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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전라병영성(사적), 전라도 병마절도사 본영

전남 강진군 병영면 성동리에 있는 전라병영성(사적)이다. 전라도와 제주도 53주 6진을 총괄하는 육군 지휘부인 병마절도사 본영이 있던 곳이다. 조선초 태종 때 왜구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광주시의 광산현에 있던 병영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처음 쌓았다. 성의 둘레는 1 km 정도이공 동.서.남.북에 옹성과 2곳의 치성을 두고 있는 평지성이다. 배후에는 수인산(해발 561 m)에 산성을 두고 있다.

1555년(명종 10) 을묘왜변 때 왜구에 함락되었으며, 임진왜란 직전에 다시 수축하였다. 1894년 동학혁명 때 농민군에 함락되었으며 이후 갑오개혁 때 제도개편으로 폐영되었다. 경상우병영 진주성이나 충청병영 청주 상당산성에 비해 규모가 작은 편이며 조선초 충청병영이 있었던 해미읍성과 비슷한 규모이다. 조선후기에 하멜이 머물렀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성벽 바깥쪽에 하멜기념관이 있다.

<강진 전라병영성 서쪽 성벽>

조선초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쌓은 여러 읍성 중 한곳으로 한반도 서남부 육군을 총괄하던 지휘부가 있던 곳이다. 해안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당시 왜구의 침입이 상당히 위협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중종 때 일어난 을미왜변 때 왜구에 함락되기도 했다.

<서쪽 성벽 남쪽에 있는 치성>

<병영성 남문>

출입문 앞에 방어를 위해 옹성을 쌓아두고 있다.>

<동쪽편 남쪽 성벽>

<동쪽편 북쪽 성벽>

<병영성 동쪽에 있는 하멜기념관에서 본 모습>

우리나라에 표류되어 머물렀던 하멜이 이곳 전라병영성에서 취조를 받고 머물렀다고 한다.

강진 전라병영성
전라병영성은 조선 1417년(태종 17)에 초대 병마도절제사 마천목 장군이 축조하여 1895년(고종 32) 갑오개혁까지 조선왕조 500년간 전라도와 제주를 포함한 53주 6진을 총괄한 육군의 총지위부였다. 수많은 역사와 일화 속에 민족저항의 산 증거로 존속되어 왔으며, 1894년 동학농민전쟁으로 불타고 곧 이은 갑오개혁의 신제도로 폐영되었다. 전라병영성의 성곽 전체 길이는 1,060 m이며, 높이는 3.5 m, 전체면적 93,139 ㎡이다. 1997년 사적 지정 당시 성곽 내 육군지휘부 건물이나 유적은 소실되었으며, 성곽만 일부 남아 있는 상태였다. 강진군의 지속적인 복원 정비사업으로 성문과 성벽의 복원은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 현재 여장복원공사 및 성 내부 주요시설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안내문, 강진군청)

<출처>

  1. 안내문, 강진군청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