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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옛 중국인의 생활과 공예품] 당나라 호풍의 유행

고대 이래 중국인의 복식은 품이 넓은 상의와 치마로 구성된 형태였다. 전국시대 이래로 말이 끄는 전차의 역할이 줄어들고 말을 타고 싸우는 기마풍습이 정착되면서 말을 타기 편리한 북방 유목민들의 복식이 널리 사용되었다. 전시에만 사용되는 호복이라 불렸던 복식은 남북조시대를 거치면서 일상생활은 물론 공식행사에 입는 조복에도 사용되었다. 이런 복식은 당나라를 거쳐 한반도로 전해지면서 통일신라 이래 전통복식으로 자리잡으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조시대 이후 무덤에 부장품으로 묻힌 인형인 도용에서 당시 사람들이 입었던 복식을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문관과 무사 도용, 북조>

죽은 자를 받들어 모시기 위하여 무덤에 부장되는 문관과 무사 복장의 도용이다. 북조의 허베이성 징현 봉씨묘의 도용과 같은 형식으로 모두 호복 차림이다. 호복은 전국시대에 말 위에서 활을 쏘는 궁술과 함께 기마에 편한 복장이 북방 유목문화로부터 유입된 것으로, 바지와 길이가 짧은 상의를 의미한다. 북조에서는 이러한 고습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유행하여 평상복과 조복으로 입을 만큼 정착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호복입은 인물 도용, 당>


<호복입은 관리 도용, 당>

원령포(圓領袍)에 복두를 쓴 인물 도용이다. 둥근 깃의 옷은 남북조시대 이래로 중국의 복식에 도입된 선비족의 의복 형식이다. 원령포는 수대에 관리들이 왕의 행차 수행 때 입는 융의가 되었다.원령포는 당대가 되면 그 편리성 때문에 천자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상복으로 입었으며 조복으로도 착용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호인 도용, 당>


<호인 도용, 당>


<호인 도용, 당>


<갑옷입은 무사 도용, 당, 허난성 뤄양 출토>

<둥근 깃의 원령포를 입고 말타고 사냥하는 장면, 장훤, 곽국부인 유춘도, 랴오닝성박물관>

짧은 상의와 바지의 도입과 확산
중국인은 전통적으로 품이 넓은 상의와 치마로 이루어진 의복을 입었다. 전국시대에 유목민족의 기마풍습이 들어오면서 말 타기에 편한 옷, 즉 소매가 좁고 길이가 짧은 상의 ‘습褶’과 바지 ‘고袴’를 한족이 입기 시작했다. 이처럼 ‘고습’으로 대표되는 중국 북방과 서방 이민족의 복식을 ‘호복胡服’이라고 한다. 호복은 활동하기에 편하여 한족 사회에서 점차 공식 복장으로서 자리 잡았다. 전한대에는 근신(近信)과 무사가 고습을 입었고, 진대(264~419년)에는 천자를 비롯해 문무백관이 비상사태 때 입는 계엄복이 되었다. 이후 남조에서는 관리가 사냥나갈 때, 왕의 행차 수행 때 입는 융복으로 고습을 착용했다. 한편 북조에서는 고습이 더욱 성행하여 일상복은 물론 조복으로도 입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호복의 여인, 당, 신장 투루판 이스타나고분>


<매를 든 남장 여인 도용, 당>

손에 매를 들고 사냥하고 있는 인물이다. 북방민족의 옷인 호복을 입고 복두를 쓴 남장 여성이다. 매사냥은 당대 여성들의 대표적인 야외 오락이었다. 옷깃을 양쪽으로 열어젖힌 번령포를 입었고 허리에는 여러 물품을 드리운 첩섭대를 둘렀는데 이는 돌궐의 복제에서 유래된 것이다. 외래문화에 개방적이었던 당대에는 호풍이 이국 양식의 대명사로 여겨져 여성을 포함하여 민간에서 매우 유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말탄 여인 도용, 당, 허난성 뤄양 출토,>


<말탄 여인 도용, 7~8세기, 당, 신장 투루판 출토>

투루판 무덤에서 출토된 점토제 기마여인상이다. 말 위의 여인은 당대의 전형적인 여인상을 보여주는데, 양 볼이 도톰한 얼굴에 이국품의 화장법으로 단장한 모습이다. 이마에는 꽃무늬를 장식하는 화전을 붙였고 눈썹을 반달 모양으로 가늘고도 길게 까맣게 그렸다. 광대뼈 바깥 쪽에 초승달 모양으로 사홍을 그려 넣었고 입술에는 당대에 유행했더너 자단색, 즉 자홍색으로 ‘앵두같이 작은 입’으로 붉은 연지를 발랐다. 『구당서』 여복지에는 당 초기에 궁정부인이 가리개를 드리운 모자를 쓰고 말을 타는 풍습이 크게 유행하였음을 전하고 있다. 이 기마인물용은 머리부분에 긁힌 자국이 많은 것으로 보아 원래는 모자를 쓰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여인 도용, 당>

당나라 여인들의 호풍(胡風)
‘호胡’는 중국의 북방과 서방의 이민족을 말하며, ‘호풍’은 이러한 이민족이 풍습을 가리킨다. 호풍은 특히 당대에 크게 유행하였다. 왕실부터 민간에까지 호무(胡舞)를 즐기게 되면서, 당대 여인들 사이에서는 호녀(胡女)가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호풍의 복장과 화장을 즐겨 모방했다. 또한 이민족의 풍속에 영향을 받아 여인들이 남장하는 것도 유행이었다. 궁에서 시작된 여인들의 남장이 점차 서민 여인들에게까지 유행하였다. 또한 당대 여인들은 화려하게 화장한 얼굴을 더 이상 감추지 않고 노출한 채 호모(胡帽)를 쓰고 남자처럼 차려입은 복장으로 말 타기를 즐겼다.

“말을 타는 궁녀들은 모두 호모를 썼고, 남자의 의복과 장화를 신었으며 존비내외 모두과 일관되었다.” 『구당서』 여복지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당나라의 호풍과 문화 융합
당대 조정은 고조(재위 618~626년)가 무덕령(武德令, 621년), 태종이 의복령(衣服令, 630년)을 내려 호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황제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고습(짧은 상의와 바지) 착용이 널리 확산되었다. 당대 사람들은 유목 민족이 즐겨 입던 옷깃을 양쪽으로 열어젖힌 번령포(翻領袍)에 비지를 입고서 한식 모자인 복두를 즐겨 썼다. 당 조정은 이민족에 대한 개방정책으로 이민족이 고유의 문화 특성을 유지하면서 중국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한 개방적인 성향의 당나라 사람들은 ‘호풍’과 같은 이민족의 문화를 편견없이 포용하고 즐겼다. 그 결과 당은 특유의 국제적인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음악은 호곡(胡曲)을 존중하고 귀인의 식사는 호식(胡食)으로 올리며, 남녀 할 것 없이 다투어 호복을 입었다.” 『구당서』 여복지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호풍의 다양한 예

<동위 550년, 여여공주묘 출토 도용>

팔을 끼지 않은 채 걸치는 덧옷인 피풍(被風)을 입고 합환모(合歡帽)를 쓴 인물

<당, 이스타나 무덤 출토 토제용>

차양이 있는 모자에 베일을 드리운 유모(㡏帽)를 쓰고 승마를 즐기는 여인들

<당, 위동묘 선각화,>

옷깃을 양쪽으로 열어젖힌 번령포와 줄무늬 바지를 입은 여인

<당, 영태공주묘 벽화>

, 좁은 소매의 상의인 유(褕)와 긴치마 장군(長裙)을 입고 소매가 짧은 덧옷인 반비(半臂)와 그 위에 짧은 숄 피백을 두른 여인

<당, 위욱묘 선각화>

둥근 깃의 원령포에 한식 모자인 복두를 쓰고 홀을 든 관리

<털모자인 혼탈모(渾脫帽)>

옷길을 양쪽으로 열어젖힌 번령포와 바지, 여러 물품을 매달았던 허리, 당, 위옥묘 선각화, 일본 덴리산코칸 소장 도용, 띠인 첩섭대, 신화 화(靴)를 착용하고 손에 매를 든 남장여인

<첩섭대, 요, 내몽고 적봉>

<당나라에서 유행한 이국풍 화장법>

<당나라에서 유행한 이국풍 화장법>

  1. 백분(白粉): 호녀처럼 얼굴을 하얗게 분으로 단장. 특히 이마, 콧등, 턱 부위에 흰색을 더 칠하는 삼백법(三白法)이 유행
  2. 미대(眉黛): 광물인 석대나 나대 가루를 물에 풀어 까만 눈썹을 그림
  3. 화전(花鈿): 이마에 꽃 또는 원형, 깃털같은 장식을 붙임
  4. 액황(額黃): 머리털 언저리를 황색으로 칠함
  5. 홍분(紅粉): 뺨에 붉은 칠을 함
  6. 면엽(面靨): 보조개에 연지로 작은 점을 찍음
  7. 사홍(斜紅): 관자놀이 부분에 초생달 모양으로 붉게 칠함
여자는 이민족 부인이 되어 이민족 화장을 배우고, 기생은 호나라 음악을 들여와 서역 음악에 힘쓰네. 이민족 음악과 기마와 화장 풍속은 오십년 동안 끊임없이 중원에 전해졌네. 원진(779~831년), <법곡(法曲)>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