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시 둔포면 신랑리 마을에 남아 있는 윤보선 전대통령 생가이다. 해평 윤씨 집성촌인 이 마을에 남아 있는 여러채의 고택 중에 가장 큰 규모이다. 건물은 솟을대문, 바깥사랑채, 안사랑채, 행랑채, 안채로 구성로 구성되어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대저택이다. 붉은 벽돌과 유리창문을 사용하는 등 개량한옥의 특징들이 반영되어 있다. 건물들 약간씩 떨어져 있고, 넓은 마당에 ‘ㄱ’자 또는 ‘ㄴ’형 건물이 들어서 있는 등 개방적인 중부지방 한옥의 특징들도 잘 보여주고 있다. 윤보선 전대통령의 일가는 만석군으로 불리던 집안이며, 외가 역시 아산지역 만석군 집안의 딸이었다. 서울 안국동에 있는 윤보선 가옥은 99칸 대저택으로 서울에서도 가장 큰 민간주택이었다.
신항리마을은 평택과 안성에서 발원한 안성천이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주변에 산이 많지 않은 편이며,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이들 농지는 조선후기 이후 간척을 통해 확보된 것으로 한양의 권세가들이 소유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을에는 2대 대통령을 지낸 윤보선씨가 태어난 대저택을 비롯하여 여러동의 고택들이 남아 있다. 윤보선 일가는 서울 안국동도에 99칸 대저택을 소유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 무덤(사적 112호)에서 북쪽으로 4 km 정도 떨어져 있다.
<아산 신항리 마을에 남아 있는 윤보선 전대통령 생가>
둔포지역 만석군이었던 윤보선 일가가 살았던 대저택으로 일제강점기 직전에 지어진 개량한옥이다.
<솟을대문을 하고 있는 문간채>
골목 방향으로 창문이 있고, 붉은 벽돌을 사용하고 있는 개량한옥의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다.
<안쪽에서 본 문간채>
대문 양쪽으로 외양간과 창고, 그 양쪽으로 문간방이 배치되어 있다.
<왼쪽 문간방>
<오른쪽 문간방>
문간채 오른쪽으로는 마루와 온돌방이 있는 살림집 형태를 하고 있다.
<개량한옥의 특징을 보여주는 바깥사랑채>
192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 사랑채 앞 마당과 문간채가 있는 마당을 담장으로 구분하고 있다. 문간채 마당 쪽으로 누마루가 있다.
<바깥사랑채가 있는 마당을 출입하는 작은 협문>
<사랑채>
바깥 사랑채는 유리창문을 사용하는 등 일제강점기 한옥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전통적인 한옥의 사랑채와는 약간 다른 기능을 하는 공간으로 볼 수 있다.
<안채를 출입하는 중문>
<생활공간>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안사랑이 ‘ㅁ’자형을 이루면서 생활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안채 마당>
<안채 뒷편>
<바깥쪽에서 보이는 안사랑>
<안채와 안사랑 뒷편>
붉은 벽돌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 도시형 개량한옥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 안국동에 있는 윤보선가옥>
99칸의 대저택으로 민간주택으로서는 가장 큰 규모였다고 한다. 아산의 윤보선 생가와 함께 만석군이었던 윤보선 일가의 경제력을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다.
윤보선 전대통령 생가, 충남 아산시 둔포면 신항리
이 집은 제2공화국의 윤보선 전대통령이 태어난 집이다. ‘ㄴ’자형 행랑채의 뒤쪽에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안사랑채가 안마당을 둘러싸고, 행랑마당 오른쪽에 ‘ㄴ’자형 바깥 사랑채가 자리잡고 있어 전체적으로 파(巴)자형의 평면구조를 하고 있다. 바깥 사랑채에는 대문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안채는 원래 안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건넌방.작은부엌, 오른쪽에 웃방이 배치되고, 웃방 앞으로 샛방.안방.부엌이 튀어나와 있었는데 후대에 가로 칸의 6칸을 추가로 설치하였다. 1907년에 윤보선의 선친 윤치소가 건립하였고, 바깥 사랑채는 건축 양식으로 미루어 보아 1920년대에 지은 것으로 짐작된다. 후대에 부분적으로 다시 고쳐졌지만, 전형적인 중부지방의 평면 구성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안내문, 아산시청, 2010년)
<출처>
- 아산시청
- 문화재청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답글 남기기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