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있는 공세리성당이다. 이곳에는 본당을 비롯하여 사제당.피정의 집 등의 건물들이 있다.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사제관은 1897년에 지어진 건물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본당은 1922년에 지어졌는데 붉은 벽돌로 지은 고딕양식을 하고 있다. 내부는 좌우 기둥에 의해 3개열로 구분되는 삼랑식 평면구성이며, 아치형의 천장을 하고 있다. 초기에 지어진 명동성당, 약현동성당, 원효로성당 등과 설계와 공법에 있어서 비슷하며 초기 성당건축에 큰 역할을 한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성당이 있는 이곳은 한적한 시골마을 성당처럼 보이며, 공세곶 언덕의 울창한 숲과 성당건물들의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아산 공세리는 평택과 아산을 연결한 아산만방조제의 아산쪽 연결지점으로 충남 서해안 내포평야의 입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지금은 평지에 솟은 작은 동산처럼 보이지만, 조선시대 세금을 걷어들이는 바닷길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공세곶고가 있었던 곳이다.
<아산 공세리성당>
본당은 초기 성당건축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고딕양식의 건축물로 1922년에 지어졌다.
<옆에서 본 모습>
<성당 정면 출입문>
<고딕양식의 첨탑>
<윗부분이 아치형인 작은 창문>
<내부에서 본 창문>
스테인드글라스로 성화를 표현하고 있다.
<예배를 집전하는 제단이 있는 건물 앞쪽>
특별한 장식을 하고 있지는 않다.
<본당 내부>
2개의 기둥으로 공간을 3개로 분리한 삼랑식 평면구조를 하고 있다. 지붕은 아치형 회색천장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사제관>
벽돌로 지은 2층 건물로 1897년에 지어졌다. 정면에 ‘八’자모양의 계단을 두고 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뒷쪽에서 본 모습>
<언덕 아래 ‘피정의 집’을 비롯한 부속건물들>
<입구에서 본 모습>
<공세리성당 들어가는 길>
나즈막한 동산에 자리잡고 있다.
<안쪽에서 본 성당입구>
<산책길>
성당이 있는 언덕에 조성해 놓은 ‘십자가의 길’이라고 불리는 산책길이 있다.
<공세리성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아산만 입구 마을>
<공세곶>
성당이 위치한 작은 언덕은 공세곶이라 불렸으며, 조선시대 세곡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던 지역이다.
공세리 성지.성당
1890년에 시작된 120년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공세리 성지.성당은 충청남도 지정 문화재 144호이며, 350여 년이 넘은 다수의 국가 보호수가 있으며, 높은 언덕에 우뚝 서 있는 근대 고딕식 조적조 종교건물로 그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고 수려한 자연 경관과 잘 어우러져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라는 명성답게 공세리 성당만의 독특한 매력과 아름다운 자태를 맘껏 뽐내고 있다. 공세리 성당의 아름다움은 이미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서도 더 잘 알려져 있다. 성당이 위치한 1만 여평의 부지는 성종 9년(1478)부터 영조 38년(1762)까지 근 300년 동안 운영되었던 충청도 일대에서 거두어들인 세곡을 저장하던 공세 창고지인 역사 유적지이기도 하다. 공세리 성당이 위치한 이곳은 내포지방의 입구로써 내포지역은 한국천주교의 신앙의 못자리라 불릴만큼 한국 천주교 역사에 중요한 중심지였다. 공세리 성당에는 1801~1873년 신유, 병인박해 때 이 지역에서 순교하신 32위의 순교자들을 모시고 있는 순교 성지이기에 더욱 경건하고 의미있는 곳이기도 하다. 공세리 성당은 1890년 프랑스 외방선교회 파스키에 신부님에 의해 예산 간양골에서 시작되어 그 후 5년 뒤인 에밀 드비즈(파리외방선교회) 신부님에 의해 지금 이 자리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드비즈 신부님은 이곳에서 많은 일들을 하시는데 특이할 만한 업적 중 하나는 우리에게 이명래 고약으로 알려진 바로 그 고약의 원 개발자였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고약을 만들어 무료로 나누어주튼데 그 빕을 당시 드비즈 신부님을 도와주었던 이명래(요한)에게 전수하여 전국적으로 보급되었기에 공세리 성당은 “이명래 고약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다. (안내문, 공세리성당, 2014년)
<출처>
- 공세리성당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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