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시대 삼한 중 변한을 계승한 가야연맹체는 고조선시대 이래로 중국.한반도.일본과의 해상무역로에서 중요한 지역이었다. 이러한 지리적인 잇점과 철생산이 많았던 지역적인 특성으로 가야는 상당한 경제력을 축적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한시대에는 해안과 가까운 여수, 사천 늑도, 창원 다호리 지역 등이 해상무역의 중심지였으나 점차 풍부한 철을 바탕으로 낙동강 하류에 위치한 금관가아와 아라가야가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으며, 5세기와 6세기에는 대가야와 아라가야가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여 신라, 백제와 힘을 겨루었다.
이런 경제력을 바탕으로 가야지역에는 다른 지역에 비해서 상당히 크고 많은 고분들을 남겨놓고 있으며, 그 고분들에서는 상당한 수준의 부장품들이 출토되고 있다. 특히, 중국.일본과의 해상교류의 거점이기도 한 금관가야 지역의 근거지인 김해 대성동 고분과 창원 다호리에서는 이른 시기부터 수준높은 청동기와 철기 문화를 이루고 있었으며, 대외 교류와 관련된 많은 유물들을 남겨놓고 있다. 김해 대성동, 함안 도항리, 합천 옥천, 고성 내산리, 고령 지산리 등에 위치한 가야 귀족층의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들은 상당히 높은 수준을 문화를 가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철갑옷과 투구, 철제 무기로 중무장한 무사.
지금 기준으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무장을 하고 있다. 연맹체 국가였던 가야는 여러곳에 지배층의 무덤이 고분군을 남겨 놓았으며, 부장품으로 많은 철제무기류들이 출토되고 있다.
가야의 건국신화
가야의 건국신화는 금관가야와 대가야의 두가지가 전해진다. 금관가야의 건국신화는 ‘하늘로부터 금빛 상자에 담긴 6개의 황금알이 구지봉에 내려왔다. 10일 후 알에서 여섯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 중 가장 먼저 태어난 아이가 수로이며 금관가야의 왕이 되었다. 나머지 다섯 사람들도 각각 다섯 가야의 임금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대가야의 건국신화는 ‘가야산신 정견모주가 천신에게 감응되어 두 아이를 낳았는데 이들은 각각 대가야 왕과 금관국 왕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
– 『삼국유사』 권2, 「가락국기」 –
쇠뿔 모양 손잡이가 달린 굽다리 항아리, 경남 김해 대성동, 1992년 발굴, 삼한시대(변한) 2세기, 목걸이, 경남 김해 대성동, 1993년 발굴, 삼한시대(변한) 2세기
덩이쇠, 1.경남 함안 도항리, 1992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2. 부산 동래 복천동, 1991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세기.
여러 가지 철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철소재로서 함께 묶인 형태로 출토된다. 무덤에 묻힌 덩이쇠는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산 복천동무덤, 함안 도항리무덤, 고령 지산리무덤에서 출토되었다. 가야와 중국, 일본과 교류할 때 화폐의 기능도 가졌다고 하며 다양한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다.
철제집게, 3.경남 양산 북정리, 1991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철제망치, 4.경남 양산 북정리, 1991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철제모루, 5.경남 양산 북정리, 1991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숫돌, 6.경북 고령 지산동, 1977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대장간에서 사용하는 철기를 만드는 도구로 집게, 망치, 모루, 숫돌 등이 있다. 무덤의 주인공이 철기의 생산을 담당했던 사람임을 의미하며 그 직위가 상당히 높았다고 추정할 수 있게 해 준다. 다양한 지역에서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철광석, 7.경남 김해 여래리, 2007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송풍관, 8.경남 밀양 사촌리, 2000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굽은칼, 1.경남 합천 저포리, 1987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5세기, 2.경남 김해 대성동, 1992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5세기, 손칼, 3.부산 동래 복천동, 1991 발굴, 삼국시대(가야) 4세기, 미늘쇠, 4.경남 함안 도항리, 1992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5.경남 합천 옥전, 1992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칼 모양의 몸통에 미늘같은 뾰족한 날이 서 있으며, 아래에는 투겁이 있어 자루를 끼울 수 있다. 긴 덩이쇠의 가장자리에 새모양 장식을 만든 것이 경남 함안과 합천 지역을 중심으로 발견되고 있다. 미늘쇠는 지배자의 신분을 나타내는 의식용 도구로 추정된다. 권위의 상징으로 지역에 따라 새모양, 고사리 모양 등의 문양이 나타난다.
고리자루칼, 6.경남 합천 옥전, 1988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7.경북 고령 지산동, 1995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8.경남 함안 도항리, 1992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고리자루칼 고리장식.
칼 손잡이의 뒷부분에 둥근 고리가 달려 있고 금.은으로 장식한 용이나 봉황 등의 무늬가 표현되어 있다.
가야의 철 생산과 철기
철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원료인 철광석을 녹여 철을 뽑아낸 후 생산된 철로 도구를 만들어야 한다. 철기를 만드는 방법으로는 녹인 쇳물을 거푸집에 부어 만드는 주조와 쇳덩이를 달구어 두드려 철기를 만드는 단조기술이 있다. 무덤에서 칼.창 같은 철제 무기가 많이 출토되는데 특히 용과 봉황 등을 장식한 고리자루칼은 지배자의 신분과 정치체 사이의 결속을 다지는 상징물로 추정된다. 가야는 풍부한 철자원과 우수한 철기 제작기술을 바탕으로 세력을 확대할 수 있었다. <출처:중앙박물관>
판갑옷, 1.부산 동래 복천동, 1991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세기,
목제갑옷틀, 2.경북 경산 임당동, 1997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5세기.
경산 임당동 저습지에서 출토되었다. 갑옷의 제작에 사용된 나무틀로 갑옷에 사용될 철판을 이 틀에 맞추어 곡선을 조정하거나 다듬는 작업을 한 것으로 보인다.
판갑옷, 3.경남 함안 도항리, 1998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함안 도항리 무덤에서 출토된 판금갑옷으로 중세 유럽의 중무장한 기사를 연상시키는 갑옷이다. 갑옷에는 판금갑옷과 미늘갑옷이 있는데, 유럽의 기사와는 달리 주로 보병들이 판금갑옷을 입었다고 한다.
판갑옷.투구, 4.경북 고령 지산동, 1978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회장판갑옷과 앞이 각진 투구, 어깨가리개가 함께 있는 5세기경에 갑옷이다. 대가야의 수도인 고령 지산동 고분에서 출토되었다. 투구는 철판 50여개를 2단으로 배치하고 못을 박아 만들었다. 둥근 형태의 챙에는 삼각형 구멍이 뚫려 있다.
가야의 갑옷
가야 지역에서 널리 사용된 갑옷은 큰 철판 20~30매를 이어서 만든 판갑옷으로, 가야무사의 상징이기도 하다. 판갑옷은 오른쪽 앞 몸통, 왼쪽 앞 몸통과 뒷몸통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는데 뒷몸통과 앞몸통은 분리할 수 있도록 하거나 가죽, 경첩 등으로 연결하여 갑옷을 쉽게 입고 벗을 수 있도록 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가야의 말갖춤>
말머리가리개, 1.경남 합천 옥전, 1988년 발굴.
고구려 철기병을 연상시키는 금속판금으로 만든 말머리가리개이다. 전투할 때 말을 보호하기 위해 말의 얼굴에 씌운 것이다. 얼굴 덮개, 볼 가리개, 챙으로 구성된다. 고구려의 무덤벽화에서 많이 보인다.
금동말안장꾸미개, 2.전 대구 달성 현풍, 1966년 입수.
말 등에 안전하게 앉아 있을 수 이도록 제작된 안장 앞.뒷면의 꾸미개이다. 정교한 용무늬가 뚫린 금동판을 부착하여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금동말방울, 3.경남 김해 대성동, 2012년 발굴, 삼각모양금동장식, 4.경남 김해 대성동, 2012년 발굴
말띠꾸미개, 5.경남 김해 대성동, 2012년 발굴, 청동말방울, 6.경남 함안 도항리, 1995년 발굴,
청동말방울, 7,8.경북 고령 지산동, 1977년 발굴, 청동말방울, 13.경남 창녕 교동, 1918년 발굴
재갈, 9.경남 김해 대성동, 1992년 발굴, 말을 다루기 위해 입에 물리는 도구이다. 무덤에서 다양한 형태의 것이 출토되며 금.은으로 장식된 것도 있다. 가야의 기마문화와 관계가 깊다. 말띠 꾸미개, 10. 2004년 김흥기 기증.
발걸이, 11.경남 함안 도항리, 1996년 발굴, 12.경남 창녕 교동, 1918년 발굴,
은장식말띠꾸미개, 14,15.경남 의령 경산리, 2000년 발굴, 금동장식말띠꾸미개, 16.경남 함안 도항리, 1993년 발굴
말띠드리개, 17.경북 고령 지산동, 1977년 발굴, 18.경남 함안 도항리, 1993년 발굴, 19.부산 동래 복천동, 1969년 발굴
기꽂이, 20.경남 합천 옥전, 1988년 발굴.
말안장의 뒤쪽에 붙여 기를 꽂는 것이다. 무사의 위엄과 화려함을 더해주며, 고구려의 무덤벽화에서도 보인다.
가야의 말갖춤
말갖춤은 말을 타고 부리는 데 필요한 모든 도구를 이르는 말이다. 말갖춤은 크게 마차용과 승마용으로 나뉘는데 가야의 말갖춤은 모두 승마용이다. 종류로는 말을 제어하는 재갈.굴레.고삐, 말 탄 사람의 안정을 위한 발걸이.안장.가슴걸이.뒤걸이, 그리고 장식을 위한 띠꾸미개.말방울.기꽂이 등이 있다. 이와 더불어 말 자체를 보호하기 위한 말머리가리개와 말갑옷도 있다. 가야의 말갖춤은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지만 차츰 가야 특유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출처:중앙박물관>가야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의하면 가야는 기원후 42년 수로왕에 의해 김해지방에서 건국되었다고 한다. 초기에는 이 지역의 풍부한 철을 기반으로 금관가야와 아라가야가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특히 금관가야는 바닷길을 통해 중국, 왜 등과 철을 기반으로 한 국제교역으로 부를 축적하였다. 5세기와 6세기에는 대가야와 아라가야를 중심으로 큰 세력을 형성하였다. ‘대왕’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와 화려한 금제품 그리고 대형봉토분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신라, 백제와 힘을 겨룰만큼 강한 세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가야 문화의 특징은 부드러운 곡선미를 가진 다양한 형태의 토기, 많은 양의 철제 무기와 화려한 말갖춤 등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경남 김해 대성동.함안 도항리.합천 옥천.고성 내산리와 경북 고령 지산리 등의 가야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수준 높은 가야 문화를 잘 보여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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