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에 있는 대곡박물관이다. 선사시대 유적지인 반구대 암각화(국보)와 천전리 각석(국보)이 있는 울산 대곡 일대의 유물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이다. 이곳에 여러개의 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된 지역의 유물들을 전시하기 위해서 지은 것으로 보이며, 대곡천을 막아서 만든 대곡댐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지역과 관련된 유물들을 전시해 놓고 있기는 하지만, 역사적인 의미가 깊은 유물은 많지 않고, 주민들이 살아왔던 모습을 보여주는 민속박물관의 성격을 갖고 있다. 야외에는 신라시대 무덤과 도로 유적이 있는데, 수레가 지나다니던 도로 유적은 흔지 않은 유적으로 당시 도로의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다.
대곡은 북으로 경주와 인접하고, 동으로 구미천, 서북으로 삼정천, 서로 고헌산에서 발원한 천전천이 모여 태화강 상류의 한줄기를 이루는 큰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방리.상삼정.하삼정.양서정.구석골 등 크고 작은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경주에서 태화강 하류의 큰 고을이었던 울산과 연결되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세가 아름답고 물이 맑아 선사시대부터 천전리각석, 반구대 암각화와 함께 많은 시인 묵객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울산 대곡박물관>
이곳에 대곡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된 지역 유물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전시 유물은 많지 않으며 민속박물관 성격의 박물관이다.
울산 삼정리 하삼정유적의 무덤과 도로
하삼정유적은 2~7세기 신라의 무덤 구조와 변천 모습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서 경주 인근지역에서 조사된 곳 중에서 규모가 큰 고분군의 하나이다. 하삼정유적에서 발굴된 많은 무덤 가운데 각 시기를 대표하고 당시의 모습이 잘 남아 있는 무덤 8기와 도로 1기를 박물관 뜰에 이전.복원하였다. (안내문, 대곡박물관, 2011년)
<도로 유구>
대곡천 변에 있었던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용하였던 도로의 유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유적의 모습이다.
하삼정 유적에서 발견된 도로는 대곡천 옆의 평탄한 지대에 동서 방향으로 만들어졌다. 도로는 바닥에 잔자갈과 모래성분이 잇는 찰흙을 10 cm 두께로 쌓아 다져서 만들었는데, 남아 있는 도로의 길이는 45 m, 너비 6 m이고, 바닥에는 너비 30 cm 내외의 수레바퀴 흔적의 골이 40~50 cm의 간격으로 결 방향을 따라 나 있다. 이 도로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울산과 경주를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이다. (안내문, 대곡박물관, 2011년)
<수몰지역에서 발견된 삼국시대 돌덧널무덤>
5~6세기 경주의 돌무지덧널무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돌덧널무덤>
15.16.17호 돌덧널무덤
이 돌덧널무덤은 시기 차이를 두면서 3기의 무덤을 서로 연결하여 만든 무덤이다. 동쪽에 있는 17호 무덤이 먼저 만들어졌고, 이어서 16호, 15호 무덤 순으로 만들어져 바깥 모습이 마치 표주박 3개를 잇댄 모습이다. 봉분 가장자리에는 냇돌로 둘레돌을 만들고, 경사가 높은 쪽의 둘레돌 바깥쪽에 반달모양의 도랑을 만들어 빗물이 양쪽으로 흐르게 하였다. 여러 무덤의 봉분 자락을 잇대어서 만든 무덤은 5~6세기대 신라 도읍지인 경주의 돌무지덧널무덤에서 많이 확인되어 신라 중앙의 영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대곡박물관, 2011년)
<조선후기 유학자인 도와 최남복(1759~1814)의 문집>
<간찰>
<도와집 목판>
<한강집, 정구(1543~1620)>
<포은집>
대곡천 유역인 반구대 일원은 많은 학자들이 찾아와 경치를 감상하고 문학을 꽃피웠던 명소였다. 고려말기 친명정책을 주장하다 언양으로 귀양 왔던 포은 정몽주는 이곳을 찾아 외로움을 달래며 시를 짓기도 했다. 정몽주는 이후 오랫동안 울산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회재 이언적은 경상도관찰사로 있으면서 반구대를 찾은 적이 있었고 한강 정구는 대곡천 유역에 머물며 살고 싶어 했다. 언양 유학자들은 1712년(숙종38) 반구대 아래에 정몽주.이언적.정구를 배향하는 반고서원을 창건했다. 반구서원은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안내문, 대곡박물관, 2011년)
<대곡리 계곡 반구대 앞에 있는 반구서원>
정몽주.이언적.정구를 배향하고 있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던 것을 복원한 것이다.
<반구서원 앞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반구대>
<물에 잠겨 있는 반구대 암각화>
<대곡박물관 근처에 있는 천전리각석>
천전리각석(국보 147호)은 선사시대 바위그림과 삼국시대(신라)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새겨진 글에는 신라 진흥왕의 아버지인 사부지갈문왕과 그 안내가 즉위 이전의 진흥왕과 함께 이곳에 놀러 왔다가 돌아갔다는 내용이 있어 이 일대가 신라왕들의 종교적 기능을 수행하는 장소임과 동시에 휴양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부지갈문왕 일해은 525년(법흥왕12)에 이 골짜기에 처음을 찾아와 서석곡이라 이름하였고, 사부지갈문왕이 죽은 후 539년(법흥왕 26)에 와아비와 그 일행이 다시 이곳을 찾았는데 그때마다 바위에 글씨를 새겼다. 천전리각석은 삼국시대 신라의 왕과 귀족의 이름은 물론 관등 이름, 이곳에 행차한 사람 등 당시 지배층의 모습을 생생하게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사료이다. (안내문, 대곡박물관, 2011년)
<출처>
- 대곡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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