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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미술 속 도시] 독일에서 온 우리 미술품

19세기 한양은 상업도시로 급성장하면서 당시 부유층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종로의 시전에서는 서화를 파는 시장이 형성되었다. 19세기 말 개항과 함께 한양을 찾은 서구인들은 이곳에서 조선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기념품을 찾게 되었고, 서구인들 선호했던 풍속화같은 미술품들이 제작되어 판매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구한말 한국에서 활동했던 독일인들이 수집했던 독일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당시 외국인 취향에 맞추어 제작된 미술품들의 경향을 살펴볼 수 있었다.

<백납병(百衲屛), 작가미상, 조선 19세기 말, 비단에 엷은 색, 독일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

여러 그림을 모아 붙여 완성한 것처럼 한 화면에 그린 백납도 병풍이다. 산수, 인물, 화조, 어해, 사군자 등 다양한 화목과 상이한 형태와 크기의 화면으로 변화를 주었다. <딱따구리>, <오린>, <매미> 등 몇몇 그림들은 화보풍으로 그렸는데, 심사정(1707~1769년)이나 백은배(1820~1901년)의 작품과 유사하다. 모두 한 사람의 솜씨로 보이나 그림마다 화풍을 달리 하려 한 흔적이 엿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병풍에 붙어 있는 그림. 전형적인 산수화이다.>

독일에서 온 우리 미술품
10세기 말 개항과 함께 광통교 서화시장에는 외국인을 위한 미술품이 등장하였다. 외국인들에게는 조선 방문을 기념할 수 있는 민화나 풍속화의 인기가 높았다. 독일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은 총 2,565점에 달하는 한국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토대를 마련한 이는 에두아르트 마이어(Eduard Meyer, 1841~1926년)였다. 그는 조선 정부가 임명한 독일주재 조선국 총영사이자, 중국에서 무역업을 하던 사업가였다. 마이어는 1883년 제물포에서 조선 최초의 외국인회사인 세창양행을 설립하였고,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의 요청으로 한국의 미술품을 수집하여 이 박물관에 총 900여 점을 기증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백선도, 작자미상, 조선 19세기 말, 종이에 색, 독일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

일본의 영향을 받은 병풍의 형태이지만 그 내용은 조선의 부채와 그림들이다. 당시 서구인들이 선호했던 일본풍의 병풍으로 그들의 수요에 맞추에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백선도는 화면에 다양한 형태의 부채를 겹쳐서 배치하고 각각의 선면 안에 여러 종류의 화제를 그린 것을 말한다. 부채를 소재로 그린 병풍 형태는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화면에 등장하는 부채는 조선의 전통 부채이며, 부채 속 그림들은 모두 당시 유행했던 소재이다.이렇듯 새롭고 장식미가 돋보이는 백선도 병풍은 외국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백선도 초본, 작가미상, 조선 19세기 말, 종이에 먹>

백석도 병풍을 제작하기 위한 밑그림으로 국내에 남아 있는 것이다. 비슷한 병풍이 많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얇은 먹선으로 그린 백선도의 초본으로 각 부채면에는 흑, 적 등 어떤 색이 칠해지는지 적혀 있고, 바탕의 숫자는 병풍의 화면 순서를 정한 흔적인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백선도 초본은 독일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 소장 <백선도>와 일치하여 이 초본을 본으로 하여 그림을 그렸음을 알 수 있다. 백선도 제작에 이러한 초본을 적극 활용하여 정교하고 사실적인 묘사와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구성과 배치가 가능하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병풍 속 그림과 초본>

 <병풍 속 그림과 초본>

< 병풍 속 그림과 초본>

< 병풍 속 그림과 초본.>

<병풍 속 그림과 초본.>

<병풍 속 그림과 초본.>

<철제 화로, 19세기 ~ 1907년, 독일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

서구인의 기호에 맞추어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뚜껑과 몸체, 내부 용기까지 갖춘 화로이다. 대부분의 무늬는 은사로 표현했지만, 뚜껑의 연꽃 등 금색으로 보이는 무늬는 은사에 금도금하였다. 그 외 노랗게 보이는 부분은 황동으로 만들었는데, 받침대는 황동에 금도금을 하였다. 주로 길상이나 장식 무늬를 표현했던 칠제은입사 공예품들과 달리 몸체의 네 면에 ‘월하독작’과 같은 시의도(詩意圖)를 나타낸 점이 독특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죽제 양각 학 잉어무늬 지통, 조선 19세기, 독일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

서구인의 기호에 맞추어 화려하게 만들어졌다.

굵은 대나무 통 2개를 반으로 갈라 서로 연결하여 꽃모양으로 제작한 지통이다. 몸체에는 물위로 뛰어 오르는 잉어와 학을 표현하고 뚜껑에는 서각보무늬로 장식하였다. 출세를 뜻하는 물 위로 뛰어 오르는 잉어와 선비의 고고한 성품을 상징하는 학, 다복을 상징하는 서각 등 화려한 길상 무늬들은 외국인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기산풍속도첩 중 바둑두기, 김준근, 조선 19세기 말, 비단에 색, 독일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

개항장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그림을 그려 판매했던 김준근이 그린 풍속화이다. 기존의 풍속화와는 달리 화려한 색감으로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오른쪽 윗부분에 한글로 제목이 적혀 있다.

<소리꾼이 창을 하는 장면>


<장기판.>


<소녀들을 대상으로 창을 가르치는 모습으로 보인다.>


<갓을 만드는 공방.>


<남사당패가 놀이하는 장면.>


<다듬질하는 장면>


<광대들의 줄타기.>

김준근은 개항장에서 풍속화를 그려 외국인에게 판매했던 화가이다. 해외 각국에 소장된 그의 작품만 1,500여 점이 넘을 정도로 폭넓게 유통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전 시기 유명한 풍속화들을 임모하면서도 외국인이 흥미로워할 만한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여 자신만의 양식을 구축하였다. 이러한 풍속화는 20세기 초 무렵 서구의 민족학박물관들이 수집하기에 매우 적절한 주제였기 때문에 더욱 각광받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