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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척화비, 구한말 서양세력을 경계하고자 전국 각지에 세운 비석

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 만옥정공원 내에 있는 척화비(斥和碑)이다. 구한말 대원군이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겪으면서 서양세력을 경계하고자 전국 각지에 세운 척화비 중 하나이다. 창녕읍내 다른 곳에 있던 것을 해방 이후 이곳으로 옮겨 왔다. 이 비석을 세운지 백년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전국에 남아 있는 척화비가 많지 않아 역사적 의미는 큰 비석이다. 척화비에는 ”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곧 화친하게되니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일이다.)”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창녕 만옥정 공원으로 옮겨져 있는 창녕 척화비>

당시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웠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훼손되어 지금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비석에 새겨진 글자>

<창녕 척화비가 있는 만옥정공원>

신라 진흥왕이 창녕지역을 다녀간 후 세운 기념비인 신라 진흥왕 척경비(국보)가 있다.

창녕 척화비, 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
1866년(고종 3) 일어난 병인양요에서 프랑스군을, 1871년(고종 8) 신미양요에서 미군을 물리친 정부가 외국과의 화친을 경고하기 위하여 1871년 4월 전국 각지에 세운 비석 중의 하나이다.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곧 화친하게되니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일이다.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라는 내용이 전면에 큰 글씨로, “만년에 걸친 자손들에게 경계하노니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운다”라는 내용이 좌측에 작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 원래 창녕읍 교하리에 있던 것이 광복 후 만옥정 공원으로 옮겨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창녕군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창녕군청, 2010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