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에 있는 구마모토성(熊本城)이다. 나고야성, 오사카성과 일본 3대 성(城)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구마모토 도심을 흐르는 사라카오강에서 가까운 나즈막한 구릉 위에 세워졌다. 이 성은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공한 왜군을 이끌었던 가토 기요마사가 구마모토의 번주가 되면서 쌓았다. 성내에는 천수각을 비롯하여 전투용 누각(失藏, 야구라) 49개소, 누각문 18개소, 출입문(櫓門, 야구라몬) 29개소 등의 건축물이 있었다고 한다. 높고 경사졌으며 견고하게 쌓은 성벽과 해자 등으로 난공불락의 성벽으로 불렸다.
가토 기요마사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최측근으로 임진왜란때 큐슈의 나고야성을 비롯하여 울산왜성, 서생포왜성 등 많은 성곽을 구축했으며,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쌓았다는 오사카성 등 여러 성곽을 쌓는데 참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오랜 세월 전쟁과 축성의 경험이 총결집된 것이 이 구마모토성이다. 울산성 전투에서 고생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성내에는 많은 우물이 팠으며, 비상시 식량으로 사용하기 위해 고구마줄기로 다다미를 짜고, 은행을 많이 심어 두었다. 또한 조선의 읍성을 참조하여 성곽 바깥쪽 주민들이 살았던 읍치에도 성벽을 쌓아 방어력을 강화했다. 메이지유신 때 반군세력과 전쟁을 벌인 세이난 전쟁으로 많은 건물들이 소실되었으나 함락되지 않았다.
<일본 구마모토성>
임진왜란 때 참전한 가토 기요마사가 마지막으로 쌓은 성곽으로 그의 전쟁과 축성 경험이 집약된 성곽이다.
<바깥에서 본 구마토성>
<구마모토성 외성>
바깥쪽에 있어 2환(丸) 또는 3환(丸)으로 불린다. 큰 돌을 다듬어 석축을 경사지게 쌓았으며 여장이 있는 우리나라 성곽과는 달리 담장 건물을 올렸다. 성문이나 방어가 취약한 모퉁이에는 누각을 설치하였다. 앞쪽에는 해자를 넓고 깊게 팠다.
<구마모토성 정문에 해당하는 출입문>
‘西大手御門’이라 부른다. 평면형태는 안으로 꺾여 들어간 ‘ㄱ’자형태로 마스가다 고구치라고 부르며 당시 일본 성곽에서 가장 발달한 형식이었다. 이러한 형식은 외부에서 문 내부를 볼 수 없게 만들어 불안감을 주며, 이곳을 통과하는 공격자에게는 집중적으로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구조이다. 중국 성곽의 옹성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에도 조선후기 성문에 볼 수 있는 구조이다.
<안쪽에서 본 모습>
<내부의 또다른 출입문>
<구마모토성 성벽>
큰 돌을 다듬어 석축을 아주 견고하게 쌓았다. 경사가 있는 형태이나 적이 타고 오르기는 쉽지 않다. 모서리 각이 날카롭게 만들었다.
<외성 모퉁이에 세워진 전투용 누각(失藏, 야구라)>
<안쪽에서 본 모습>
누각은 4~5층 규모의 큰 건물로 망루와 방어용 시설을 겸하고 있다.
<구마모토성 본성(혼마루,本丸)>
구마모토성에는 2개의 천수각 건물을 두고 있다.
<본성 출입문>
<출입문 위 누각>
출입문은 석축과 석축 사이에 누각 건물을 걸쳐 놓고 그 아래에 출입문을 설치한 이층문(櫓門, 아라몬)이다, 2층 건물 벽면에 총구를 만들어 유사시 조총사격의 거점으로 사용하였다.
<천수각에서 내려다 보이는 정문 주변>
구마모토성 바깥에는 성하마을이라는 읍치가 있었으며, 임진왜란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읍치에도 읍성형태의 성을 쌓았다.
<모퉁이에 세워진 방어용 누각>
<가토 기요마사가 임진왜란 때 쌓은 울산왜성>
이곳에서 벌어졌던 조.명연합군과 전투에서의 경험이 구마모토성 축성에 많이 반영되어 있다.
<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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