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중국과 해상교통로의 주요한 위치에 있었기때문에 가야연맹체는 다른 지역과 무역거래가 상당히 많았던 지역이다. 이런 지리적인 잇점과 지역에서 생산된 철을 수출할 수 있었던 가야는 상당한 수준의 경제력을 축적할 수 있었다. 이런 경제력을 바탕으로 가야의 지배층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서 상당히 크고 많은 고분들을 남겨놓고 있으며, 상당한 수준의 부장품들이 출토되고 있다. 이들 고분에 대한 발굴작업은 일제강점기에 상당히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일본인들에 의해 상당히 많은 부장품들이 밀반출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상당히 많이 남아 있으며, 상당수의 유물들은 국립김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가야의 상형토기, 철제무기와 더불어 무덤의 부장품으로 많이 묻혀 있던 유물이 금.은.옥으로 만든 꾸미개이다. 가야의 꾸미개로는 지배층의 권위를 나타내는 금동관을 비롯하여, 귀걸이.팔찌.목걸이 등도 다양한 종류의 꾸미개들이 출토되고 있다. 가야의 관은 신라의 것과는 다르게 풀꽃모양의 세움장식을 하고 있으며, 왕이 사용한 것인지 아니면 귀족계층에서 사용한 것인지는 알려지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금관, 1.전 경남 창녕, 복제품, 삼국시대(가야) 5세기>
경상도지역에서 출토된 것으로 신라금관과는 다른 가야만의 특징을 가지고 금관이다.
금동관, 2.경북 성주 가암동, 1980년 입수, 삼국시대(가야) 5세기,
금동관, 3.경북 고령 지산동, 1978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금귀걸이, 1.경북 고령 지산동, 1977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2,14,전 경상도지역, 1931년 입수, 삼국시대(가야) 5~6세기,
금귀걸이, 3.경남 합천 옥전, 1988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4,5,6,8,11.경남 합천 옥전, 1991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귀걸이는 고리와 연결장식, 드리개로 구성되며 가느다란 고리가 특징이다. 연결 장식은 공모양과 사슬 형태로 이은 것이 있고, 드리개는 나뭇잎 모양 등이 있다.
금귀걸이, 7,9,10.경북 고령 지산동, 1995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금귀걸이, 12.경남 의령 경산리, 2000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13.경북 고령 지산동, 1970년 구입, 삼국시대(가야) 5~6세기, 금반지, 15.경북 고령 지산중, 2008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목걸이, 16,19.경남 합천 저포리, 1986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목걸이, 17.경남 의령 천곡리, 1995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18.경남 합천 옥전, 1987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목걸이, 20.경남 함안 도항리, 1992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21.경남 고성 내산리, 1999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목걸이, 25.전 경남 김해, 1985년 입수, 삼국시대(가야) 5~6세기, 곱은옥, 26.경남 함안 도항리, 1993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은팔찌, 22.경남 창녕 교동, 1918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금팔찌, 23.경남 합천 옥전, 1987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24.경남 창녕 교동, 1918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가야의 장신구
가야 사람들이 즐겨 착용한 장신구로는 관, 귀걸이, 목걸이, 팔찌, 반지 등이 있다. 이 중 관은 관테와 풀꽃모양 세움장식이 있는 형태이다. 관테의 위아래에는 점줄무늬와 점줄문살무늬가 새겨져 있고 둥근 날개가 달리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다. 귀걸이는 고리하나로만 이루어진 것과 세부분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있다. 목걸이는 주로 유리, 수정, 마노, 호박, 천하석 등으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며 드물게 팔찌나 반지도 출토된다. 꾸미개는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주술적인 힘과 사회적 권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어 고대인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출처:중앙박물관>
항아리, 1.경북 성주 성산동, 1987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긴목항아리, 2.경북 성주 성산동, 1987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말띠드리개, 3.경남 창녕 교동, 1918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굽다리접시, 4,5,6.경남 창녕 교동, 1918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굽다리접시, 7,8.경북 성주 성산동, 1987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말띠꾸미개, 9.경남 창녕 교동, 1918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명문고리자루칼, 10.경남 창녕 교통, 1918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가야에서 신라로
경상북도 성주 지역에 있었던 성산가야와 경상남도 창녕지역에 있었던 비사벌(혹은 비화가야)은 금관가야나 대가야처럼 6세기 때까지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이른 시기부터 신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성주 성산동이나 창녕 교동 등 주요 고분에서 출토되는 금공품이나 마구, 칼 등은 신라식이 많지만 토기문화는 여전히 지역색을 보이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가야는 바다에 접해 있다는 지리적인 이점과 풍부한 철자원을 바탕으로 중국 및 일본과 활발하게 교류하였다. 가야연맹체 유적지에서는 당시 교류를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는데 그 중 지리적,정치적으로 가까웠던 일본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유물들이 가장 많이 출토되고 있으며, 중국 북조와 남조를 비롯하여 멀리 서역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유리잔도 보인다. 청동솥, 거울, 방패꾸미개, 적갈색토기 등은 가야와 주변국가와의 국제적인 교류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유물들이다.
배모양 그릇, 1.경남 창원 현동, 2010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청동거울, 2.경남 김해 대성동, 1992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5세기,
여러가지 무늬와 사신이 표현되어 있으며, 손잡이 주위에 작은 꼭지가 달려 있다. 기원후 1세기 무렵 중국 후한에서 만들어진 거울이다. 청동거울은 청동기시대 이래로 다양한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으며 대부분은 중국에서 수입한 것이라 한다.
청동솥, 3.경남 김해 대성동, 1992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세기,
반달모양의 손잡이가 달려있고 바닥이 편평하며, 음식을 끓이는 그릇이다. 초원지대 유목민족의 것으로 북방문화의 영향임을 알 수 있다. 지금도 몽골지역에서는 이런 용기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TV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청동그릇, 4.경남 김해 대성동, 2012년 발굴, 복제품, 삼국시대(가야) 4세기, 5.경남 김해 대성동, 2012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세기,
유리잔, 6.경남 합천 옥전, 1991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가야와 신라의 왕릉급 무덤에서 출토되는 것으로 로마계 유리잔이다. 유리표면에 감색 유리를 덧붙인 것으로 경주 금령총에서도 출토되었다.
상어이빨 촉, 7.경남 김해 대성동, 1992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5세기, 철 화살촉, 8.경남 김해 양동, 1996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돌로 만든 것은 일본에서 들어온 것으로 지배자의 상징적인 물품으로 추정된다. 상어의 이빨을 가공하여 만든 화살촉은 삼각형이며 가장자리에 가늘고 날카로운 톱니가 새겨져 있다.
방패꾸미개, 9.경남 김해 대성동, 1992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5세기,
바람개비 모양으로 나무나 가죽으로 된 방패에 붙인 것이다. 뒷면에는 방패에 매달기 위한 고리가 있다. 일본과 교류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옥화살촉, 10.경남 김해 대성동, 1991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5세기
통형동기, 11.경남 김해 대성동, 1992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5세기,
속이 빈 둥근 통 속에 청동 또는 철로 된 작은 구슬이 들어 있어 흔들면 소리가 난다. 장대에 꽂아 사용한 것이다.
가야의 대외교류
가야는 바다에 접해 있다는 지리적인 이점과 풍부한 철자원을 바탕으로 중국, 북방, 왜뿐만 아니라 서역과도 교류하였다. 최근 백제지역에서 많이 출토되던 닭머리모양 주둥이를 가진 청자호가 남원지역 가야무덤에서 확인되어 중국의 북조뿐만 아니라 남조와도 교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청동솥과 청동대야 등은 북방과의 교류를 보여준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왜와의 교류를 보여주는 유물로 방패꾸미개, 원통모양청동기, 옥제 화살촉과 갈색토기가 대표적이다. 또 옥전유적에서는 서역계의 유리잔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집모양토기, 1.전 대구 달성, 1966년 입수, 삼국시대(가야) 5~6세기,
경사진 맞배지붕의 꼭대기엔느 고양이 한 마리가 쥐를 잡기 위해 기다리고 있고, 이것을 모르는 쥐 두마리는 장난스럽게 사다리를 오르고 있다. 왼쪽은 이 토기를 재현한 것이다. 곡식을 보관하는 창고의 모습을 작고 앙증맞게 나타내고 있다. 당시의 주택 중 창고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창고에 같이 묘사된 고양이와 쥐의 모습은 사실적이면서도 당시 사람들의 해악이 넘처남을 느낄 수 있다.
집모양토기, 3.경남 창원 다호리, 1998년 발굴, 복제품, 삼국시대(가야) 5~6세기,
바닥이 높게 설치된 집 형태로 가로와 세로로 이어진 지붕과 출입문이 표현되어 있다. 낙동강주변 주남저수지 부근에 있는 다호리지역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삼국시대 창고인 부경의 구조를 알 수 있다.
짚신모양토기, 2.부산 동래 복천동, 1991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굽
다리접시의 받침 부분 위에 집신과 잔을 붙인 형태이다. 넓은 밑판과 여러 갈래의 줄로 연결된 짚신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시루, 1.1963년 구입, 삼국시대 5~6세기, 2.부산 동래 낙민동, 1968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3~4세기
고둥이 담긴 굽다리접시, 3.경북 고령 지산동, 1978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물고기뼈가 담긴 굽다리 접시, 4.경북 고령 지산동, 1977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5.경북 고령 지산동, 2008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팥, 6.부산 기장 용수리, 2005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5세기. 밀, 7.부산 기장 용수리, 2005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5세기, 오이씨, 8.부산 기장 용수리, 2005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5세기, 박씨, 9.부산 기장 용수리, 2005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5세기, 복숭아씨, 10.부산 기장 용수리, 2005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5세기, 호두껍질, 11.부산 기장 용수리, 2005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5세기
가야사람들의 생활
가야 사람들의 생활을 알려주는 자료는 많지 않으며 무덤이나 생활유적에서 발견되는 유기물이나 토기 등으로 일부가 알려져 있을뿐이다. 가야 사람들은 민물고기, 고둥, 상어, 참다랑어, 닭 등의 고기류와 팥, 밀, 밤, 복숭아, 호두 등의 곡식과 열매를 먹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날것으로 먹기 어려운 식재료는 솥에 삶거나 시루에 쪄서 먹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가야 집터에선는 시루가 종종 출토된다. 또 가야무덤에서 출토된 짚산모양토기, 바퀴모양토기와 집모양토기 등을 통해 가야 사람들의 생활상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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