치하고 있어 음악으로 세상에 평화를 심어주려고 한 것처럼 보인다.

백제금동대향로에 보이는 악기
백제금동대향로에는 다섯명의 악사가 앉아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관악기는 소.피리, 현악기는 완함.거문고, 타악기는 북 등 모두 5개의 악기로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구성하고 있는 듯하다. 다섯명의 악사는 사람과 모든 동식물 위에 배치되어 있어 당시 음악을 연주하는 악사들의 사회적 위치와 지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과 삼라만상의 모든 생명들에게 음악을 연주하며 무릉도원으로 이르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백제금동대향로에 표현된 악기는 고구려 벽화에서 보이는 악기와 같거나 비슷한 모습이다. (‘우리음악 우리악기’, 중앙박물관특별전, 2011년)

<북을 두드리는 악사와 거문고를 연주하는 악사>

정상부에 북을 두드리는 악사와 거문고를 연주하는 악사를 볼 수 있다. 산에는 말을 타고 수렵하는 모습과 많은 동물들을 볼 수 있는데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는 수렵장면과 비슷한 느낌이다.

<북을 두드리는 모습>

<거문고를 연주하는 모습>

<완함을 연주하는 악사>

정상부에 완함을 연주하는 악사가 있고 산 중간에는 신선으로 보이는 여러 인물들과 다양한 동물들이 표현되어 있다.

<완함을 연주하는 모습>

<피리를 연주하는 악사>

<피리를 부는 모습>

<몸체>

향을 피우는 몸체에는 8개의 꽃잎으로 이우러진 세겹의 연꽃이 표현되어 있다. 연꽃잎에는 2명의 인물과 27마리의 동물이 표현되어 있다.

<몸체에 표현된 동물과 인물상>

<향로 받침>

향로 받침에는 용이 하늘을 향해 용틀임을 하는 모습을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백제금동대향로, 국보, 부여 능산리절터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의 멸망과 함께 땅속에 묻혔다가 1993년 능산리사지 발굴조사를 통해 세상에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 향로는 높이 61.8cm, 무게 11.85kg의 대작으로 한마리의 용이 머리를 들어 입으로 향로 몸체의 하부를 물고 있는 받침과 양감 있는 사실적인 연잎으로 표현된 향로 몸통, 그리고 박산 형태의 중첩된 산악으로 묘사된 뚜껑의 세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뚜껑의 정상에는 날개를 활짝 핀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한 마리의 봉황이 장식되어 있다. 뚜껑에는 74개의 봉우리를 배경으로 12명의 인물과 42마리의 동물, 나무 및 바위 등이 빈틈없이 묘사되어 있으며, 정상부의 봉황 주위에 5마리의 새와 5명의 악사가 배치되어 있다. 봉황의 가슴과 산악 사이에는 각각 2개 및 10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데, 향로에서 피워올린 연기가 산간에 자욱한 안개처럼 퍼지거나 뚜껑과 연결된 관을 통해 봉황의 가슴에서 솟아 오르도록 고안된 것이다. 몸통은 8개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세겹의 연꽃으로 표현되었으며, 꽃잎 위에 2명의 인물과 27마리의 동물이 묘사되어 있다.받침은 하늘을 향해 용틀임하는 용을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다리와 몸통사이에 구름무늬, 연꽃무늬 등을 배치하여 전체가 하나의 원형 받침을 이루도록 하였다. 몸통과 받침은 용이 물고 있는 봉을 몸통에 낸 흠에 끼워 연결하였다. 이 향로는 당시 왕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능산리사지에서 출토된 점으로 미루어 왕실 의례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능산리 절이 백제의 운명과 함께 사라져 버리면서, 그 속에서 찬란한 자취를 뽐내던 향로도 누군가의 손에 의해 묻혀 버리고, 그와 더불어 백제 중흥의 꿈도 빛을 잃게 되었다. (부여박물관, 2012년)

<부여 능산리사지(사적)>

백제 왕릉인 능산리고분군과 백제 나성 사이에서 확인된 사비기 백제의 대표적인 절터이다. 성왕의 아들이 위덕왕이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해 원찰로서 창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절터에서는 백제 금동대향로(국보)를 비롯하여 중국에서 수입한 청자류, 문서에 해당하는 목간들, 다양한 형태의 기와 등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부여 백제문화단지 내 재현해 놓은 능사 금당>

이 향로는 능산리 절의 금당 안 불단 아래에 놓여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당 내부에 재현해 놓은 향로>

불상을 모시는 불단 아래에 놓여 있다.

<출처>

  1. 국립부여박물관
  2. 문화재청
  3. 두산백과
  4. 위키백과
  5. 한국민족문화대백과
  6.  ”우리음악 우리악기”,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