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tstory Traveling

Since 2008, Korea & World by younghwan

영암 월출산 도갑사, 통일신라말 도선국사가 머물렀던 사찰

전남 영암군 군서면 월출산 자락에 있는 사찰인 도갑사이다. 통일신라 때 도선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삼국시대 백제 때 유물 등이 출토되는 것으로 볼 때 삼국시대 이래 사찰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초 세조 때 승려 신미와 수미가 크게 중건하여 966칸에 이르는 전각과 많은 부속암자를 거느린 큰 사찰로 번창하였다.

정유재란, 한국전쟁 등 여러 차례의 전란과 화재 등으로 큰 손실을 입어 해탈문(국보)를 제외하고는 오래된 전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현재는 해탈문(국보), 오층석탑(보물), 석조여래좌상(보물),목조문수.보현동자상(보물), 도선국사.수미선사비(보물) 등의 문화재가 남아 있다. 최근에 주불전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여러 전각들 복원하여 큰 사찰로서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다. 영산강 이남 명산인 월출산을 대표하는 사찰이자 통일신라 말과 고려초 큰 영향을 끼쳤던 도선국사가 머물렀던 유서깊은 사찰이다.

<월출산 도갑사>

통일신라 말 영암 출신 도선국사가 머물렀던 유서깊은 사찰이다. 조선초 크게 수미선사가 크게 중창하면서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로 자리잡았다. 고려 초에 조성된 오층석탑(보물)이 중심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볼 때 고려시대에서 규모가 있었던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도갑사 입구에 세워진 일주문>

도갑사는 월출산 북서쪽 계곡에 자리잡고 있으며 영산강 하구 뱃길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도갑사 들어가는 길, 수리중인 해탈문(국보)>

<해탈문 사이로 보이는 도갑사 경내>

해탈문은 도갑사에 남아 있는 유일한 옛 건물로 조선초인 1473년에 처음 지어졌다. 앞면 3칸, 옆문 2칸으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가운데 1칸은 통로로 사용하고 있으며 양쪽에 금강역사와 문수.보현동자상을 모시고 있다. 사찰 출입문 규모가 크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건축연대가 오래된 것으로 사찰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이다.

<해탈문에 모셔진 문수동자상(보물)>

해탈문에는 금강역사와 함께 사자를 타고 있는 문수동자상과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동자상을 모시고 있다. 해탈문이 처음 지어진 1473년 경에 같이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동자상.>

<도갑사 경내에서 내려다 보이는 해탈문>

<도갑사 오층석탑(보물)>

구성이나 세부 조각수법에서 고려초기 석탑의 특징들이 반영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비례가 적절하며 안정된 느낌을 주고 있다.

<주불전인 대웅보전>

최근에 크게 중건한 불전으로 앞면 5칸의 2층 건물로 상당히 큰 규모이다.

<미륵전>

고려시대에 조성된 석조여래좌상(보물)가 모셔져 있다.

<미륵전에 모셔진 석조여래좌상(보물)>

<천불전>

<명부전>

<도선국사 영정이 모셔진 국사전>

<국사전에 모셔진 도선국사 영정>

<산신각>

<안쪽에서 볼 수 있는 도갑사 경내>

오층석탑을 중심으로 전각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공간이 상당히 넓은 편이다. 조선초 도갑사를 크게 중건할 때 966칸의 전각들이 있었던 대형 사찰이었음을 알 수있다.

<도선국사.수미선사비(보물)>

조선중기에 조성한 비석으로 통일신라 때 활동한 도선국사와 조선시대 활동한 수미선사의 행적을 기록하였다.

<그 옆에 세워져 있는 수미왕사비>

수미는 조선 세조 때 활동했던 승려로 도갑사를 크게 중건하였다. 이 비석은 조선중기 인조 때 세워진 것으로 고려시대 탑비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도갑사 경내에 남아 있는 석조>

조선후기에 조성한 것으로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도갑사 뒷편에 있는 승탑들>

월출산 도갑사,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도갑사는 통일신라말 도선국사(826~898)가 헌강왕 6년(880)에 창건했다고 전해져오고 있으며, 1999년 대웅전 뒤편 건물지 발굴조사에서 백제시대 기와편이 출토되어 통일신라시대 이전에 이미 사찰이 있었음을 추정하고 있다. 도갑사가 크게 번창한 때는 조선시대 초기이다. 이곳 영암 출신의 수미왕사가 1457년부터 1464년까지 대대적으로 중창했는데, 당시 건물 규모가 966칸에 달하는 대가람을 이루었고 소속된 암자가 12곳, 도갑사에 머무르켜 수행하는 승려가 780명에 이를 정도로 번창해 오다가 1597년 정유재란으로 많은 문화재가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으나 전란이후 다시 부흥하기 시작하여 17세기 후반까지 계속되었다. 그 뒤 영조 52년(1776)과 헌종 원년(1835)에도 일부 중창이 있었다. 근래에 도갑사는 한국전쟁과 화재 등으로 많은 가람이 소실되었으나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실시한 네 차례 발굴조사에서 옛 가람배치를 확인하고 복원불사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경내에는 도갑사 해탈문(국보 제50호) 등 국가지정 문화재 5점과 도갑서 석조 등 전라남도 지정문화재 5점이 있다. 또한 전체가 전라남도 기념물 제3호인 월출산은 빼어난 산세와 절묘한 기암절벽, 아름다운 풍광으로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운다. 통일신라때는 “월나악”, 고려시대에는 “월생산”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에 월출산이라 이름하여 오늘에 이른다. 구정봉 정상 바로 아래에는 국보 제144호인 마애여래좌상과 보물 제1283호인 용암사지 3층석탑이 있고, 용추폭포.구절폭포.금릉경포대 등이 장관을 이룬다. (안내문, 영암 도갑사)

<출처>

  1. 안내문, 영암 도갑사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