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tstory Traveling

Since 2008, Korea & World by younghwan

합천 대야성, 삼국시대 전략적 요충지에 있었던 성

경남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에 있는 대야성(大耶城)이다. 호남지방에서 경주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어 삼국시대와 후삼국시대 전략적 요충지로 큰 전투가 있었던 곳이다. 백제 의자왕이 이곳을 함락하여 신라에 큰 타격을 주었다. 삼국통일 이후 군사적인 중요성이 없어졌다가 후삼국시대 견훤이 이곳을 거쳐 경주로 입성했다. 합천지역에는 대야성을 중심으로 신라가 쌓았던 크고 작은 산성이 많이 남아 있으며 군사적 충돌이 빈번했었다.

대야성은 거창군 수도산에서 발원하여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황강변 나즈막한 매봉산(해발 90 m)에 흙과 돌로 쌓은 성이다. 성벽이 길이는 300 m 정도인데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성벽 일부와 건물터 등이 확인되었으나 그 원형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지금은 합천군 소재지에 있는 작은 공원 역할을 하고 있다. 합천지역에는 악견산성, 백마산성, 전초팔성 등 삼국시대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산성들이 여러곳 남아 있다.

<합천 대야성 전경>

황강변에 있는 나즈막한 언덕에 성을 쌓았다. 이곳은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간 지역 패권 쟁탈을 위한 전투가 많았던 전략적 요충지이다.

<대야성 앞을 흐르는 황강>

<대야성 입구에 기념물로 세운 성문>

실제 대야성 성문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단순한 기념물이다.

<대야성 입구에 있는 합천을 기념하는 조형물>

<대야성으로 오르는 계단>

<대야성 서쪽편 정상부>

<공원 산책로>

<내부 산책로>

<대야성 동쪽 언덕으로 오르는 길>

<주변에 성벽처럼 보이는 석축>

대야성 성벽인지 설명이 없다.

<대야성 주변 산성>

대야성은 함양에서 창녕, 청도를 거쳐 경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는 이곳을 방어하기 위해 주위에 많은 산성을 쌓았다. 삼국통일 이후 전략적 의미는 없어졌으나 후백제 견훤이 이곳을 통해 신라 수도 경주를 공략했다.

합천 대야성, 경남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
이 성은 신라 서부지역의 요새로서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가, 그리고 통일신라 말기에는 신라와 후백제 및 고려가 각축을 벌였던 대표적인 접전지역이었다. 642년(신라 선덕여왕 11)에는 백제의 침공으로 함락되어, 성주인 도덕 김품석과 그 부인 (무열왕 김춘추의 딸)이 죽고 신라인 1천여 명이 포로가 된 곳이다. 또한 통일신라 말기인 920년에는 견훤이 이끄는 후백제군이 여러 차례에 걸쳐 이 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으며, 그 뒤 고려가 점령하였다가 다시 후백제에게 넘어가는 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 성은 936년에 최종적으로 고려가 차지하였다. 이 성은 강변을 이용해 해발 90 m의 취적산 정상 부분에 흙과 돌로 쌓아 올렸다. 지금은 다 허물어지고, 약 30 m 정도의 성벽이 남아 있을 뿐이다. 성의 동쪽 산기슭에는 642년에 이 성이 백제에 함락 당할 때 끝까지 성을 지키다 전사한 신라 장수 죽죽을 기리는 유적비가 있다. (안내문, 합천군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합천군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