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tstory Traveling

Since 2008, Korea & World by younghwan

의성 금성산 고분군, 초기 삼국시대 조문국 유적지

경북 의성군 금성면 학미리, 탑리리, 학미리 일대에 있는 금성산 고분군이다. 탑리리 오층석탑(국보)가 있는 금성면 소재지에 있는 금성산 서쪽 능선과 그 아래에 200여 기의 고분들이 산재해 있다. 초기 삼국시대 지역 소국인 조문국 고분으로 조선후기 숙종 때 처음 발견되었으며, 1960년대 이후 발굴.조사를 통해 5~6세기에 조성된 무덤으로 확인되었다. 무덤은 굴식돌받무덤과 돌무지 덧널무덤, 앞트기식 돌방무덤이 확인되었다. 금동관, 관장식, 금동제 귀걸이 등 장신구와 철제무기,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의성군 금성면 일대는 쌍계천과 금성산 사이에 농지가 비교적 넓은 편이며, 주변에 산이 많아 수량이 풍부하여 농사짓기에 적합한 곳이다. 조문국은 의성군 금성면 일대에 있었던 삼한시대와 초기 삼국시대 지역의 소국으로 『삼국사기』에는 신라 벌휴왕때 편입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진 바가 없다. 오층석탑이 있는 금성면 소재지에서 의성군 소재지로 연결되는 28호 국도 옆에 공원으로 조성된 고분군을 볼 수 있다.

<의성 금성산 고분군>

금성면 소재지에서 의성읍으로 연결되는 28번 국도 옆에 ‘조문국 사적지’라 적힌 안내문과 고분들이 보인다. 대리리, 탑리리, 학미리 일대에 흩어져 있는 금성산 고분군 중 대리리에 소재한 고분들이다.

<고분군 전경>

‘조문국 사적지’라는 이름의 공원으로 조성된 금성산 고분군. 대리리에는 처음 발견된 전 경덕왕릉을 비롯하여 40여 기의 고분이 있다.

<고분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길>

<1호 고분>

조문국 국왕 경덕왕릉으로 전해지는 무덤이다. 조선후기 숙종 때 처음  발견된 무덤으로 조선시대 무덤처럼 상석을 비롯하여 석물들이 놓여 있다.

1호고분
삼한시대의 부족국가이던 조문국이 이곳에서 도읍하여 신라 벌휴왕 2년(185)에 신라 문화권에 병합되기 전까지 인근 고을의 넓은 지역을 다스렸던 조문국의 경덕왕릉은 그 형식이 전통적인 고분으로 봉 아래에 화강석 비석과 상석이 있다. 먼 옛날 외밭이었던 묘역을 발견하고 수호하게된 데에는 의성현령의 꿈에 의하여 발견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음을 조선 숙종 때 편찬된 허미수의 문집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현재 해마다 봄철이 되면 한 번씩 관민 일동이 여기서 춘계행사를 지내고 있다. 분구의 둘레가 74 m, 높이가 8 m이며, 능의 전면에는 가로 42 cm, 세로 22 cm, 높이 1.6 m의 비석이 있다. (안내문, 의성군청, 2017년)

<3호고분>

중간 크기의 고분으로 장신구를 비롯하여 여러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3호고분
평지에 가까운 곳에 조성된 3호 고분은 밑지름이 14.3 m ~ 10.7 m 내외, 높이가 3 m 정도였으며, 한 봉분안에 돌무지덧널무덤(1곽), 덧널무덤(2곽), 유사돌무지덧널무덤(3곽) 등 3기가 순차적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1곽은 길이 5.8 m, 너비 3 m, 깊이 0.7 m, 2곽은 길이 5.3 m, 너비 2 m, 깊이 0.3 m 정도로 두 기는 규모가 비슷하고 11자형으로 나란히 설치되어 있었다. 1곽에서는 금귀걸이, 삼엽문대도, 은허리띠 등 장식품이 주로 출토되었고, 2곽에서는 많은 양의 토기와 철기류가 출토되었다.

<6호고분(안쪽)>

지름 20 m 의 비교적 큰 규모의 봉분 2기가 나란히 있다.

6호 고분
낮은 언덕의 남쪽 비탈에 축조한 원분으로서 분구의 크기는 밑둘레의 동서 지름 20 m, 남북 지름 21 m이고 높이는 북쪽에서 2.5 m, 남쪽에서 4 m이다. 분구 안에는 적석목관의 제1묘곽과 장방형의 토광인 제Ⅱ묘곽이 있다. 제1묘곽의 출토유물에는 금제세환귀걸이.은제과대장식.은제교구 등 장신구와 T자형 장병무기.소화두대도.철모.철촉.철착 등 무기류와 꺾쇠가 있고, 또 장경호.단경호.광구평저소호.고배.고배뚜껑 등 토기류와 길이 11 cm나 되는 대퇴골편이 있다. 제Ⅱ묘곽에서는 홍색 갈색의 유리구슬과 장경호.유개호.고배.고배뚜껑 등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안내문, 의성군청, 2017년)

<위쪽에 있는 무덤들>

<비슷한 규모의 봉분들>

약간 경사진 언덕에 분포하고 있다.

<언덕 높은 곳에 있는 큰 규모의 봉분>

<안쪽편에 있는 봉분>

<크고 작은 봉분들>

<언덕 높은 곳 큰 규모의 봉분들>

<금동관, 의성 탑리, 삼국시대, 대구박물관>

삼국시대 신라와 가야의 무덤에서 주로 출토되고 있다. 지방세력이 사용했던 금동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신라와 가야의 왕관
관은 지배계급이 신분적 권위를 보여주는 장신구 가운데 대표적인 위세품이다. 관은 외관과 내관 및 관식으로 구성되고 착용한 사람의 신분에 따라 재질이 달랐다. 신라의 관은 특유의 나뭇가지 모양의 맞가지장식과 사슴뿔모양의 엇가지장식이 대칭으로 세워진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다. 맞가지와 엇가지장식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매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편, 의성 탑리에서 출토된 것과 같이 새 깃털모양의 세움장식도 있다. 내관은 폭이 좁고 윗부분이 둥그스름하게 만들어진 세모꼴이다. 가야의 금관으로는 고령 출토로 전하는 금관 1점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금동관이다. 가야의 관은 풀꽃모양 세움장식이 기본적이지만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통일된 양식도 없다. 이것은 가야연맹체가 하나로 통일되지 못했던 것과도 관계가 있다고 보여진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13년)

<금동제관장식, 의성 탑리, 삼국시대, 대구박물관>

신라의 관장식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나비모양관장식, 의성 탑리, 삼국시대, 대구박물관>

관장식
관장식은 유기질의 모자 앞에 세워 붙이는 장식물이다. 신라의 관장식 중에는 은제품이 가장 많고, 금이나 금동제품은 적은 편이다. 날개를 펴고 나는 새나 나비 모양 장식도 있다. 이처럼 관장식에 새의 날개를 표현한 것은 아마도 무덤 주인을 하늘로 데려가 달라는 기원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대구박물관, 2013년)

<금동신발, 의성 탑리, 삼국시대, 대구박물관>

경주에서 출토된 신발과 비슷하게 생겼다.

<청동방울(뒷쪽), 의성 학미리, 삼국시대, 대구박물관>

< 쇠솥, 의성 학미리, 삼국시대, 대구박물관>

<고리자루칼, 의성 학미리, 삼국시대, 대구박물관>

<재갈, 의성 탑리, 삼국시대, 대구박물관>

의성 금성산 고분군,
경북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탑리리.학미리 일원 이 고분군은 대리리.탑리리.학미리 일원에 소재하며, 전(傳) 조문국(召文國) 경덕왕릉을 비롯한 약 200여 기가 분포하고 있다. 삼한시대의 부족국가인 조문국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에 의하면 조문국은 삼한시대의 소국으로 성립되었으며, 신라 벌휴왕 2년(185호)에 신라의 영향권으로 편입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조문국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하기에는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1960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과 경희대.경북대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는데, 그 결과 앞트기식 내지 굴식돌방무덤과 변형 돌무지덧널무덤이 확인되었다. 출토유물로는 신라토기 가운데 지역색을 강하게 나타내는 ‘의성양식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금동관, 금동관 장식품, 금동제귀걸이 등의 화려한 장신구와 함께 철제 무기류, 마구류 등이 있다. 현재 이 유물들은 국립대구박물관과 경북대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의성군 금성면 일대는 오 랫동안 조문국의 도읍지로 알려져 왔으며, 이 곳에 소재하고 있는 고분들을 통해 의성지역 지방세력과 사회구조 및 의성지역과 신라와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안내문, 의성군청, 2017년).

<출처>

  1. 의성군청
  2. 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3. 대구박물관
  4.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