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tstory Traveling

Since 2008, Korea & World by younghwan

[중앙박물관특별전, 미술 속 도시] 취향의 과시

조선후기 18세기 이후 상업의 발달, 농업생산력의 증가, 소작제에 의한 토지집중화 등으로 부를 축적하게된 중.상류층은 자신의 경제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풍조가 나타났다. 특히, 한양에서는 새로운 주도층으로 자리잡았던 중인층들은 과거와는 다른 문화적 감성을 보여주었다. 이들을 대상으로 미술시장이 형성되어 활발하게 거래되었다. 전시에서는 이들 계층이 선호했던 고급스러우면서 형식적인 면을 보이는 그림들과 외국에서 수입된 물품, 왕실 도자기를 만들던 분원에서 제작되어 민간에 유통되었던 청화백자 도자기들을 전시하고 있다. 

<삼국지연의도, 작가미상, 조선 19세기, 비단에 색. 조선후기>

인쇄술의 발달과 한글 번역본의 등장으로 민간에까지 널리 유행한 삼국지연의 주요 장면을 그린 병풍이다. 예술적인 취향보다는 오락적이며 과시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미술품이다.

취향의 과시
18세기 이후 도시인들은 호사취미를 가지고 화려하고 세련된 취향을 과시하기 시작합니다. 조정에서는 여전히 성리학적 자기절제와 검박한 문화를 지향했지만, 개인의 취향을 드러내는 취미와 기호품의 유행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평범함을 거부하고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것,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동경은 더욱 커져 갔습니다. 여기에 외국에서 들어온 진귀한 문물들은 이런 도시 사람들의 소유욕을 더욱 자극하였습니다. 조선후기에 등장한 책가도는 보여주기 위한 그림, 과시의 그림이었습니다. 시대가 내려갈수록 책의 비중이 감소하고 진귀한 문방기물과 장식품이 늘어나며 화려해지는 것은 책가에서 문방기물로 그 성격이 변화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1폭 유비.관우.장비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도원결의를 맺는 장면,  2폭 유비가 제갈량을 얻기 위해 세번 초막을 찾아가는 장면>


<3폭 유비가 사마휘를 만나는 장면, 4폭 봉의정에서 여포가 초선을 희롱하는 장면>


<5폭 술을 데우며 영웅을 논하는 장면,  6폭 관우가 다섯 관문을 지나며 장수들을 베는 장면>


<7폭 제갈량이 유생들과 설전을 벌이는 장면, 8폭 장비가 엄안의 의기에 감동하여 풀어 주는 장면>


<9폭 장판파에서 조운이 어린 주인을 구하는 장면, 10폭 유비가 한중왕 자리에 오르는 장면>

일찍이 조선에 유입된 중국 소설인 「삼국지연의」는 18세기 이후 인쇄술이 발달하고 한글 번역본이 등장하며 크게 유행하였다. 책에는 소설 내용의 이해를 돕는 삽화들이 수록되었고, 이를 토대로 <삼국지연의도>가 성행하였다. 총 10폭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유비, 제갈량, 관우, 장비 등 4사람의 이야기 위주이나 유비가 강조된 것이 특징이다. 이는 다양한 이야기 중에 취향에 맞게 장면을 취사선택하여 그렸음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화조, 작가미상, 조선 19세기, 지직.>

예술적인 면보다는 장식적인 성격이 강한 형식적인 주제의 그림이다.

지직화(紙織畵)는 일반적인 회화와 달리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이를 직조하여 직물의 구조로 표현한 회화이다. 가늘고 긴 여러 종류의 색지로 짜서 부분적으로 선과 채색을 추가하여 그림을 완성한다. 이처럼 지직화는 제작 특성상 장식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화려한 채색이 가미된 화조영모화류와 같은 장식용으로 주로 제작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괴석죽란(怪石竹欄), 작가 미상, 조선 19세기, 종이에 낙화>

낙화는 종이, 나무, 비단, 가죽 등의 표면을 인두로 지져서 그린 것을 말한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 중기에 이미 낙화가 제작되었으며, 19세기 무렵 낙화의 기법이 체계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에 달군 인두로 그려야하는 낙화의 제작 특성을 살려, 먹에서 표현하는 농담과 발묵을 인두의 면으로 효과적으로 재현할 수 있었다. 인두를 속도감 있게 움직이거나 강약을 두어 고목을 표현하고, 갈대와 대나무 등의 잎을 효과적으로 묘사하였다.


<강남춘필의도, 김광국, 조선 1796년, 종이에엷은 색>

구한말 부유한 의관 집안의 김광국이 직접 그린 그림이다. 서화 수집뿐 아니라 직접 그린 그림에서 그의 예술적 소양을 찾아볼 수 있다.

 <강남춘필의도, 김광국, 조선 1796년, 종이에엷은 색>

도시의 수장가, 김광국(1727~1797년)과 <석농화원>
조선후기 대표적인 서화 수장가였던 김광국은 부유한 의관 가문 출신으로, 두차례 연행에 참가하여 중국의 문물을 체험하고 약재무역으로 부를 축적했던 인물이다. 그는 10대의 이른 나이부터 서화에 관심을 갖고 수집을 시작한 이래, 일생동안 회화 감상과 수십 활동에 심취했다. 그 결과 일생동안 수집한 역대 회화 작품과 화평을 엮어 <석농화원>이라는 방대한 서화첩으로 집대성해냈다. 여기에는 조선의 역대 주요 화가의 작품뿐 아니라 중국, 일본, 그리고 서양 동판화까지 포함되어 있을 만큼 방대한 수집 양을 자랑한다. 또한 작품마다 당대 문인들의 화평이 실려 있어 조선시대 회화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현재는 낱폭으로 흩어져 있는데 지금까지 확인된 작품만 70점이 넘고 각각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수선화, 신사열, 조선 18세기, 종이에 엷은 색, 선문대학교박물관.>

그림 옆에 당대 문인들의 화평이 적혀 있다.

<묵란, 심상규(1766~1838년), 조선 18세기, 종이에 먹, 선문대학교박물관>

<고목군조, 박유성(1745~1816년 이후), 조선 1786년, 종이에 엷은 색, 선문대학교박물관>

<술타니에 풍경, 페터르 스헹크, 네덜란드 1700~1705년경, 종이에 동판인쇄, 개인소장>

<미인도, 작가미상, 일본 에도시대 18세기, 종이에 색, 개인소장>

<낙타, 김부귀, 중국 청 18세기, 종이에 색, 개인 소장>

미술시장과 유통
한양은 상업도시로 급성장하여 18세기 후반에 이르면 많은 사람들이 상업에 종사하게 됩니다. 이러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술의 새로운 수요층인 중인과 신흥 상인들은 활발하게 미술시장을 형성하였습니다. 종로의 시전에 미술시장이 등장한 것도 이 때입니다. 서화사에서는 그림과 글씨를 팔았고, 사기전에서는 분원에서 대량생산한 청화백자의 인기가 좋았습니다. 또한 19세기 말 개항으로 외국인들이 광통교 일대로 몰려들어 국제 상업의 근거지가 되자, 외국인을 위해 상품화된 미술품이 제작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호작도, 작가미상, 조선 19세기, 종이에 색, 이홍근 기증>

시장에서 유통되었던 민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민화의 소재로 자주 그려진 까치와 호랑이 그림이다. 호랑이와 까치, 소나무로 구성되는데, 까치는 기쁜 소식을 전해 준다는 의미이다. 소나무는 장수를 기원하는 길상을 상징하는 동시에 신선이 까치를 시켜 호랑이에게 신탁을 전했다는 이야기를 뜻하기도 한다. 호작도는 매년 정초에 쓰이는 세화로 애호되었는데, 대문 앞을 지키며 집안의 액을 막아 준다는 뜻을 담고 있어 서화시장에서 인기가 높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서간지와 시전지. 시전지판, 조선 19~20세기>

시전지는 시나 편지를 쓰는 종이를 일컫는 것으로, 대량 생산을 위해 판화로 찍어낸 시전지판이 함께 전한다. 다양한 색상과 문양의 시전지는 선물용으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19세기 후반 중국에서 수입된 시전지는 화려할뿐만 아니라 생산된 곳의 이름이나 화가의 낙관과 함께 수준 높은 그림이 인쇄되어있어 더욱 인기를 끌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문왕방정, 중국 청 18세기, 용주사 효행박물관>

『박고도(博古圖)』에 수록된 ‘문왕방정’을 청나라 때 모방하여 제작한 향로로, 정조가 화성 용주사에 내린 하사품으로 알려졌다. 조선 후기 문인들의 문화예술 취향을 잘 보여주는 물품이 문방고동 기물이다. 이처럼 고동기를 모방하여 제작한 향로와 같은 물건들은 수집과 완상의 대상이 되어 애오가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자명종, 중국 청,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호박 넝쿨 위에 새가 않아 있는 정교한 도금 장식을 부착한 자명종이다. 문자판 주변은 적색과 청색의 유리알을 돌려 꾸몄으며, 수가 놓인 붉은 비단을 붙이고 금속장식을 부착하여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자명종은 집 한 채 값이 드는 고가의 기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유한 도시인들에게 새로운 완상용 기물로 애호되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수입된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조선의 공인들도 자명종을 수리하거나 복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박고도, 왕보(1079~1126년) 편, 중국 청 1752년 간행, 종이에 인쇄, 서울대 규장각>

중국 상대부터 당대까지의 청동기 그림 839건을 수록한 책으로, 송대 선화(1109~1125년) 연간에 완성되었다. 전시된 책은 훗날 청 건륭 17년(1752)에 간행된 황성의 역정당 중수 보고당본이다. 박고도는 고동기에 흥미를 가졌던 조선 후기 문인들에게수집과 감정, 감상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책으로 널리 읽혔따. 규장각 장서인것으로 미루어 왕실에서 최신 정보들을 수집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나전 칠 연상, 19~20세기 초>

<나전 칠 빗첩, 20세기 초, 김혜옥 기증>

<나전 칠 경대, 20세기 초, 김혜옥 기증>

<나전 대모 태극무늬 함, 19~20세기 초>

<나전 칠 쌍봉 매화무늬 옷상자, 19 ~ 20세기 초>

<문갑, 조선 19세기, 김종학 기증>

<백자 양각 매화무늬 향로, 조선 18~19세기, 죽제 양각 산수무늬 필통, 중국 명 ~ 청, 죽제 매화무늬 잔, 중국 청>

<안경과 안경집, 조선 19세기>


<윤동섬 초상, 작가미상, 조선 18세기, 비단에 색, 개인소장>

조선후기의 문신 윤동섬(1710~1795)의 초상화로, 그는 뛰어난 서예가이자, 탑본가, 서화 수집가였다. 서안 위에는 서책과 향로, 벼루, 다양한 모양의 붓들이 꽂힌 필통을 배열했다. 서안의 나뭇결, 책표지, 꽃모양 장식의 향로, 무늬가 조각된 벼루, 산수문이 선명한 녹색 필통 등 각 기물의 화려하고 섬세한 세부 모양을 꼼꼼히 묘사하였다. 여기에 청색, 황색, 녹색 등의 색채는 주인공의 세련된 호사 취미를 드러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이하응 초상, 이한철.유숙, 조선 1869년, 비단에 색, 서울역사박물관, 보물>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50세 때 초상으로, 와룡관 학창의본이다. 주인공의 서탁 위에는 자명종, 벼루, 전갑, 인장과 인주합, 안경, 타구 등이, 협탁에는 네모난 향로와 시저병이 놓여 있다. 이 기물들은 모두 당시 문인들에게 애호되던 것이다. 자명종이나 청 황실에서 사용했다는 벼루 송화석연, ‘척사검’이라는 글자가 입사된 칼 등의 진귀한 물건은 대원군의 권위와 권력을 상징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책가도, 작가미상, 조선 18~19세기, 종이에 색, 개인 소장>

나지막한 높이의 작은 병풍으로 꾸민 책가도이다. 책가를 왼쪽으로 틀어 옆으로 기물이 놓이도록 표현하였는데, 뒷벽에 붙은 듯한 표현 등 어색한 묘사가 눈에 띈다. 배열된 기물은 종류가 다양하고 추시계나 화려한 검과 같은 독특한 물건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책가도가 대중화되면서 감각적으로 변모하는 양상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책가도, 작가미상, 조선 18~19세기, 종이에 색, 개인 소장>

양끝에 팔각 격자로 된 창을 두고, 가운데 가로로 길게 낸 팔각 창 안에 책가를 그린 독특한 작품이다. 책가에 배열된 책과 기물이 비교적 질서정연한 좌우대칭을 이루도록 구성하였다. 기이한 모양의 장식품과 값비싼 고동기, 화려한 문양의 도자기 등은 대부분 수입품으로 부유층의 호사취미를 드러낸다. 책가의 구성과 기물의 묘사가 완숙하고 탁월하여, 고급스럽고 세련된 공간을 실제인 듯 표현하려는 의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책가도, 전 장한종, 조선 19세기, 종이에 책, 경기도 박물관>

열린 장만 안으로 다양한 기물과 책이 놓인 책가가 그려져 있다. 책가 맨 아랫단에는 나뭇결 무늬에 장식이 달린 두껍달이 문짝이 있고, 오른쪽의 문짝 하나는 열어 두어 변화를 주었다. 책가에 놓인 기물들은 진귀한 고급 문방품들이 주를 이루는데, 특히 입사 기법의 담배합이 그려진 것이 귀한 예이다.가장 왼쪽 책가에 ‘장한종인’이라 새긴 인장이 놓여 있어 화원 장한종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호피장막도, 작가미상, 조선 19세기, 종이에 색, 개인 소장>

호피 장막을 드리운 서실 안쪽의 공간 일부를 살짝 드러내었다. 하나의 책가가 아니라 서탁과 서운, 책가가 여럿 놓여 있고, 진귀한 기물들과 문방구, 옷가지와 담뱃대, 촛대 등 생활용품, 놀이도구까지 잡다한 물건들이 책과 함께 뒤섞여 있다. 읽다 만 책과 안경은 조금 전까지 주인이 있었던 듯한 느낌을 준다. 장막을 아주 조금 걷었을 뿐인데, 그 안에는 세상의 온갖 물화가 번다하게 널려 있다. 조선 후기 도시의 부와 물질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욕망을 포착한 감각적인 작품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미술, 도시의 감성을 펼치다
호화로운 사치품, 높은 안목의 완상품, 고급 취미를 위한 물품 등 풍부하고 세련된 문물은 화려한 도시의 취향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이를 욕망하고 소유하고 과시하려는 풍조도 나타났습니다. 이전에 주로 권력자들이 이러한 것들의 소비층이었지만, 조선후기에 들면서 경제가 더욱 발전하고 시장이 형성되자 경제력이 있으면 누구나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도시의 환경이 달라지면서 미술이 지향하는 내용과 형식도 크게 변화했습니다. 기존의 미술 체계를 바꾸려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미술가들은 창작 주체로서의 자의식을 어느때보다 강하게 분출했습니다. 과거의 이념과 질서에 얽매이지 않는 감각적이며 파격적인 감성들이 솟아 났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