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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가야산 해인사 일원(명승)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에 있는 가야산 해인사 일원(명승)이다. 가야산(伽倻山)은 해발 1,430 m의 높은 산으로 경상남도와 경상북도의 경계가 되고 있으며, 법보종찰인 해인사가 자리잡고 있다. 해인사 앞을 흐르는 홍류동계곡은 아름다운 기암괴석과 다양한 나무들이 10여나 이어지고 있으며, 곳곳에 암자와 절터 등이 남아 있다.

해인사 주변에는 통일신라 말 최치원이 머물렀던 농산정, 학사대 등의 유적과 사명대사가 머물다 입적한 홍제암 등 유서깊은 곳이 많으며, 현대불교에서 큰 업적을 남긴 성철도 해인사에서 입적했다. 해인사 경내에는 고려팔만대장경(국보)과 목판을 보관하는 장경판전(국보)를 비롯하여 많은 문화재들이 남아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가야사 해인사 앞을 흐르는 홍류동계곡>

해인사 앞을 지나 10여 리에 이르는 긴 계곡으로 기암괴석과 주변 숲의 경치가 빼어나다.

<겨울철 눈이 내린 홍류동계곡>

<해인사 입구 주차장에서 해인사로 오르는 길>

약 1 km에 이르는 울창한 숲길이다.

<겨울철 눈이 내린 숲길>

<홍류동 계곡 옆에 마련된 탐방로>

<길 중간에 볼 수 있는 공덕비>

한국전쟁 당시 미군을 설득해 해인사 폭격을 중단시켜 팔만대장경을 보전할 수 있게 한 김영환 공군 장군을 기리는 공덕비이다.

<해인사 비석거리.부도전>

현대불교를 이끈 성철을 비롯하여 해인사가 배출한 고승들의 승탑이 이곳에 있다.

비석거리.부도전
해인사 입구 비석거리에는 해인사 사적비를 비롯한 20여 기의 공덕비들이 안치되어 있다. 비석거리 뒤편 언덕에는 해인사의 선풍을 크게 일으킨 자운(1911~1992), 성철(1912~1993), 혜암(1920~2001), 일타(1929~1999) 스님의 행적비와 사리탑을 모셔 놓은 부도전이 있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안내문이 있는 해인사 입구>

원경왕사비(보물), 길상탑(보물)를 비롯하여 비석들이 세워져 있는데,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

<해인사 일원 안내도>

해인사를 비롯하여 많은 암자들이 주변에 배치되어 있어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수량도량임을 알 수 있다.

<합천 반야사지 원경왕사비(보물)>

인근 반야사 절터에 있던 것을 옮겨 온 것이다.

<해인사 길상탑(보물)>

통일신라 말 혼란기에 해인사를 지키기 위해 죽은 승려와 주민들을 위해서 세운 석탑이다. 탑에 대한 기록을 새겨 놓은 최치원이 쓴 탑지를 비롯하여 오대산사탑지, 백성산사탑지가 157개의 소탑과 함께 출토되었다.

<길상탑 옆에 세워져 있는 비석들>

<해인사 입구>

이 사찰의 오랜 내력을 말해주듯 울창한 숲으로 덮혀 있다.

<해인사 입구에 있는 작은 연못>

가야 김수로왕비인 허황후와 관련된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영지 
가야산의 정사이 이 연못에 비친다고 해서 영지라고 부른다. 가락국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황후가 장유화상을 따라 가야산 칠불봉으로 출가한 일곱 왕자를 그리워하여 가야산을 찾았으나 산에 오를 수 없어 아들들의 그림자라도 보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였다. 그러자 정진 중인 왕자들의 모습이 이 연못에 비쳤다고 전한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0년)

<사찰 입구임을 알려주는 당간지주>

<해인사 일주문>

<일주문을 지나 해인사 경내로 들어가는 길>

하늘로 솟아오는 울창한 고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숲길에 있는 고사목>

해인사를 창건할 때 심었다고 전해지는 고목이다. 지금은 고사목이 되어 그 흔적만 남아 있다.

고사목
이 나무는 신라 제40대 애장왕 3년(302) 순옹과 이정 두 스님의 기도로 애장왕후의 난치병이 완치되자 왕이 이 은혜에 감사하여 두 스님이 수행하던 자리에 해인사를 창건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때 이를 기념해 식수한 나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 느티나무는 1,200여년의 강구한 세월동안 해인사와 더불어 성장하여 오다가 1915년에 수명을 다해 고사되고, 지금은 둥치 남아 해인사의 장구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8년)

<해인사 경내>

사찰 출입문인 봉황문과 해탈문을 들어서면 현대적인 건물들로 둘러싸인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 강당건물인 구광루를 중심으로 요사채 건물들이 있으며, 마당에는 해인도를 구현해 놓고 있다.

<승려들이 수행하는 공간인 요사채>

<주불전인 대적광전>

구광루를 지나면 대적광전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선다. 마당에는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고 양쪽에 요사채가 있다. 마당보다 높게 축대를 쌓아 조성한 공간에는 주불전인 대적광전을 비롯하여 비로전, 응진전, 명부전 같은 불전이 배치되어 있으며, 바깥쪽으로 승려들의 수행공간인 크고 작은 요사채들이 자리잡고 있다.

<대적광전에서 내려다 보이는 중심영역 마당>

<대적광전을 지나 고려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장경판전으로 들어가는 문>

<장경판전(국보)>

장경판전(국보)이 있는 법보공간은 해인사에서도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해인사 경내 여러 전각들은 여러 차례 화재로 소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장경판전은 피해를 입지 않고 오늘날까지 팔만대장경을 지켜오고 있다.

<장경판전 내부>

일년 중 춘분과 추분 부근 오후 3시경에만 볼 수 있는 장면으로 앞쪽 출입문 기와장과 함께 연꽃모양의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장경판전에 보관중인 고려팔만대장경 목판(국보)>


<독성각 옆에 있는 학사대>

통일신라 말 최치원이 머물렀던 곳이라 전해진다. 전나무는 그가 꽂아 두었던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홍제암>

해인사 입구에서 조금 들어가면 사명대사가 머물다 입적했던 홍제암을 볼 수 있다.

<홍제암(弘濟庵, 보물)>

건물은 사명대사 사후 영정을 모시기 위해 현 건물이 세워졌는데, 불상을 모시는 불전과 수행공간 등이 한건물에 같이 있다.

<홍제암 옆에 있는 사명대사 석장비(보물)>

사명대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으로 소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이 비문을 지었다. 비문은 문장이 빼어나며 사명대사의 행적을 비교적 소상히 기록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합천 경찰서장이 네조각으로 깨뜨렸던 것을 수리하여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월광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경남 합천군 야로면 월광리 월광사지 절터에 남아 있는 동.서삼층석탑(보물)이다. 월광사는 해인사를 중심으로 가야산에 세워졌던 여러 사찰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가야산은 우리나라의 불교 전통이 가꿔온 성지로서 예로부터 이름난 명산이자 영산이다. 가야산의 ‘가야(gaya)’는 최상의’라는 뜻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성도하신 붓다가야에서 따왔다고도 하고, 옛날 가야국이 있던 곳의 산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가야산은 서남쪽 자락에 해인사를 품고 있으며, 곳곳에 암자와 석물, 옛 사찰 터와 고적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 남조시대의 지공스님(418~514)은 해동의 가야산에 대가람이 세워져 불법이 번창하리라는 예언을 했다고 전한다. 그로부터 약 300년 후인 서기 802년에 해인사가 창건되었다. 홍류동 계곡은 가야산 주봉인 상왕봉과 남산 제일봉(일명 매화산) 사이를 굽이쳐 흐르면서 주변의 기암괴석, 송림 등과 어울려 사시사철 절경을 이룬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출처>

  1.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