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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원감영(사적), 2011년

강원 원주시 일산동에 남아 있는 강원감영(사적)이다. 강원도 26개 부,목, 군현을 관할하던 지방 관청인 강원감영이 있던 곳이다. 조선 태조 때 강릉도와 교주도를 합하여 강원도라 하고 강원주에 감영을 설치하였다. 강원 감영의 건물들은 임진왜란때 대부분 소실되었고, 1634년 원주목사가 재건하기 시작하기 시작하였으며, 강원 감영이 없어진 1895년에는 55동에 이르는 건물들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이후 군청 등 관공서 건물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현재는 강원감영 정청 건물이었던 선화당과 살림집인 내아, 출입문인 포정루가 남아 있다.

조선전기 관찰사는 관할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근무하는 순력이 중심이어서 감영 건물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으나, 조선후기에는 지방을 통치하는 상설기관으로 바뀌면서 많은 건물들이 필요하였다. 감영에 설치된 건물로는 궐패를 모신 객사가 가장 중요한 건물이었고, 관찰사가 근무하던 선화당, 숙소인 내아를 중심으로 감영에 소속된 인사들이 근무하는 비장청 등과 호적 등 서류를 보관하던 호적고를 비롯한 창고를이 감영내에 설치되었다. 감영들은 대부분 대도시에 있었기 때문에 상업지역이나 관공서로 바뀌어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전국적으로 전라감영 전주객사, 공주 충청감영 선화당, 대구 경상감영 선화당 등이 남아 있다.

원주 강원감영(사적), 관찰사가 근무하는 정청건물인 선화당과 숙소인 내아가 남아 있다.

선화당 출입문으로는 문루인 포정루, 중문인 중삼문과 내삼문이 있다. 상당히 넓은 지역으로 많은 부속건물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객사는 포정루 바깥 상업지구에 위치하고 있었다.

도심 상업지구 옛 객사가 있던 곳에서 볼 수 있는 옛지도를 표현하고 있는 그림. 하천이 읍성 주위를 흐르고 있으며, 강원감영에 속했던 많은 부속건물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전시관에 모형으로 재현해 놓은 옛 강원감영. 동쪽에 객사가, 서쪽에 정청인 선화당이 배치되어 있다.

강원감영에 남아 있는 옛 건물 중 하나인 포정루이다. 조선시대 관아건물은 지역별로 고유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관찰사가 근무하던 감영은 같은 이름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안쪽에서 본 포정루. 앞면 3칸의 2층 문루 건물이다. 감영 출입문이지만 규모는 크지 않다.

포정루(布政樓)
포정이란 중국 명나라의 지방관청인 포정사에서 연유한 명칭으로 강원감영 포정루는 강원도 지방을 다스리던 감영으로 들어가는 첫번째 출입문루이다. 1395년 강원감영이 원주에 설치되었을 때 감영의 건물은 소규모로 조성되었고, 1480년(성종11) 이후 원주목사와 권륜 강원감사가 관아 건물 중수 계획을 세웠으며, 1483년 후임자 김상 목사와 허달 통판이 중수공사를 마무리하였다. 조선전기 강원감영은 원주목의 관아를 함께 사용하였고, 임진왜란 때 관아의 모든 건물이 불탄 이후 재건을 시작하면서 1665년 감사의 집무처인 선화당과 함께 포정루를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건물 외부의 구조는 방형의 긴 초석 위에 민흘림기둥을 세웠고,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이다. 지붕은 익공양식에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만들어졌다. 2층 누각의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고, 계자 난간을 사방에 둘렀다. 천장은 장식이 없는 연등천장이다. 1895년(고종 32) 강원감영이 폐지된 이후 원주진위대 본부로 사용했을 당시에는 선위루라는 편액이 달렸고, 1950년 한국전쟁 이후에는 강원감영문루라는 편액이 달려 있었다. 1995년 이후에는 조선시대 강원감영 정문의 명친인 포정루라는 편액을 달았다. (안내문, 원주시청, 2011년)

포정루를 지나면 두번째 출입문인 중삼문이 있다. 건물터만 있던 것을 복원한 건물이다. 주변의 담장과 부속건물들은 남아 있지 않다.

안쪽에서 본 중삼문. 앞면 5칸 규모로 양쪽에 작은 문간방이 있다.

중삼문
조선시대 원주역에 자리했던 강원감영에는 크게 동문.서문.남문.북문의 4대 외곽문이 있었고, 관찰사의 집무실인 선화당으로 출입하는 진입공간에는 포정문과 중삼문, 내삼문이 있었다. 중삼문은 진입공간의 배치상 가운데에 위치한 문으로 포정루를 지나온 사람들은 이곳 중삼문에서 재차 본인의 신원과 강원감영의 관찰사를 만나기 위해 들어서는 문이라는 의미로 관동관찰사영문이라는 고유한 명칭을 지니고 있다. 건물구조는 기록에 따르면 5칸 규모로 확인되지만 2000년 강원감영터를 발굴할 당시 정면3칸, 측면 2칸의 문지가 발굴되었고, 이에 따라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복원하였다. (안내문, 2011년, 원주시청)

중삼문과 내삼문 사이 마당에 있는 비석들. 역대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인물들의 선정비를 모아 놓았다.

관찰사 및 목사 선정비
감영의 중삼문과 내삼문 사이에는 총 14기의 비석이 놓여 있다. 이 비석들은 과거 조선시대 강원감영과 원주목 관아에서 관찰사와 목사로 재직하였던 관인들이 재임 당시 가원도와 원주지역을 훌륭하게 잘 다스렸던 흔적을 생생하게 남기고 기억하기 위해 세워졌다. 한편 이 선정비는 후임자로 온 관찰사와 목사에게 하나의 모범 사례가 되기도 하였고, 그런 측면에서 선정비는 올바르게 백성을 다스리고 어루만졌던 지방관을 기리는 의미와 함께 새로 부임하는 관찰사나 목사를 경계하능 의미도 깃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원주지역 곳곳에는 과거 강원도 관찰사와 원주목사로 재임했던 많은 지방관들의 선정비가 세워졌으나 현재 대부분 사라져 흔적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고, 원주시 개운동을 비롯하여 일부 지역에 남아 있던 선정비를 강원감영을 복원하면서 옮겨왔다. (안내문, 원주시청, 2011년)

강원감영 내삼문. 관찰사 집무공간인 선화당 마당을 출입하는 문이다.

내삼문
내삼문은 포정루, 중삼문과 연결되어 관찰사의 집무공간인 선화당으로 곧장 들어서는 문이다. 감영의 진입공간에서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고, 이곳에서 방문자는 강원감사를 만나기 전 마지막 신원확인 절차를 거치게 된다. 방문자는 내삼문의 고유한 명칭인 징청문이라는 편액에서 알 수 있듯이 문을 들어서면서 청렴결백한 정신으로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는데, 이는 다만 관찰사를 만나러 온 방문객뿐만이 아니라 관찰사를 포함하여 이 문을 들어서는 모든 관인들이 상기해야할 덕목이 된다. 내삼문의 건물구조는 기록상 5칸으로 되어 있으나 2000년 발굴조사 당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문지가 확인되었고, 이에 따라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복원되었다. (안내문, 원주시청, 2011년)

내삼문을 들어서면 강원도 관찰사가 근무하는 공간인 선화당 건물이 보인다. 내삼문에서 선화당까지는 박석이 깔린 길이 연결되어 있다.

강원감영 선화당. 중앙관청 의정부나 육조의 정청과 비슷한 규모와 형태이다. 동헌과는 달리 내부에 온돌방이 없고 넓은 마루로 되어 있다.

선화당 앞 마당에서 보이는 포정루와 중삼문

선화당 옆에 있는 관찰사 숙소인 내아. 관찰사는 가족없이 단신으로 부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관할지역을 돌아보는 경우가 많기때문에 선화당에 비해 건물규모가 상당히 작다.

내아는 선화당 방향으로 작은 툇마루와 출입문을 두고 있다.

내아 출입문들은 대부분 생활공간인 뒷마당을 향하고 있다.

내아
내아는 안쪽에 자리한 동헌으로 내동헌이라고도 불린다. 관찰사의 집무공간인 선화당과 함께 내아는 안채에 해당하는 관청건물이다. 『여지도서』의 기록에는 ‘대은당’으로 『관동지』에 실린 강원감영지 기록에는 ‘내라’의 명칭으로 불렸다. 2000년 발굴조사 당시 내아 터에서 ‘숭정삼경진사월초칠일유시상량기’라는 명문과 묵서된 상량문이 발견되었고, 이에 따라 현재 복원된 건물의 축조시기가 1760년(영조36)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내아는 온돌방과 창고가 함께 있는 민도리집 계통의 건물로 발굴조사 과정에서 조선시대 도자기 유물이 다량 나온 것으로 미루어 보아 오랜 기간 동안 생활공간으로 활용되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내아는 수세기 동안 전면적인 중수.보수가 이루어진 건물로 각 시기별 건축구조와 양식을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대체로 17세기 후반 관찰사가 강원도 지방을 돌아다니던 순력체제가 감영에 머물면서 강원도를 다스리던 유영체제로 전환되면서 내아는 관찰사 가족들이 머물던 생활공간으로 추정된다. 강원감영복원사업 추진에 따라 20015년 6월 17일 전면 해체.보수하였다. (안내문, 원주시청, 2011년)

뒷편에서 본 선화당.

선화당 뒷마당에 남아 있는 고목.

선화당과 후원
선화당은 관찰사가 일하던 곳으로 강원감영의 중심 건물입니다. 관찰사는 이곳에서 강원도 각 지역에서 올라온 행정과 농사, 세금을 거두거나 재판하는 등에 대한 첩보를 상세하게 읽어보았고, 문제가 되는 일을 처리하였습니다. 선화당 뒤편 후원에는 관찰사가 휴식을 하거나 사람들과 중요한 회의를 할 때, 손님을 맞이하여 음악을 듣거나 춤을 감상하는 연회를 열었던 관풍각과 환성정, 봉래각이라는 건물이 있었습니다. 옛 선비들이 남긴 시에는 연못에 떠 있는 누각과 정가를 오가는 조각배 두 척이 연못을 가로지른 다리 밒에 내여 있었는데, 감영의 아름다운 후원 풍경과 노를 저으며 아담한 누각과 정자를 드나드는 사람들 모습이 마치 신선이 사는 것처럼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수백년 전에 있었던 많은 건물들은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무너지기도, 다시 세워지기도 하였고, 이름이 바뀌기도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건물의 위치가 옮겨지기도 했습니다. 현재 강원감영에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옛 건물은 바로 포정루와 선화당입니다. (안내문, 원주시청, 2011년)

강원감영에 속했던 여러 행각 중 한곳을 복원해 놓고 있다. 지금은 강원감영 사료관으로 사용하고 이다.

행각
행각은 궁궐의 중심건물인 정당 좌우에 배치되어 있는 보조 건물을 말한다. 강원감영도에는 선화당 왼편으로 세 채의 건물이 확인되는데 북쪽으로 부터 차례로 행각, 보선고, 공고가 자리해 있다. 2000년 강원감영터 발굴 당시에는 행각의 건물 흔적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았고, 몇개의 건물구조가 서로 얽혀 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행각 자리와 좌측의 공방고지 일대는 옛 지도 기록에서 보이는 행각, 보선고, 공방고지의 여러 건물이 함께 어우러져 있었던 공간으로 추정된다. 행각의 건물 복원은 정면 7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구조로 이루어졌다. (안내문, 원주시청, 2011년)

감영터 남아 있는 옛 공방고지.

공방고지
조선시대 강원감영에는 행정업무를 수행하던 이방.호방.예방.공방 및 사법기관의 역할을 하던 형방, 그리고 군사업무를 관장했던 병방의 6방이 있었다. 공방은 공장과 건축물을 신설하거나 영선의 업무 및 공용지를 운영하는 역할을 했다. 강원감영터를 발굴할 당시 확인된 공방고지는 공방에서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 보관했던 창고로 추정되는데, 당시 감영은 원주목과 같은 관아를 사용했기 때문에 이 창고는 원주목과 함꼐 사용했던 공간으로 생각할 수 있다. 건물구조는 2000년 발굴 조사결과에 따라 정면 2칸 측면 2칸으로 확인되었고, 바닥에서 온돌 고래 시설 일부가 드러난 것으로 미루어 보아 공방고에 난방시설이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원주시청, 2011년)

강원감영 중심 건물이었던 객사는 선화당 동쪽편에 자리잡고 있었다. 객사가 있었던 곳은 원주의 대표적인 상업지구로 바뀌었다.

강원감영, 사적 439호, 강원도 원주시 일산동
강원감영은 조선시대 강원도 관찰사가 직무를 보던 관청이다. 조선왕조는 1395년 강릉도와 교주도를 합하여 강원도라 하고 강원도의 수부(首府)를 원주로 정하여 강원감영을 설치하였다. 강원감영의 건물들은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으나 1634년 원주목사 이배원이 재건하기 시작한 후, 여러 목사와 관찰사들이 계속 건설하였다. 강원감영은 선화당을 비롯하여 포정루.보선고.내아.비장청.호적고 등 40여 동에 달하는 웅장한 모습으로 1395년부터 1895년까지 500년 간 강원도 역사창조의 중심역할을 하였으나, 1895년 조선 8도 제도를 23부 제도로 개편함에 따라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 1896년 이후 강원감영 건물은 원주 진위대 본부로 사용하였고, 1907년 진위대가 해산된 후 원주군청으로 사용되었다. 40여동의 화려한 건물로 이루어졌던 강원감영은 1895년 이후 대부분의 건물들은 없어지고 선화당을 비롯하여 포정루.내아 등 몇 동의 건물만 남게 되었다. 강원도와 원주시는 500년 강원도의 수부로서 강원도를 관할하였던 귀중한 문화유산인 강원감영을 복원하기로 하고 2000년부터 복원작업을 시작하여 2005년까지 선화당.포정루.중삼문.내삼문.내아.행각 등 강원감영의 일부만을 복원하였다. (안내문, 2011년, 원주시청)

<출처>

  1. 안내문, 원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