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보성군 벌교읍에 있는 옛 보성여관 건물이다. 이 건물은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이었던 벌교읍 옛 일본인 거리에 남아 있는 건물이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지어진 것으로 한옥과 일본식 가옥의 양식이 섞여 있는데 일본식 건물양식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건물은 2층으로 된 주 건물과 부속건물들이 가운데 마당을 중심으로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벌교읍에서 공공건물을 제외하고는 가장 큰 규모의 건물이었다고 한다. 소설에서는 토벌대의 숙소로 사용된 남도여관으로 소개되고 있다.
<벌교읍에 남아 있는 옛 보성여관 건물>
벌교읍에서도 가장 큰 규모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한옥과 일본식 가옥 양식이 섞여 있는 건물이다. 오늘날 일반적인 여관과는 달리 지역을 대표하는 호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보성여관 출입문>
도로 방향으로는 상가건물처럼 지어졌다. 출입문을 들어서면 숙소가 있는 마당으로 복도가 연결되어 있다. 내부에는 식당 등으로 사용했던 공간 등을 볼 수 있다
<내부 복도>
<휴식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도로 옆 공간>
<전시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부분>
<작은 뒷마당>
가운데 복도를 지나면 아담하게 꾸며놓은 작은 마당이 있다. 마당을 중심으로 손님들이 묵는 숙소가 배치되어 있다. 전통 한옥의 ‘ㅁ’자형 공간배치를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전통한옥의 대청마루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넓은 마루>
<툇마루가 있는 한옥양식이 반영되어 있는 부분>
<일본식 목조주택 양식이 반영되어 있는 부분>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2층은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의 형태를 하고 있다.
<2층복도>
<다다미를 깔아놓은 2층>
<2층 창문에서 보이는 벌교읍>
<2층 복도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당과 숙소건물들>
<보성여관이 있는 벌교읍 거리>
경전선 벌교역에서 낙안읍성으로 연결되는 도로 주위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조성한 일종의 신도시였던 공간이다. 1970년대를 지나면서 일본인 가옥들은 대부분 허물어지고 전형적인 시골 소읍 풍경으로 바뀌었다.
<벌교읍에서 랜드마크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옛 보성여관 건물>
남도여관
검은 판자벽에 함석지붕, 전형적인 일본식으로 지어진 2층 건물은 옛 모습 그대로이다. 일본인들은 강점기 동안 전국적으로 이런 건물들을 수없이 지었는데 그동안 무차별적으로 헐어버리고 시멘트 건물들을 짓게 되었다. 그 영향으로 이런 건물들은 구경하기 어려운 귀물이 되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역사는 문자의 기록만이 아니다. 유물을 보았을 때 설명이 필요 없이 지난 시대를 한순간에 실감하게 된다. 수난과 고통의 역사일수록 그 시대의 유물은 남겨지고 보호되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 중심거리로 소위 본전통이라고 불렸던 이 길에 이 건물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그 시절에도 이 건물은 여관이었고, 그때의 실제 상호는 보성여관이었다. 소설에서는 임만수와 그 대원들이 한동안 숙소로 사용한다.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지금이 어느때라고, 반란세력을 진압하고 민심을 수습해야 할 임무를 띤 토벌대가 여관잠을 자고 여관밥을 먹어? (태백산맥 3권 85쪽)
<출처>
-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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