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군 두동면 천전리에 있는 바위그림인 천전리 각석(국보)이다. 반구대 암각화(국보)가 있는 대곡천에서 상류방향으로 2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견된 암각화 유적으로 바위에 각종 동문문양과 동심원을 비롯한 기학학적인 문양이 상부에 새겨져 있다. 반구대 암각화, 고령 알터마을 암각화와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형태의 암각화는 신석기말이나 청동기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농경의 풍요와 다산을 비는 종교적 상징으로 해석되며 북방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하부에는 돛을 단 배, 말, 용 등의 그림과 글씨들이 가는 선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신라 때 새겨진 것으로 기마행렬도, 배가 항해하는 모습 인물 등의 그림들은 당시 생활양식을 연구하는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그림과 함께 800여자 이상의 글씨가 새겨졌던 것으로 추정되며, 약 300여 자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주로 신라 법흥왕때 새겨진 것들이다.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사람들이 새겨놓은 그림으로 당시의 생활모습이나 정신세계 등을 보여주고 있는 유적이다.
<울주 천전리 각석(국보)>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오랜 세월동안 바위에 새겨진 그림들이다. 윗부분이 15도 정도 기울어진 형태의 바위에 각종 그림과 글씨가 새겨져 있다.
<바위에 새겨진 그림들>
윗부분에는 각종 동물문양과 동심원, 나선형, 마름모등 추상적인 문양들이 새겨져 있고 아랫부분에는 돛을 단 배와 말 등의 그림과 글씨가 새겨져 있다.
<안내표지판>
바위에 새겨진 글씨와 그림 등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놓고 있다. 아래쪽에 글씨가 많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바위그림에 새겨진 각종 문양과 그림들>
암각화란 바위위나 큰 절벽, 동굴 안 벽면 등에 사물이나 기호를 쪼기, 새기기, 칠하기 등의 기법으로 그린 그림을 ‘바위그림’, ‘암각화’라고 한다. 바위그림은 후기 구석기시대의 유적에서도 발견되지만 전형적인 사례들은 신석기 및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주로 찾아진다. 바위그림은 대개의 경우, 풍요, 다산 제의의 산물로 이해되고 있다.
– 기하학무늬: 둥근무늬, 우렁무늬, 마름모꼴무늬, 굽은무늬, 가지무늬
– 동물상: 사슴, 호랑이, 파충류, 환상적인 동물, 물고기
– 인물상, 서있는 입상, 인물상 (안내문, 울산시청, 2011년)
<왼쪽편에 새겨진 그림들>
눈으로 인식하기는 쉽지 않지만, 동물그림 등이 많이 새겨진 것으로 보인다.
<왼쪽에서 2번째>
마름모꼴 무늬와 물고기모양 무늬 등이 보인다.
<왼쪽에서 3번째>
마름모꼴무늬, 사람얼굴 등이 보인다.
<그림들>
동심원, 마름모꼴, 타원형 등 다양한 형태의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왼쪽에서 4번째>
<왼쪽에서 5번째>
<아래쪽에 새겨진 그림과 글씨들>
신라 법흥왕 때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며 돛을 단배, 말 등의 그림이 새겨져 있는데 눈으로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
<아래쪽에 새겨진 그림들>
<천전리 각석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길>
<계곡>
이곳은 반구대 암각화가 있는 대곡천에서 상류방향으로 2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림이 새겨진 바위 입구>
<그림이 새겨진 바위>
인공적으로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천전리 각석 앞을 흐르는 대곡천>
반구대 암각화 주변과 마찬가지로 기암괴석이 빼어난 경치를 보여주고 있다.
<맞은편>
<바위 앞을 흐르는 대곡천>
울주 천전리 각석(국보),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산 210
천전리 각석은 1970년 12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견된 암각화 유적으로, 대곡천변에 있는 윗부분이 15도 가량 경사진 형태의 바위에 각종 동물문양과 동심원, 나선형, 음문, 마름모와 추상적인 문양, 역사시대에 새겨진 돛을 단 배, 말과 용 등이 가는 선 그림, 신라시대 명문 등이 새겨져 있다. 청동기시대로 추정되는 추상적인 문양들이 암면의 전면에 걸쳐 분포되어 있으며 이러한 추상적인 도형 그림은 농경의 풍요와 다산을 비는 일종의 종교적 상징으로 해석된다. 신라시대로 추정되는 날카로운 금속도구를 이용하여 그어서 새긴 세선화는, 망를 끌거나 돛을 단 단배, 말 등이 행렬을 이루고 있으며, 용 그림 등도 확인된다. 신라시대 명문은 을사, 기미, 등을 통해 6세기 초의 기록으로 추정되며, 명문은 크게 법흥왕의 동생 사부지갈문왕이 을사년(645년) 6월 18일 새벽에 천전리로 놀러와 새긴 것과 사부지갈문왕 부인 지몰시혜가 남편이 죽자 그리움에 사무쳐 그의 흔척이 남은 천전리 계곡으로 어린 아들(후의 진흥왕)과 함께 찾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천전리 각석은 선시대뿐만 아니라 고대사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유적이다. (안내문, 울산시청, 2011년)
<출처>
- 울산시청
- 문화재청
- 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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